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11.02 15:57

방언의 힘

조회 수 121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방언의 힘

우리는 서울말에다가 ‘표준’이라는 큰 권위를 실어준 반면, 나머지 여러 지역 방언들은 그냥 알아서 살아남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보니 방언은 지역 사람들의 애환과 정서를 담아가면서 언어 생태계 속에서 조용히 시들어 버리기도 했고 들풀처럼 뻗어나가기도 했다.

방언은 종종 특이한 어휘를 표준어에 보태주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낱낱의 단어가 아닌 옹근 문장이 통째로 널리 쓰이게 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그 문장 속에 탁월한 표현력, 촌철살인의 재치나 유용함이 깃들어 있을 때의 일이다.

한때 대통령 선거에 나돌았던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그 지역 사람들의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었다. 그 쓰임이 배타적이지만 않다면 이처럼 마음을 울렁이며 사람을 뭉치게 만드는 말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또 “우째 이런 일이!”라는 말은 아무리 애써도 되풀이되어 일어나는 액운이나 불행 앞에서 느껴지는 망연자실함에 공감하게 한다. 이러한 말들을 각각 “우리가 남인가?”라든지 “어째 이런 일이!”라고 서울말로 ‘번역’해서는 도저히 그 말맛을 옮기지 못한다.

요즘 한 영화에서 비롯한 “뭣이 중헌디?”라는 말도 삶의 가치와 의미를 살피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에게 한번 주위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이 말도 “뭐가 중요한데?”라고 번역을 해서는 그 깊은 뜻을 전혀 살리지 못한다. 쳇바퀴 돌리듯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는 말, 그건 기성품 같은 표준어보다는 생태계에서 풍부한 정서를 주워 담아온 방언이 제격이다. 자잘한 낱말이 아닌 하나의 온전한 문장으로, 뼈 있는 표현을 던져줌으로써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지혜롭게 하는 방언의 또 다른 힘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41451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187815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202955
    read more
  4. 꼬까울새 / 해독, 치유

    Date2020.05.25 By風文 Views1198
    Read More
  5. ‘사흘’ 사태, 그래서 어쩌라고

    Date2022.08.21 By風文 Views1209
    Read More
  6. 방언의 힘

    Date2021.11.02 By風文 Views1210
    Read More
  7. ‘걸다’, 약속하는 말 / ‘존버’와 신문

    Date2023.10.13 By風文 Views1210
    Read More
  8. 웰다잉 -> 품위사

    Date2023.09.02 By風文 Views1211
    Read More
  9. 환멸은 나의 힘 / 영어는 멋있다?

    Date2022.10.28 By風文 Views1217
    Read More
  10. 교정, 교열 / 전공의

    Date2020.05.27 By風文 Views1218
    Read More
  11. 경텃절몽구리아들 / 모이

    Date2020.05.24 By風文 Views1222
    Read More
  12. 깻잎 / 기림비 1

    Date2020.06.01 By風文 Views1222
    Read More
  13. 국가 사전 폐기론, 고유한 일반명사

    Date2022.09.03 By風文 Views1222
    Read More
  14. 매뉴얼 / 동통

    Date2020.05.30 By風文 Views1224
    Read More
  15. 이 자리를 빌려

    Date2023.06.06 By風文 Views1227
    Read More
  16. 4·3과 제주어, 허버허버

    Date2022.09.15 By風文 Views1230
    Read More
  17. 개양귀비

    Date2023.04.25 By風文 Views1230
    Read More
  18. 선정-지정 / 얼룩빼기 황소

    Date2020.05.15 By風文 Views1231
    Read More
  19. 어쩌다 보니

    Date2023.04.14 By風文 Views1237
    Read More
  20. ‘괴담’ 되돌려주기

    Date2023.11.01 By風文 Views1238
    Read More
  21. 정치의 유목화

    Date2022.01.29 By風文 Views1241
    Read More
  22. 흰 백일홍?

    Date2023.11.27 By風文 Views1249
    Read More
  23. 아이 위시 아파트

    Date2023.05.28 By風文 Views1251
    Read More
  24. 외부인과 내부인

    Date2021.10.31 By風文 Views1254
    Read More
  25. 너무

    Date2023.04.24 By風文 Views1254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