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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가 쏟아지는 우리선인들 이야기


   짚신장수가 된 왕손 옥진

  어른들 사회에서는 뽐낸다고 하고 아이들은 잰다는 말이 있다.  이 뻐긴다고 하는 부류의 사람을 보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저건 모두 겉치레고 허식이다. 그 겉을 싸고 있는 헛것을 모두 제거하고 나면 본연의 실체가 나타나겠는데,  저렇게 큰 체 하는 정작 알맹이는  과연 얼마만이나 할꼬?`

  세종대왕은 아드님이 많아서  정실인 왕비에게서 낳은 대군이  팔형제고, 후궁들 몸에서 10형제를 두었다. 맞이인 세자 몸에서 첫 손자를  보았으니 이 분이 뒷날 비극의 주인공인 단종이다. 의당 유모를 들여야겠는데 가뜩이나 복잡한 궁중에 새 사람을 들였다가 그 떨거지들마저 뛰어들어 설치는 날이면 더욱 골치아프겠어서  대왕은 다른 방책을 세웠다. 당신 후궁들중에서 젖 흔한 이로 봉보부인을 삼자. 그리하여 뽑힌 분이 혜빈 양씨다. 한남, 수춘, 영풍의 세 왕자를 낳아 바쳤는데, 영풍군이 아직 강보에 있고 유도도 흔해서 이 분께 맡긴 것이다. 그러니까 단종대왕은 영풍군과 같은 무릎에 앉아 양쪽 젖을 갈라 자시며 자라는 기연을 맺어, 위의 두 왕자와도 자연 친형제처럼 섞여 자라시게 된 것이다. 세종이 승하하시고 문종까지  빈천하시자, 둘째 왕자 수양대군의 야심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첫번째 공사가 혜빈 양씨의 세력을 꺾는 일이라, 맏아들인 한남군은 죄를 씌워 경상도 함양으로 귀양을 보내고, 막내인 영풍군이 하필이면 박팽년의 사위라, 선위하던 날 어머니와 함께 현장에서 박살을 당해 묘소마저 없다. 그 가운데 수춘군은 시세를 비관하고 식음을 전폐하여 그 일이 있기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소란통에 한남군의 아들 홍안군은 폐족이 되어, 가산을 몰수당하고 거리로 쫓겨났다. 당당한 장손이건만 때를 잘못 만나 처량한 신세가 된 것이다.

 옛날엔 가장  손쉽고 그래서 또 가장 비참한 직업이 짚신장수였다. 겨울에도 불을 안 때는 움퍼리에 모여 앉아, 힘들어 다른 일은 못하고  짚신을 삼아 팔아서 연명하는데, 대개는 의지할 데 없는 홀아비 늙은이나 불구자들이  이 직업에 종사하였다. 그렇게 만들어낸 짚신을 열 켤레씩 모아 거래  했는데, 만든 솜씨에 따라 값에 차등이 날 것은 물론이다. 홍안군도 밥은 먹어야 살겠어서 이 틈에 끼어들었는데 홍안군의 아들 옥진이라는 분이 짚신을 볼품있게 공들여 삼아서 장안에 이름이 났다. 그래 건달들이 기생에게 선물을 해도 `옥진이 솜씨`의 짚신이라야 환심을 샀다. 그러니 그의 영업(?)도 번영했을 것이다. 그런 중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바뀌었다. 중종조에 이르러, 일직이 세조손에 희생된 모든 분의 명예를 회복할 제, 한남군과 아버지 홍안군의 지위도 복구되고, 이미 중년의 솜씨좋은 짚신장수 옥진도 회천정을 봉해 정3품 창선대부로 발바닥에 흙을 묻히지 않는 신분이 되었다. 사모품대로 위의를 갖추어 구종 별배를 앞뒤에 느리고, 사인교를 타고라야 출입하는 어엿한 지위로 되돌아간 것이다.

  엊그제까지 받던 천대를 생각할 때 얼마나 뽐내어 자랑하고 싶으랴만 그게 아니다. 그 천한 직업에 종사하면서도 공력을 들여 남 다 못해내는 솜씨를 발휘하던 그 성실한 사람됨은 바탕부터가 다르다. 한가지를 보면 열가지를  안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말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더니 하인에 견마 잡히고 거리에 나왔다가라도, 옛 동업자를 만나면 반드시 내려서 손을 잡고 반기었다. 굳은 살도 안 빠진 예전의 그 손이언만 옛 동료들은 손을 잡히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높이 되신 처지에 우리같은 것들을...”  그들은 감격의 눈물을 지었다. 그뿐이 아니라 존장 어른을 뵈면 길에서도 절을 했다. 상대방이 미안해서 눈에 띄면 미리 숨어버릴 형편이다. 관대차림으로 지나다가도 시간만 허락하면 주막에도 함께 들렀다.
 “아이구! 이게 누구셔? 우리같은 거 집엘 다 오시다니...”
  “무슨 말씀을? 옛날의 옥진이가 그 옥진이지, 어디 간답디까?”
  “아이구, 사위스러워라.  그러나 저러나 앉으실 데두  만만치 않구 무어 차려 놓은 게 있어야지...”
  “옛날 그대루가 좋아서 온 사람이니 수선 너무 떨지 말구, 자! 어서1”

  그 인정미 넘치는 이야기는 광해군 때 문장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 전한다. 그리고 이런 얘기도 덧붙이고 있다. 그분 자손 중에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난 의성군이라는 분이 있었다. 마침 손님과 장기판을 가운데 놓고 앉았는데 장기 만든 솜씨가 일품이라 곁의 친구가 집어보고 감탄하며 무심코 한다는 말이

  “거 참 잘 만들었다. 마치 옥진이 솜씨 같아이.”

 지위 높고 재산이 많아  인정미가 가신다면, 그까짓 지위나 재산, 조금도 부럽지 않다. 된장찌개 한 가지라도 인정이 담겼어야 제 맛이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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