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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이이에이

40년 전에 나온 문자의 역사 책을 보면 한국은 여전히 한자와 한글을 함께 쓰는 혼합문자 사회로 묘사된다. 한겨레신문의 한글전용은 한자 지식이 교양의 잣대였던 시기에 한글만으로도 지식 축적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언어 평등을 앞당겼다. 한글전용을 거부하는 신문들도 이젠 한자를 덜 쓴다. 유력 정치인의 성(李, 尹, 洪)이나 국가명(韓, 北, 美, 中, 日), ‘與, 野, 靑, 檢’처럼 자주 입에 오르는 대상, ‘母, 車’처럼 다들 알 법한 한자어, ‘故 ○○○ 선생, 前 ○○○ 대표’처럼 고정된 표현 정도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는 자신의 문자만으로 정보를 기록할 수 없다. 하다못해 아라비아 숫자, 단위 기호(m, ㎏), ‘&, #’ 같은 특수기호를 섞어 쓴다. 영어가 문제인데, 한겨레도 고민이 깊어 보인다. 가급적 쓰지 않되, 쓴다면 ‘국제통화기금(IMF), 국제올림픽위원회(IOC)’처럼 한국어 대역어를 먼저 쓰고 괄호 안에 영어를 집어넣는다. 제목에는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쓰기도 한다(‘WTO 발표’).

‘브이시아르, 시시티브이, 피아르, 큐엘이디’처럼 대역어 없이 한글로 영어를 옮겨 쓰는 경우는 더 난처하다. 한국이 국제원자력기구 의장국이 되었다는 기사에 쓰인 ‘아이에이이에이’라는 글자는 얼마나 생소하던지. 저 기구를 적는 방법은 적어도 여섯가지가 있다. ‘IAEA, IAEA(국제원자력기구), 아이에이이에이, 아이에이이에이(IAEA), 국제원자력기구(IAEA), 국제원자력기구’. 어떤 것이 남녀노소 모두가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표기 방법일까?


위드 코로나

까놓고 말해, 당신은 ‘단계적 일상 회복’과 ‘위드 코로나’ 중에서 어떤 말이 더 친숙한가? 나는 ‘위드 코로나’ 쪽인데, 왜 그럴까? 우리말에 대한 애정 부족? 설마.

모든 말은 현지화한다. 한 언어 안에도 이질성이 뒤섞여 있다. 하물며 다른 말에 들어가면 애초의 모습 그대로일 리가 없지. 말은 집 떠나면 고생이 아니라, 바뀐다. 영어도 싱가포르에선 싱글리시, 스페인에선 스팽글리시, 프랑스에선 프랑글레, 한국에선 콩글리시. 쉽게 눈에 띄는 건 단어다. ‘핸드폰, 카센터, 모닝콜, 원샷, 백밀러(백미러), 리모콘(리모컨), 오토바이, 사인’. 옥스퍼드 사전에도 오른 ‘스킨십, 파이팅’도 콩글리시다. 콩글리시 중 상당수는 일본식 영어이고. ‘잘못’ 만든 영어가 아니다. 현지화한 영어다. ‘셀룰러폰’보다 ‘핸드폰’이 이해가 더 잘 되는데 어쩌라고.

외국 신문에서 ‘위드 코로나’도 콩글리시라고 지적하자 몇몇 언론에서 이를 받아쓰더라. 그러면서 ‘위드 코로나’가 ‘영어권에선 알아들을 수 없다’느니, ‘일본식 영어’라느니 하면서 이 말이 ‘불온하다’고 덮어씌우더라. 영어권 사람들이 이해 못 하는 건 당연하지. 또 ‘일본식 영어’면 어떤가? 사람들은 기원을 따지며 말을 쓰지 않는다. 생활이 먼저이므로. ‘위드 코로나’는 방역 정책이기도 하지만, 앞으로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뜻하기도 한다. 이미 하나의 개념어로 자리잡았다.

외제든 짝퉁이든 어떤 말이 내 입에 달라붙었다면 쉽게 떼어지지 않는다. ‘남’이 뭐라 하든 우리는 우리식 영어를 쓰는 거다. ‘내땅내영!’(내 땅에선 내 맘대로 영어 쓰자.)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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