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1.25 14:07

법과 도덕

조회 수 113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법과 도덕

가벼이 스치듯이 생각해보면 언어의 쓰임새는 깃털보다 가볍다. 그러나 깊이 돌이켜보면 언어의 무게는 태산보다 무겁다. 언어는 정치와 법률, 종교와 도덕 같은 묵직한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유용한 도구이다. 이것이 시대정신에 맞추어 제도화되어, 우리가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삼는 ‘규범’은 이 시대의 법률적 언어와 도덕적 언어로 구성하게 된다.

우리는 법을 성실히 지킴으로써 스스로 정당해진다. 동시에 도덕률도 잘 준수함으로써 자신의 행동과 사고가 올바름을 확신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법과 도덕을 따로따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공직자를 준엄하게 비판할 때에는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모든 책임을 지라”고 요구한다. 법과 도덕은 함께해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법과 도덕을 나누어 말하는 일이 눈에 띈다. “법적으로는 잘못이 없으나 도의적으로는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식의 표현들이다. 얼핏 들으면 도덕률을 중요시하는 것 같지만 법에 저촉만 안 되면 그까짓 도덕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꼼수가 깊이 박혀 있다. 죄송하다는 말 정도는 골백번 해도 전혀 손해날 것 없다는 천박한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도덕의 알맹이보다 법의 껍데기만 갖춘 눈속임이다.

도덕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며, 법 조항 문구에만 저촉되지 않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의 밑바닥에는 근본적인 반도덕성이 숨어 있다. 법 조항 하나하나의 규정은 도덕에서 추구하는 ‘선량함’과 ‘올바름’을 구현하려는 보편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도덕 정신은 뒷전으로 미루고 일단 법 조항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도덕률의 빈틈만 노리면 된다고 보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법꾸라지’들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6898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3393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8438
1896 손돌과 착량 바람의종 2008.06.17 9068
1895 "뿐"의 띄어쓰기 바람의종 2008.11.03 9068
1894 가이없는 은혜 바람의종 2012.08.17 9067
1893 호박고지 바람의종 2008.01.05 9061
1892 남산 신성비 바람의종 2008.02.16 9059
1891 부엌,주방,취사장 바람의종 2010.05.11 9059
1890 늑장 바람의종 2010.05.13 9055
1889 긴장하다와 식반찬 바람의종 2010.01.11 9054
1888 첫째, 첫 번째 바람의종 2008.09.06 9051
1887 사주 바람의종 2007.07.19 9050
1886 얼음보숭이·에스키모 바람의종 2008.03.14 9049
1885 엄한 사람 잡는다 바람의종 2011.11.14 9049
1884 ‘부럽다’의 방언형 바람의종 2007.10.11 9045
1883 카키색 바람의종 2008.10.26 9044
1882 사체, 시체 바람의종 2009.07.29 9041
1881 메리야스 바람의종 2010.01.06 9036
1880 가마귀 바람의종 2008.12.11 9031
1879 연결 어미 ‘-려’와 ‘-러’ 바람의종 2010.01.20 9030
1878 주최와 주관 바람의종 2010.02.21 9028
1877 구축함 바람의종 2007.06.04 9028
1876 캐러멜, 캬라멜 바람의종 2010.05.12 9027
1875 중계(中繼)와 중개(仲介) 바람의종 2012.06.14 902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64 65 66 67 68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