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4.14 06:29

어쩌다 보니

조회 수 115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사람들이 묻더라. 지금 하는 일을 어떻게 하게 되었냐고. 뭔가 필연적이고 운명적인 이유를 기대하면서. 이를테면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다거나(풉), 공부에 필요한 끈기를 타고났다거나(우웩) 하는 거 말이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식으로 미래를 쫀쫀하게 설계하며 사는 건 거짓말이거나 자기애가 강하거나 겁이 많은 게 아닐까.

중3 때 금오공고를 가려고 했다. 박정희의 전폭적 지원으로 세운 학교라 학비와 기숙사비가 전액 면제였다. 거길 갔다면 노숙한 기능공으로 살고 있겠지(그것도 괜찮았겠다). 담임이 피식 웃으며 일반고를 가랬다. 갔다. 대학도 그랬다. 적당히 국어 선생이나 하며 살려고(미안, 국어 선생님들) 국문과에 가고 싶다고 하니 담임은 무심히 허락을 해줬다(상담 없이!). 어쩌다 보니 대학원에 갔다. 졸업하자마자 몇년을 직장생활을 했다. 어찌저찌하여 다시 선생을 했다. 나도 배운 적 없는 글쓰기를 허덕대며 가르치고 있다(미안, 학생들). 매주 이 칼럼을 쓰는 것도 어쩌다 보니 하게 된 일. 이 모든 것의 출발은 그게 아주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싫지만은 않아서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자기 힘으로 돌파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삶의 우연성과 복잡성을 깨닫기란 발가락으로 귀를 파는 일보다 어렵다. 운명은 타인들과의 우연한 만남과 조응으로 이루어지나니, 지금 내 모습이 어찌 나의 것이겠는가. ‘현실’을 받아들이되 얽매이지 않으려면, 순간순간 만났던 타인의 음성을 다시 듣고 싶다면, ‘어쩌다 보니’라는 말을 내뱉어보시라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39077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185661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200552
    read more
  4. ‘외국어’라는 외부, ‘영어’라는 내부

    Date2022.11.28 By風文 Views1269
    Read More
  5. 거짓말과 개소리, 혼잣말의 비밀

    Date2022.11.30 By風文 Views893
    Read More
  6. 질척거리다, 마약 김밥

    Date2022.12.01 By風文 Views1284
    Read More
  7. “자식들, 꽃들아, 미안하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부디 잘 가라”

    Date2022.12.02 By風文 Views1093
    Read More
  8. ‘웃기고 있네’와 ‘웃기고 자빠졌네’, ‘-도’와 나머지

    Date2022.12.06 By風文 Views1047
    Read More
  9. 평어 쓰기, 그 후 / 위협하는 기록

    Date2022.12.07 By風文 Views1549
    Read More
  10. 맞춤법·표준어 제정, 국가 독점?…오늘도 ‘손사래’

    Date2022.12.12 By風文 Views1492
    Read More
  11. 구경꾼의 말

    Date2022.12.19 By風文 Views1003
    Read More
  12. ○○노조

    Date2022.12.26 By風文 Views952
    Read More
  13. 말하는 입

    Date2023.01.03 By風文 Views950
    Read More
  14. '바치다'와 '받치다'

    Date2023.01.04 By風文 Views991
    Read More
  15. 헛스윙, 헛웃음, 헛기침의 쓸모

    Date2023.01.09 By風文 Views1092
    Read More
  16. ‘통일’의 반대말

    Date2023.01.16 By風文 Views1375
    Read More
  17. 말의 세대 차

    Date2023.02.01 By風文 Views927
    Read More
  18. 국가의 목소리

    Date2023.02.06 By風文 Views1199
    Read More
  19. 남친과 남사친

    Date2023.02.13 By風文 Views1059
    Read More
  20. ‘다음 소희’에 숨은 문법

    Date2023.02.27 By風文 Views895
    Read More
  21. 울면서 말하기

    Date2023.03.01 By風文 Views902
    Read More
  22. “김”

    Date2023.03.06 By風文 Views1269
    Read More
  23. '김'의 예언

    Date2023.04.13 By風文 Views817
    Read More
  24. 어쩌다 보니

    Date2023.04.14 By風文 Views1157
    Read More
  25. 멋지다 연진아, 멋지다 루카셴코

    Date2023.04.17 By風文 Views1073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152 153 154 155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