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1.25 14:04

연말용 상투어

조회 수 81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연말용 상투어

늘 쓰는 말 가운데 상투어가 있다. 단어 낱낱의 뜻과 관계없이 습관처럼 입에 익어서 사용하는 말들이다. 아는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반가워하며 “그렇잖아도 연락 한번 드리려고 했는데…” 같은 말들은 그 문장 내용의 사실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서로의 우호적인 감정을 드러내기만 하면 충분하다. 상당히 많은 상투어가 이렇게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말들이다.

상투어는 대개 일정하게 ‘정형화된 상황’을 계기로 삼아 사용된다. 보통 결혼식, 장례식, 축하 모임, 문안 인사 등이 상투어 사용의 계기들이다. 상투어는 진부한 부분도 있지만, 지나치게 세세하고 복잡한 언어적 묘사와 서술을 줄여주는 무척 요긴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상투어가 없었다면 우리는 매 순간 독특하고 적절한 표현을 찾느라 몹시 피곤했을 것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상황’에도 상투적으로 주고받는 인사말들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아마도 ‘다사다난한 올해를…’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일도 많고 탈도 많은’이라는 의미이지만 그런 뜻보다는 올해도 수고 많았다는 인사처럼 쓰였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턴가 왠지 이 말이 품은 심각하고 진지한 의미가 살아나며 부담스러워졌다. 단순한 상투어가 아니라 괜히 이런 말을 방정맞게 자주 사용해서 궂은일이 자꾸 터지는 것 같은 꺼림칙함 말이다.

특히 지난해는 정치적으로 국민들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고 번잡스러웠다. 뜻을 모아 마음을 함께하는 일이 보람도 있었지만 무척 힘들고 피곤했던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진정 원래의 단어 뜻 그대로 ‘다사다난’했다는 느낌이 든다. 올해에는 그동안의 온갖 적폐를 속시원히 털어내고 다음 연말은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정말 마음 가벼운 상투어로만 사용했으면 한다.

김하수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37737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184258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199177
    read more
  4. 마녀사냥

    Date2022.01.13 By風文 Views985
    Read More
  5. 주권자의 외침

    Date2022.01.13 By風文 Views1037
    Read More
  6.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중소기업 콤플렉스

    Date2022.01.13 By風文 Views1042
    Read More
  7. 지도자의 화법

    Date2022.01.15 By風文 Views1186
    Read More
  8. 쇠를 녹이다

    Date2022.01.15 By風文 Views1356
    Read More
  9. 야민정음

    Date2022.01.21 By風文 Views871
    Read More
  10. 말로 하는 정치

    Date2022.01.21 By風文 Views954
    Read More
  11. 연말용 상투어

    Date2022.01.25 By風文 Views819
    Read More
  12. 법과 도덕

    Date2022.01.25 By風文 Views844
    Read More
  13. 정당의 이름

    Date2022.01.26 By風文 Views893
    Read More
  14. 말과 공감 능력

    Date2022.01.26 By風文 Views791
    Read More
  15. 통속어 활용법

    Date2022.01.28 By風文 Views903
    Read More
  16. 외래어의 된소리

    Date2022.01.28 By風文 Views916
    Read More
  17. 정치의 유목화

    Date2022.01.29 By風文 Views1084
    Read More
  18. 태극 전사들

    Date2022.01.29 By風文 Views820
    Read More
  19. 아줌마들

    Date2022.01.30 By風文 Views825
    Read More
  20. 사저와 자택

    Date2022.01.30 By風文 Views827
    Read More
  21. 어떤 문답

    Date2022.01.31 By관리자 Views993
    Read More
  22. 말의 평가절하

    Date2022.01.31 By관리자 Views820
    Read More
  23. 삼디가 어때서

    Date2022.02.01 By風文 Views930
    Read More
  24. 순직

    Date2022.02.01 By風文 Views784
    Read More
  25.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IMF, 막고 품어라, 내 인감 좀 빌려주게

    Date2022.02.01 By風文 Views985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36 137 138 139 140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