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09.03 23:46

잡담의 가치

조회 수 65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잡담의 가치

 사람들이 모이면 처음에는 좀 조용하다가 이내 웅성거리고 수군거리게 된다. 자연히 목소리를 점점 더 높이게 되고 시끄러워진다. 이렇다 할 의미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잡스럽다 하여 잡담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이들이 웅성거리는 것은 대개 기초 정보를 수집하고 교환하는 과정이다. 상황이 어찌 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손해 보지 않는지 등을 캐내려고 더듬이로 확인하는 중이다.

 아는 사람들이 모이면 금방 노닥거린다. 화제도 자유롭다. 주제의 일관성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 하다가 쉽게 저런 이야기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전혀 부담스러워하거나 짜증스러워하지 않는다. 이것도 잡담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과정도 그리 무의미하지는 않다. 서로의 감성을 공유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친한 사람들일수록 잡담을 많이 한다. 이렇다 할 결론도 없고, 뚜렷한 주제도 없었으면서도 오랜 시간 노닥거리고 나서는 매우 흡족해한다. 나중에 또 보자고 하게 되고 또 만나면 역시 그저 그런 잡담을 하게 된다. 그만큼 잡담을 통한 감성의 교류는 사람들을 무척 만족스럽게 만든다. 그 까닭은 잡담이 참여자들에게 ‘유대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잡담을 하고 나서 느끼는 뿌듯함은 사실 재확인된 유대감이 남긴 마음의 흔적이다. 그러나 잡담은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 가까운 사람들과도 자주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공유하는 감성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잡담은 자꾸만 잦아지고, 시간 낭비로 오해받기 쉽다.

그러면서도 잡담은 사람들 사이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 얼핏 보기에는 무가치한 언어 활동 같으면서도 공동체의 유대 의식을 형성하는 데에는 더없이 유용한 수단이다. 지금의 우리 언어가 형성되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잡담으로 그 기초 공사를 한 셈이다. 잡담은 모든 언어의 주춧돌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0442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6935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1895
3370 자웅을 겨루다 바람의종 2008.01.28 20781
3369 들어눕다 / 드러눕다, 들어내다 / 드러내다 바람의종 2012.08.16 20728
3368 잔떨림 윤안젤로 2013.03.18 20727
3367 고수레 風磬 2006.09.18 20559
3366 찰라, 찰나, 억겁 바람의종 2012.01.19 20496
3365 외래어 합성어 적기 1 바람의종 2012.12.12 20424
3364 뒤처리 / 뒷처리 바람의종 2008.06.07 20377
3363 옴쭉달싹, 옴짝달싹, 꼼짝달싹, 움쭉달싹 바람의종 2010.08.11 20333
3362 회가 동하다 바람의종 2008.02.01 20293
3361 가늠하다, 가름하다, 갈음하다 바람의종 2011.12.30 20281
3360 요, 오 風磬 2006.09.09 20197
3359 어떠태? 바람의종 2013.01.21 20092
3358 배알이 꼬인다 바람의종 2008.01.12 20051
3357 역할 / 역활 바람의종 2009.08.27 19958
3356 에요, 예요 風磬 2006.09.09 19941
3355 진무르다, 짓무르다 바람의종 2010.07.21 19917
3354 봄날은 온다 윤안젤로 2013.03.27 19856
3353 조개 바람의종 2013.02.05 19829
3352 베짱이, 배짱이 / 째째하다, 쩨제하다 바람의종 2012.07.02 19787
3351 목로주점을 추억하며 윤안젤로 2013.03.28 19779
3350 기가 막히다 바람의종 2007.12.29 19710
3349 매기다와 메기다 바람의종 2010.03.12 1960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