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10.15 15:21

세로드립

조회 수 116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세로드립

언어의 기능을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하면, 정보와 사상을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줄여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과서 안의 지식보다 바깥 지식이 더 많듯이, 언어도 교과서 바깥의 기능이 더 많다. 예를 들어 말장난, 남을 놀리거나 약 올리기, 거룩한 대상에 대한 희롱이나 조롱 같은 것들은 언어의 또 다른 다양한 역할이다.

점잖은 작가들은 언어로 사랑과 비애, 순정과 분노를 적절히 걸러내며 그들의 ‘작품’을 만든다. 반대로 세속의 보통사람들은 언어로 온갖 장난을 치며 살아간다. 진지함보다는 가벼움으로, 감정의 승화보다는 배설을 선호한다. 이른바 속세의 말장난들이다. 대중이 생산한 통속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에 유행했던 ‘덩달이 시리즈’라든지 ‘만득이 시리즈’ 또는 요즘도 간간이 하고 있는 ‘삼행시’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뜻하지 않게 요즈음 ‘세로드립’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등장했다. 가로로 쓴 문장들의 첫 번 음절들을 세로로도 읽을 수 있게 메시지를 이중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가로로 던지는 사연은 긍정적인 것으로, 세로로 말하는 내용은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것으로 엮음으로써 상호모순적이고도 양가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고도의 문학 정신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 속에서 끓어오르는 비아냥, 조소 등을 잘 드러내 준다.

이런 작품이 점잖은 공모전에 당선되어 웃음거리가 되고 이러한 언어유희를 놓고 송사까지 벌어지는 모양이다. 희롱당한 측의 노여움은 백분 이해되나 유희나 개그를 대상으로 재판을 벌인다는 것은 더 큰 조롱을 불러들이는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한다. 차라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그와 같은 찬양 문학의 공모전이 과연 지금의 시대정신에 부합하기는 했는지를 되묻는 것이 가장 슬기로운 길이 아닌가 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교수
 


  1. No Image notice by 바람의종 2006/09/16 by 바람의종
    Views 40407 

    ∥…………………………………………………………………… 목록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3. No Image notice by 風磬 2006/09/09 by 風磬
    Views 201967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4. No Image 28Oct
    by 風文
    2022/10/28 by 風文
    Views 1167 

    환멸은 나의 힘 / 영어는 멋있다?

  5. No Image 01Dec
    by 風文
    2021/12/01 by 風文
    Views 1168 

    공적인 말하기

  6. No Image 02Nov
    by 風文
    2021/11/02 by 風文
    Views 1181 

    방언의 힘

  7. No Image 02Sep
    by 風文
    2023/09/02 by 風文
    Views 1189 

    웰다잉 -> 품위사

  8. No Image 25May
    by 風文
    2020/05/25 by 風文
    Views 1193 

    꼬까울새 / 해독, 치유

  9. No Image 01Jun
    by 風文
    2020/06/01 by 風文
    Views 1196 

    깻잎 / 기림비 1

  10. No Image 06Jun
    by 風文
    2023/06/06 by 風文
    Views 1196 

    이 자리를 빌려

  11. No Image 31Oct
    by 風文
    2021/10/31 by 風文
    Views 1197 

    외부인과 내부인

  12. No Image 21Aug
    by 風文
    2022/08/21 by 風文
    Views 1198 

    ‘사흘’ 사태, 그래서 어쩌라고

  13. No Image 25Apr
    by 風文
    2023/04/25 by 風文
    Views 1198 

    개양귀비

  14. No Image 29Jan
    by 風文
    2022/01/29 by 風文
    Views 1200 

    정치의 유목화

  15. No Image 14Apr
    by 風文
    2023/04/14 by 風文
    Views 1203 

    어쩌다 보니

  16. No Image 21Jun
    by 風文
    2023/06/21 by 風文
    Views 1205 

    우리나라

  17. No Image 24Apr
    by 風文
    2023/04/24 by 風文
    Views 1209 

    너무

  18. No Image 27May
    by 風文
    2020/05/27 by 風文
    Views 1211 

    교정, 교열 / 전공의

  19. No Image 24May
    by 風文
    2020/05/24 by 風文
    Views 1215 

    경텃절몽구리아들 / 모이

  20. No Image 15Sep
    by 風文
    2022/09/15 by 風文
    Views 1216 

    4·3과 제주어, 허버허버

  21. No Image 03Sep
    by 風文
    2022/09/03 by 風文
    Views 1217 

    국가 사전 폐기론, 고유한 일반명사

  22. No Image 27Nov
    by 風文
    2023/11/27 by 風文
    Views 1217 

    흰 백일홍?

  23. No Image 30May
    by 風文
    2020/05/30 by 風文
    Views 1218 

    매뉴얼 / 동통

  24. No Image 01Nov
    by 風文
    2023/11/01 by 風文
    Views 1218 

    ‘괴담’ 되돌려주기

  25. No Image 17Aug
    by 風文
    2022/08/17 by 風文
    Views 1221 

    인기척, 허하다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