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11.15 01:44

유신의 추억

조회 수 112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유신의 추억

말의 원래 뜻은 전혀 다르지만 그 기능과 쓰임새가 같아서 비유 혹은 유추를 통해 유의어나 동의어처럼 쓰는 경우가 있다. 전혀 다른 의미의 ‘국가’와 ‘가족’을 유의어처럼 쓰거나 ‘하나님’과 ‘아버지’를 같은 반열로 유추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요즘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걸리는 복합적인 사건들이 생기니까 정부는 시끄러운 논란을 피하자는 뜻에서 ‘국론분열’을 걱정하고 남북 긴장 상태에 ‘남남갈등’만 도드라진다고 분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는 이러한 인식에 뼈아픈 교훈을 남기고 있다.

중세 독일에서는 ‘부르크프리덴’(Burgfrieden)이라는 전통이 있었다. 보통 ‘성내평화’라고 번역한다. 적과 대치할 땐 사적인 다툼, 결투, 분규를 금한 것이다. 공동체의 당연한 규범이기도 하지만 악용도 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 황제는 러시아에 선전포고하면서 바로 이 전통에 근거하여 다수당인 야당이 반대하지 못하게 성내평화를 주장했다. 원래 전쟁을 반대했던 야당, 사회민주당은 그 논리에 넘어가 전쟁에 협조했다. 자신의 강령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의를, 러시아가 민중을 탄압한다는 빌미로, 또 황제의 성내평화라는 미끼를 물고, 저버린 것이다. 그리고 패전을 했다.

이 ‘성내평화’라는 단어는 1970년대 유신시대의 ‘국민총화’라는 말을 유추하게 한다. 국가 안보를 위해 이러쿵저러쿵하는 논쟁과 쟁점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 당시 정부와 여당의 요구였다. 시대와 지역은 다르지만 그 정략적 유용함은 독일의 황제에게나 한국의 독재자에게나 마찬가지였다. 추구하는 이상이 다를 때는 공동의 이해관계일지라도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다툴 수도 있다. 그럴수록 서로의 쟁점을 좁혀가는 언어적 민주주의를 활용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신의 추억이 아니라 유신의 교훈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2939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9373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4591
3234 그리고는, 그러고는 / 그리고 나서, 그러고 나서 바람의종 2010.07.05 15361
3233 움추리다 / 움츠리다, 오무리다 / 오므리다, 수구리다 / 수그리다 바람의종 2010.01.23 15342
3232 덤탱이, 덤테기, 담타기, 덤터기 바람의종 2010.09.03 15324
3231 초생달, 초승달 바람의종 2010.05.12 15309
3230 휫바람, 휘바람, 휘파람 바람의종 2009.06.30 15308
3229 조리다, 졸이다 바람의종 2012.11.06 15299
3228 아파, 아퍼 바람의종 2010.08.19 15270
3227 고뿔 風磬 2006.09.16 15250
3226 여부, 유무 바람의종 2009.05.29 15210
3225 일절과 일체 바람의종 2012.11.21 15160
3224 홀씨 바람의종 2010.03.09 15150
3223 엔간하다. 웬만하다. 어지간하다. 어연간하다 바람의종 2010.08.17 15136
3222 금시에, 금세, 금새, 그새 바람의종 2010.03.13 15123
3221 횡설수설 1 바람의종 2010.11.11 15102
3220 暴 (포와 폭) 바람의종 2011.11.10 15085
3219 거치다와 걸치다 바람의종 2010.03.23 15083
3218 세노야 바람의종 2012.11.01 15040
3217 더위가 사그러들다 바람의종 2010.07.10 15037
3216 감안하다 바람의종 2007.10.12 14983
3215 으레, 으례, 의례 바람의종 2012.08.23 14951
3214 '전(全), 총(總)' 띄어쓰기 바람의종 2009.09.27 14945
3213 휴거 바람의종 2007.10.10 1494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