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10.30 10:10

소통과 삐딱함

조회 수 89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소통과 삐딱함

어떤 문제나 사건이 터졌을 때 당사자들이 사태를 수습하기 어려워하면 주변에서 호의적인 간여를 시작한다. 이럴 때는 자신이 유대감을 가진 사람이 누군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좋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조언한다면서 그들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도 없이 오로지 ‘메마른 논리’만 가득 찬 말만 던지면 차라리 처음부터 끼어들지 않는 게 더 도움이 된다.

미국의 흑인들이 경찰들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면서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구호를 외친다. 이에 대해 일부 백인들은 “모든 이의 목숨도 중요하다”고 되받아치고 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백인들의 반응이 논리적으로 더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그 맥락을 들여다보면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면하거나 은폐하려 하는 삐딱함을 눈치챌 수 있다.

일부 변호사들이 최근에 들어온 탈북자들에 대해 인신구제 신청을 했다. 그에 대해 또 다른 탈북자들이 그 변호사들에게 북에 남은 가족들의 인권 상황 조사를 의뢰하는 신청을 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삐딱한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북녘 주민의 인권을 다룰 능력 없으면 남으로 온 탈북자들의 인권 문제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뜻을 넌지시 비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소통이 아닌 불통이 흘러넘치게 된 까닭은 말의 뜻이나 문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소통 자체를 삐딱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듯하면서도 비논리적이고, 소통을 지향하는 듯하면서도 뒤통수치기가 더 앞서고 있다. 문제를 정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통은 문제의 해결보다는 문제의 확산을 불러온다. 불통은 언어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1. No Image notice by 바람의종 2006/09/16 by 바람의종
    Views 39748 

    ∥…………………………………………………………………… 목록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3. No Image notice by 風磬 2006/09/09 by 風磬
    Views 201301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4. No Image 21Jul
    by 風文
    2022/07/21 by 風文
    Views 900 

    3인칭은 없다, 문자와 일본정신

  5. No Image 05Sep
    by 風文
    2022/09/05 by 風文
    Views 900 

    시간에 쫓기다, 차별금지법과 말

  6. No Image 10Nov
    by 風文
    2021/11/10 by 風文
    Views 903 

    주어 없는 말

  7. No Image 30May
    by 風文
    2022/05/30 by 風文
    Views 903 

    북혐 프레임, 인사시키기

  8. No Image 27Jun
    by 風文
    2022/06/27 by 風文
    Views 903 

    뒷담화 보도, 교각살우

  9. No Image 08Feb
    by 風文
    2024/02/08 by 風文
    Views 903 

    금수저 흙수저

  10. No Image 18Jun
    by 風文
    2022/06/18 by 風文
    Views 904 

    새로운 한자어, 이름과 실천

  11. No Image 06Jan
    by 風文
    2024/01/06 by 風文
    Views 904 

    사라져 가는 한글 간판

  12. No Image 25Jul
    by 風文
    2022/07/25 by 風文
    Views 905 

    말의 이중성, 하나 마나 한 말

  13. No Image 31Jan
    by 관리자
    2022/01/31 by 관리자
    Views 906 

    말의 평가절하

  14. No Image 21Nov
    by 風文
    2023/11/21 by 風文
    Views 907 

    군색한, 궁색한

  15. No Image 30Dec
    by 風文
    2023/12/30 by 風文
    Views 907 

    ‘이고세’와 ‘푸르지오’

  16. No Image 15Oct
    by 風文
    2021/10/15 by 風文
    Views 909 

    ‘선진화’의 길

  17. No Image 01Mar
    by 風文
    2023/03/01 by 風文
    Views 909 

    울면서 말하기

  18. No Image 30Jan
    by 風文
    2022/01/30 by 風文
    Views 910 

    아줌마들

  19. No Image 04Jan
    by 風文
    2024/01/04 by 風文
    Views 910 

    식욕은 당기고, 얼굴은 땅기는

  20. No Image 15Sep
    by 風文
    2021/09/15 by 風文
    Views 913 

    비판과 막말

  21. No Image 01Dec
    by 風文
    2021/12/01 by 風文
    Views 919 

    더(the) 한국말

  22. No Image 06Jan
    by 風文
    2024/01/06 by 風文
    Views 919 

    북한의 ‘한글날’

  23. No Image 09Nov
    by 風文
    2023/11/09 by 風文
    Views 921 

    왕의 화병

  24. No Image 26Mar
    by 風文
    2024/03/26 by 風文
    Views 921 

    웃어른/ 윗집/ 위층

  25. No Image 14Oct
    by 風文
    2021/10/14 by 風文
    Views 922 

    언어의 혁신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