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10.15 15:21

세로드립

조회 수 140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세로드립

언어의 기능을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하면, 정보와 사상을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줄여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과서 안의 지식보다 바깥 지식이 더 많듯이, 언어도 교과서 바깥의 기능이 더 많다. 예를 들어 말장난, 남을 놀리거나 약 올리기, 거룩한 대상에 대한 희롱이나 조롱 같은 것들은 언어의 또 다른 다양한 역할이다.

점잖은 작가들은 언어로 사랑과 비애, 순정과 분노를 적절히 걸러내며 그들의 ‘작품’을 만든다. 반대로 세속의 보통사람들은 언어로 온갖 장난을 치며 살아간다. 진지함보다는 가벼움으로, 감정의 승화보다는 배설을 선호한다. 이른바 속세의 말장난들이다. 대중이 생산한 통속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에 유행했던 ‘덩달이 시리즈’라든지 ‘만득이 시리즈’ 또는 요즘도 간간이 하고 있는 ‘삼행시’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뜻하지 않게 요즈음 ‘세로드립’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등장했다. 가로로 쓴 문장들의 첫 번 음절들을 세로로도 읽을 수 있게 메시지를 이중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가로로 던지는 사연은 긍정적인 것으로, 세로로 말하는 내용은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것으로 엮음으로써 상호모순적이고도 양가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고도의 문학 정신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 속에서 끓어오르는 비아냥, 조소 등을 잘 드러내 준다.

이런 작품이 점잖은 공모전에 당선되어 웃음거리가 되고 이러한 언어유희를 놓고 송사까지 벌어지는 모양이다. 희롱당한 측의 노여움은 백분 이해되나 유희나 개그를 대상으로 재판을 벌인다는 것은 더 큰 조롱을 불러들이는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한다. 차라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그와 같은 찬양 문학의 공모전이 과연 지금의 시대정신에 부합하기는 했는지를 되묻는 것이 가장 슬기로운 길이 아닌가 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교수
 


  1. No Image notice by 바람의종 2006/09/16 by 바람의종
    Views 53803 

    ∥…………………………………………………………………… 목록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3. No Image notice by 風磬 2006/09/09 by 風磬
    Views 215409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4. No Image 02Nov
    by 風文
    2021/11/02 by 風文
    Views 1483 

    방언의 힘

  5. No Image 18Nov
    by 風文
    2022/11/18 by 風文
    Views 1485 

    만인의 ‘씨’(2) / 하퀴벌레, 하퀴벌레…바퀴벌레만도 못한 혐오를 곱씹으며

  6. No Image 24Jun
    by 風文
    2022/06/24 by 風文
    Views 1487 

    한글의 약점, 가로쓰기 신문

  7. No Image 02Jun
    by 風文
    2023/06/02 by 風文
    Views 1488 

    ‘부끄부끄’ ‘쓰담쓰담’

  8. No Image 02Jun
    by 風文
    2022/06/02 by 風文
    Views 1489 

    대화의 어려움, 칭찬하기

  9. No Image 04Sep
    by 風文
    2022/09/04 by 風文
    Views 1490 

    일타강사, ‘일’의 의미

  10. No Image 29Jul
    by 風文
    2022/07/29 by 風文
    Views 1491 

    노랗다와 달다, 없다

  11. No Image 10May
    by 風文
    2022/05/10 by 風文
    Views 1494 

    성인의 세계

  12. No Image 18Oct
    by 風文
    2023/10/18 by 風文
    Views 1500 

    배운 게 도둑질 / 부정문의 논리

  13. No Image 14Jul
    by 風文
    2022/07/14 by 風文
    Views 1508 

    형용모순, 언어의 퇴보

  14. No Image 17Apr
    by 風文
    2023/04/17 by 風文
    Views 1509 

    멋지다 연진아, 멋지다 루카셴코

  15. No Image 17Feb
    by 風文
    2024/02/17 by 風文
    Views 1509 

    내 청춘에게?

  16. No Image 04Jun
    by 風文
    2020/06/04 by 風文
    Views 1510 

    방방곡곡 / 명량

  17. No Image 03Sep
    by 風文
    2022/09/03 by 風文
    Views 1512 

    국가 사전 폐기론, 고유한 일반명사

  18. No Image 28May
    by 風文
    2020/05/28 by 風文
    Views 1515 

    마라톤 / 자막교정기

  19. No Image 25Apr
    by 風文
    2023/04/25 by 風文
    Views 1518 

    개양귀비

  20. No Image 14Apr
    by 風文
    2023/04/14 by 風文
    Views 1521 

    어쩌다 보니

  21. No Image 26Mar
    by 風文
    2024/03/26 by 風文
    Views 1521 

    온나인? 올라인?

  22. No Image 06Dec
    by 風文
    2023/12/06 by 風文
    Views 1522 

    '넓다'와 '밟다'

  23. No Image 18Feb
    by 風文
    2024/02/18 by 風文
    Views 1522 

    배레나룻

  24. No Image 18May
    by 風文
    2022/05/18 by 風文
    Views 1524 

    콩글리시

  25. No Image 03Aug
    by 風文
    2022/08/03 by 風文
    Views 1524 

    괄호, 소리 없는, 반격의 꿔바로우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