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4.13 10:42

'김'의 예언

조회 수 160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김'의 예언

말은 시간과 닿아 있다. 경험과 기억이 쌓이기도 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그려 보게도 한다. 정신적 뼈와 살이 되는 말은 육체에 버금간다. 만져지는 말.

우리 딸은 2000년에 태어났다. 미인가 대안학교를 나온 그는 준채식주의자로 살고 있다. 매 순간 행복을 유예하지 않고, 사회가 미리 짜놓은 경쟁의 허들 경기에 불참하고 있다. 아비를 따라 합기도(아이키도) 수련을 하며 틈틈이 노래를 지어 부른다. 한동안 스파게티집 주방에서 종일 설거지 알바를 하더니 몇달 전부터는 채식요리(비건) 식당에 들어가서 고단한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다.

요즘 그는 틈나는 대로 운다. ‘김’ 때문이다. 얇고 까무잡잡한 ‘김’. 올해 봄이나 여름부터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쏟아붓는다는 소식과 겹쳐 ‘김’이란 말을 뱉을 때마다, 김이 눈앞에 보일 때마다, 그의 머릿속엔 파국적 상황이 연상되나 보다. 다시 먹지 못할 김. 어디 김뿐이랴. 오염수는 늦어도 4~5년 뒤엔 제주 밤바다에 도달한다고 한다. 국경을 모르는 물고기들은 그 전에 피폭될 테고(이미 봄비는 내렸다).

일본 시민사회와 교류하고 있는 옆방 선생이 전하기를, 일본 지인들한테서 ‘안전한’ 한국산 다시마를 보내달라는 연락이 온다고 한다. 일본의 어느 아침 밥상에서는 ‘다시마’를 앞에 두고 우는 이들이 있나 보다.

원전 마피아들은 오염수 방류의 파국적 미래에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있다. 아니, 무조건 ‘안전하다’고 떠든다. 생태에 대한 책임감을 찾을 수 없는 엘리트들보다 우리 딸의 감각이 더 믿음직스럽다. 늦지 않게 종말론적 체념의 감각을 익혀야겠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62218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208843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223595
    read more
  4. 댕댕이, 코로나는 여성?

    Date2022.10.07 By風文 Views1366
    Read More
  5. 안녕히, ‘~고 말했다’

    Date2022.10.11 By風文 Views1366
    Read More
  6. 어떤 청탁, ‘공정’의 언어학

    Date2022.09.21 By風文 Views1367
    Read More
  7. 올바른 명칭

    Date2022.01.09 By風文 Views1371
    Read More
  8. 일고의 가치

    Date2022.01.07 By風文 Views1373
    Read More
  9. 언어의 혁신

    Date2021.10.14 By風文 Views1375
    Read More
  10. 외교관과 외국어, 백두산 전설

    Date2022.06.23 By風文 Views1379
    Read More
  11. 권력의 용어

    Date2022.02.10 By風文 Views1380
    Read More
  12. 매뉴얼 / 동통

    Date2020.05.30 By風文 Views1381
    Read More
  13. 말과 서열, 세대차와 언어감각

    Date2022.06.21 By風文 Views1382
    Read More
  14. 왜 벌써 절망합니까 - 8. 내일을 향해 모험하라

    Date2022.05.12 By風文 Views1383
    Read More
  15. 국물도 없다, 그림책 읽어 주자

    Date2022.08.22 By風文 Views1386
    Read More
  16. 이중피동의 쓸모

    Date2023.11.10 By風文 Views1388
    Read More
  17. 몰래 요동치는 말

    Date2023.11.22 By風文 Views1390
    Read More
  18. 내연녀와 동거인

    Date2023.04.19 By風文 Views1394
    Read More
  19. 사람, 동물, 언어 / 언어와 인권

    Date2022.07.13 By風文 Views1397
    Read More
  20. 쓰봉

    Date2023.11.16 By風文 Views1399
    Read More
  21. 짧아져도 완벽해, “999 대 1”

    Date2022.08.27 By風文 Views1401
    Read More
  22. 노동과 근로, 유행어와 신조어

    Date2022.07.12 By風文 Views1402
    Read More
  23. 고백하는 국가, 말하기의 순서

    Date2022.08.05 By風文 Views1410
    Read More
  24. 연말용 상투어

    Date2022.01.25 By風文 Views1413
    Read More
  25. 경텃절몽구리아들 / 모이

    Date2020.05.24 By風文 Views1416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