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3.01 06:25

울면서 말하기

조회 수 156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울면서 말하기

울면서 말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나는 울면서 말을 하지 못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입이 실룩거리며 울음이 목구멍에 닿으면, 하고 싶던 말을 도무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다. 첫소리부터 컥, 하는 울음소리에 눌려 뭉개진다. 울면서 뱉은 말을 꼽아보면 ‘엄마, 아버지, 어휴, 이게 뭐야, 어떡해.’ 정도. 온전한 문장이 없다. 그러니 울면서 ‘조곤조곤’ 말하는 사람이 부러울 수밖에. 울음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하는 말이니 듣는 이는 어찌 녹아내리지 않겠는가.

아직 동지를 찾지 못했다. 우는 사람한테 가서 ‘할 말이 있는데 우느라 못 하는 거냐’고 묻는 건 너무 냉정하다. 말년에 ‘말없이’ 수시로 울먹거렸던 아버지가 제일 의심스럽지만, 이게 유전적 문제인지는 영원히 미궁이다.

할 말이 있어 말을 꺼냈는데, 울음이 나와 말을 잇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가. 상대는 답답해하지만, 말을 할 수 없으니 이런 낭패도 없다. 어떤 말엔 감정의 손가락이 달려 울음의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삶에 대한 옹호, 인간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 추억 같은 것. 종잡을 수가 없다.

지금으로선, 실컷 울지도, 실컷 말하지도 못한, 다시 말해 어디 한곳에 온몸을 던져보지도, 온몸을 빼보지도 못한, 어정쩡한 삶 때문 아닐까 싶다. 힘껏 우는 근육도, 힘껏 말하는 근육도 키우지 못한 이 허약함. 있는 힘을 다해 진심을 밀어붙이는 간절함의 부족 같은 것. 울면서 말하기가 어렵다면, 슬픔이든 분노든 아픔이든 기쁨이든 온 힘을 다해 울어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깟 말, 없으면 어떠랴.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64758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11381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6093
136 강남 제비 바람의종 2007.04.29 11211
135 감감소식 바람의종 2007.04.29 8355
134 가능·가성능/최인호 바람의종 2007.04.28 8779
133 필요한 사람?/최인호 바람의종 2007.04.28 8596
132 위하여/최인호 바람의종 2007.04.28 7128
131 가차없다 바람의종 2007.04.28 10789
130 가관이다 바람의종 2007.04.28 13024
129 홀몸 바람의종 2007.04.27 9809
128 호래자식(후레자식) 바람의종 2007.04.27 15094
127 관해/대하여/최인호 바람의종 2007.04.25 6183
126 ‘경우’ 덜쓰기/최인호 바람의종 2007.04.25 7208
125 불구하고?/최인호 바람의종 2007.04.25 10625
124 허풍선이 바람의종 2007.04.25 8190
123 행길 바람의종 2007.04.25 11625
122 핫바지 바람의종 2007.04.24 8458
121 할망구 바람의종 2007.04.24 11471
120 한통속 바람의종 2007.04.23 6691
119 한참동안 바람의종 2007.04.23 9329
118 한 손 바람의종 2007.04.02 11118
117 한눈팔다 바람의종 2007.04.02 12490
116 하염없다 바람의종 2007.04.01 11268
115 하루살이 바람의종 2007.04.01 987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152 153 154 155 156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