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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공동체

언어공동체란 뭔가? 쉽게 쓰지만 답하긴 어렵다. 사전엔 ‘같은 말을 쓰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 집단’이라고 눙치려 한다. 도대체 ‘같은 말(한국어)’이란 뭔가? 분명 강원도 말과 제주도 말이 다르고, 10대의 말과 80대의 말이 다르고, 아나운서의 말과 농부의 말이 다른데. 사람마다 쓰는 어휘도 다르고 말투도 다른데.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과 장소, 관계, 기분에 따라 쓰는 말이 다른데. 그런데도 우리는 ‘같은 말’을 쓰는 공동체인가?

그렇다면 이 말은 구체적인 언어사용보다는 추상적인 언어질서, 규범, 규칙 같은 걸 뜻하는 듯하다. 이 추상적인 언어질서는 당연히 ‘한국 정신’처럼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가장 잘 담는 그릇이다. 세대와 성별, 계급과 지역에 따라 작은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보면’ 우리는 모두 하나의 언어를 물려받았다. 하나의 언어는 거역하거나 피할 수 없다. 운명처럼 주어졌다.

이렇게 우리 모두 같은 말을 쓰고 있다는 생각은 실체를 알 수 없는 ‘가정’이거나 ‘상상’에 가깝다. 그러나 문제가 많긴 하지만, 언어공동체란 말이 아주 쓸모없지는 않다. 언어공동체를 ‘민족’이나 ‘국가’라는 거창한 차원으로 끌어올리면 올릴수록, 개인의 언어적 실천과 상호작용이 부수적이고 비본질적인 게 된다. 이를 뒤집어버리자. 이 말을 역동적이고 구성적이며 참여적인 의미로 재활용하자. 우리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공동체를 이룬다. 언어공동체는 주어지는 게 아니다. 의지적으로 ‘참여하는 것’이고 능동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늘이 아닌 땅에, 우리 안에 있다.


피장파장

“자고 일어나면 이불을 개야지!” “아빠도 안 개더만.” “일찍 좀 자라!” “아빠도 새벽에 자더만.” 사춘기의 반항심은 ‘어른’의 모순을 목격하면서 시작된다. 아이가 성숙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은 완벽한 세계였던 부모가 실은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덩어리임을 눈치챌 때다. 그 순간 무적의 논리 하나가 혀끝에 장착되는데, 바로 피장파장의 검이다! “당신도 마찬가지야.”

이 검을 제대로 휘두른 이는 예수다. 그는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돌로 쳐 죽여야 하지 않느냐는 율법주의자들의 다그침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되받아친다. 이 말에 움찔한 사람들은 돌을 내려놓고 흩어진다. 범법자들에게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게 하는 ‘기쁜 소식’(복음)이다. “당신들은 얼마나 깨끗한데?” “남들도 다 하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

피장파장의 논법은 해당 사안의 진상, 성격, 심각성, 책임과 같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질문을 가로막는다. 법정에서는 전혀 안 통하는 변론법이지만, 정치 토론에서는 밥 먹듯이 등장한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쉽게 써먹을 수 있고 효과도 쏠쏠하기 때문이다. 행주와 걸레를 한 세숫대야에 넣어 삶아버리니 보는 사람 마음속에 좌절, 냉소, 낭패의 감정이 들 수밖에. 이번 선거도 이미 피장파장의 논리가 난무한다.

피장파장의 게거품을 걸러내기만 해도, 우리 머릿속은 이성과 합리로 가득할 것이다. 현란한 혀놀림 속에서도 정신을 단단히 차리면서 질문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주문을 외치자. “그건 그거, 이건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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