본문 바로가기
2023.04.19 06:10

내연녀와 동거인

조회 수 86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내연녀와 동거인

가끔 연락하는 <한겨레> 기자가 있다. 말을 주제로 기자끼리 토론이 붙나 보더라. 말에 대한 감각이 천차만별이니 토론이 자못 뜨거워 보였다. ‘기자들이 말에 대한 고민이 많군’ 하며 즐거워한다. ‘내기’ 를 거는지는 모르지만, 급기야 생각 없이 사는 나한테까지 질문을 한다. 내 대답은 늘 ‘어정쩡’ 하다.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지 않겠소이까?’

며칠 전엔 아트센터나비 관장 노소영씨가 티앤씨(T&C)재단 이사장 김희영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김씨를 에스케이(SK) 회장 최태원씨의 ‘내연녀’ 라 할지 ‘혼외 동거인’ 이라 할지로 논쟁이란다.

상식적(?) 으로 보면, ‘내연녀 / 내연남’은 개인의 사생활을 매도하고 편견을 조장하는 말이니 ‘혼외 동거인’ 이라 쓰는 게 맞다고 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연락해온 기자는 노소영씨 입장에 주목했다. 노씨가 소송을 한 데에는 두 사람의 내연 관계에서 받은 정신적 상처가 영향을 끼쳤을 텐데, 김씨에게 ‘혼외 동거인’(‘동거녀’ 도 아닌) 이란 중립적인 표현을 쓰는 게 온당한가? 은밀함, 비도덕성, 부적절함 같은 말맛이 풍기는 ‘내연녀’ 란 말을 써야 ‘본처’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담을 수 있지 않겠냐는 마음일 듯.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겠다.

나는 다른 데에 눈길이 갔다. ‘내연녀’ 와 ‘혼외 동거인’ 사이에서 새삼 고민하게 된 계기가 뭘까 하는 것. 유사 이래로 혼외 연애 범죄는 끊임이 없었다. 그걸 다룬 기사는 한결같이 ‘내연녀 / 내연남 고소 / 협박 / 폭행 / 살해’ 였다. 그렇다면 혹시 고결한 재벌가의 연애사를 다루다 보니 비로소 번민이 시작된 건 아닐까.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39363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5905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0820
3322 핼쑥하다, 해쓱하다, 헬쓱하다, 헬쑥하다, 핼슥하다, 헬슥하다 바람의종 2010.11.26 47634
3321 핸드폰, 휴대전화 바람의종 2008.11.19 6681
3320 핸드폰 바람의종 2008.12.12 7676
3319 해프닝 바람의종 2010.03.22 10628
3318 해장 바람의종 2012.07.23 13248
3317 해오라기난초 바람의종 2008.04.05 8122
3316 해오라기 바람의종 2009.05.17 8336
3315 해설피 바람의종 2010.05.31 14634
3314 해라體와 하라體 바람의종 2008.05.12 6689
3313 해거름, 고샅 바람의종 2008.10.11 7854
3312 핫어미와 핫아비 바람의종 2010.01.23 11624
3311 핫바지 바람의종 2007.04.24 8062
3310 핫도그와 불독 바람의종 2008.09.18 8830
3309 합하 바람의종 2007.09.20 8153
3308 합쇼체 바람의종 2010.03.18 12095
3307 합사, 분사 바람의종 2010.07.25 11928
3306 함흥차사 바람의종 2007.12.24 11789
3305 함함하다 바람의종 2012.05.18 11116
3304 함바집, 노가다 바람의종 2012.11.28 28953
3303 함께하다/ 함께 하다, 대신하다/ 대신 하다 바람의종 2009.03.29 14248
3302 할증료 바람의종 2007.10.26 7417
3301 할미새 바람의종 2009.12.04 991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