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3.01 06:25

울면서 말하기

조회 수 94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울면서 말하기

울면서 말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나는 울면서 말을 하지 못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입이 실룩거리며 울음이 목구멍에 닿으면, 하고 싶던 말을 도무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다. 첫소리부터 컥, 하는 울음소리에 눌려 뭉개진다. 울면서 뱉은 말을 꼽아보면 ‘엄마, 아버지, 어휴, 이게 뭐야, 어떡해.’ 정도. 온전한 문장이 없다. 그러니 울면서 ‘조곤조곤’ 말하는 사람이 부러울 수밖에. 울음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하는 말이니 듣는 이는 어찌 녹아내리지 않겠는가.

아직 동지를 찾지 못했다. 우는 사람한테 가서 ‘할 말이 있는데 우느라 못 하는 거냐’고 묻는 건 너무 냉정하다. 말년에 ‘말없이’ 수시로 울먹거렸던 아버지가 제일 의심스럽지만, 이게 유전적 문제인지는 영원히 미궁이다.

할 말이 있어 말을 꺼냈는데, 울음이 나와 말을 잇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가. 상대는 답답해하지만, 말을 할 수 없으니 이런 낭패도 없다. 어떤 말엔 감정의 손가락이 달려 울음의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삶에 대한 옹호, 인간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 추억 같은 것. 종잡을 수가 없다.

지금으로선, 실컷 울지도, 실컷 말하지도 못한, 다시 말해 어디 한곳에 온몸을 던져보지도, 온몸을 빼보지도 못한, 어정쩡한 삶 때문 아닐까 싶다. 힘껏 우는 근육도, 힘껏 말하는 근육도 키우지 못한 이 허약함. 있는 힘을 다해 진심을 밀어붙이는 간절함의 부족 같은 것. 울면서 말하기가 어렵다면, 슬픔이든 분노든 아픔이든 기쁨이든 온 힘을 다해 울어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깟 말, 없으면 어떠랴.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0242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6760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1796
3278 한번, 한 번 / 파란색, 파란 색 바람의종 2010.11.21 12354
3277 한번, 한 번 바람의종 2009.03.26 7589
3276 한뫼-노고산 바람의종 2008.01.30 10192
3275 한목소리, 한 목소리, 한걸음, 한 걸음 바람의종 2010.06.01 13144
3274 한머사니 먹었수다! 바람의종 2009.09.18 7291
3273 한마음 / 한 마음 바람의종 2011.11.27 12983
3272 한량 바람의종 2007.09.12 8265
3271 한라산과 두무산 바람의종 2008.03.04 9323
3270 한눈팔다 바람의종 2007.04.02 11996
3269 한내와 가린내 바람의종 2008.04.05 9055
3268 한나절, 반나절, 한겻 바람의종 2008.11.23 9924
3267 한글의 역설, 말을 고치려면 風文 2022.08.19 986
3266 한글의 약점, 가로쓰기 신문 風文 2022.06.24 1112
3265 한글박물관 / 월식 風文 2020.06.09 1498
3264 한글로 번역한다? 바람의종 2009.12.18 9555
3263 한글과 우리말 바람의종 2008.02.19 7119
3262 한글 맞춤법 강의 - 박기완 윤영환 2006.09.04 25781
3261 한글 바람의종 2010.07.19 8526
3260 한국어의 위상 風文 2022.05.11 1019
3259 한계와 한도 바람의종 2011.12.30 8347
3258 한거 가 가라! file 바람의종 2009.09.01 6397
3257 한강과 사평 바람의종 2008.06.05 752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