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0.06.24 19:51

국방색 / 중동

조회 수 229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국방색

박근혜 대통령의 의상이 눈길을 끌었다. 취임 3년차를 맞아 청와대 직원 조회에 참석했을 때의 옷차림이다. 통상 비서실장이 주관하는 행사에 대통령이 직접 나섰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카키색 상의에 검정 바지 정장 차림의 박 대통령이…’(ㅇ뉴스), ‘취임식 때 입었던 카키색 정장과 비슷한 차림으로…’(ㅎ일보), ‘…카키색 상의를 입고 직원들 앞에 섰다’(ㅈ일보). 한 방송은 “카키가 뭡니까? 군대에서 입는 전투복이에요…”라며 “(카키색은)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복색”이라 해석하기도 했다.(ㅇ케이블 뉴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방색 재킷을 입었다’(ㄷ일보)고 전한 신문도 있었다. 취임식 이후 해마다 같은 날 같은 빛깔로 차려입은 대통령의 옷은 카키색인가, 국방색인가.

카키색은 ‘누른빛에 엷은 갈색이 섞인 빛깔’이니, 그날 대통령이 입은 재킷은 ‘나뭇잎이나 풀잎과 같은 짙은 초록색’인 국방색에 가깝다.(고려대한국어대사전) 인터넷 뉴스 검색 결과는 ‘대통령-카키색’ 29만4000개, ‘대통령-국방색’ 288개로 차이가 크다.(구글 뉴스) 황토색과 초록색, 확연히 다른 것인데도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 건 ‘군복=카키’라 오해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카키색은 흙먼지를 뜻하는 페르시아어 ‘카크’에서 온 말이다. ‘카키’(khaki)는 인도가 영국 식민지일 때의 군복 색깔이었다. 이후 사막과 해변에서 작전하는 군의 위장색으로 애용되었다.(위키백과) ‘카키’가 넓은 지역에 걸쳐 오랜 세월 군복의 위장색으로 사용되었기에 우리나라에선 ‘국방색’으로 잘못 쓰이고 있는 것이다. ‘육군의 군복 빛깔과 같은 카키색이나 어두운 녹갈색’이라 설명한 <표준국어대사전>의 흐리터분한 ‘국방색’ 풀이는 그래서 문제다. 그릇된 새김이 그렇고, ‘카키색’(탁한 황갈색. 주로 군복에 많이 쓴다), ‘카키복’(카키색의 군복. ‘카키’는 인도어로 ‘흙’을 뜻한다)의 뜻풀이와도 어그러지기 때문이다.

………………………………………………………………………………………………………………

중동

‘뉴스’(news)는 ‘새로운 것’(new)의 복수형이다. 한때 ‘북(N)-동(E)-서(W)-남(S) 사방에서 전해오는 기별을 한데 모은 소식’이란 그럴듯한 주장에 솔깃했던 적이 있었지만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영어권이 아닌 다른 나라의 같은 뜻 표현도 ‘새로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얻은 소득은 ‘뉴스의 어원 확인’만이 아니었다. ‘동서남북’을 서양에서는 ‘북-남-동-서’ 순으로 꼽는다는 것이다.

동가식서가숙, 동분서주, 동문서답, 동서고금처럼 방향을 짚을 땐 언제나 ‘동’(東)이 ‘서’(西)에 앞선다. 남남북녀, 남전북답(南田北畓, 논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 뜻)에서 보듯 ‘남’(南)은 ‘북’(北)보다 앞선다. 우리 지도와 사전엔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동북아시아만 있을 뿐 ‘남동(남서/북동)아시아’는 없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방언 이야기>는 ‘동남 방언’, ‘서남 방언’, ‘동북 방언’, ‘서북 방언’, ‘중부 방언’, ‘제주 방언’으로 나눠 설명한다. 미국 델타항공에 합병된 ‘노스웨스트항공’(NWA)은 영어 순서(북-서)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서북항공’으로 불렸다. 자석을 다른 말로 ‘지남철’(指南鐵)이라 하는 것도 새겨볼 만하다. 방위를 매길 때 우리는 동-서-남-북 순으로 꼽은 것이다.

말은 문화다. 문화에서 말이 비롯한다. 방위 순서에도 문화가 담겨 있다. 서양의 ‘북동아시아’(Northeast-)를 우리 언어문화에 맞춰 ‘동북아시아’라 하는 건 그래서다. 유럽 관점에서 나온 ‘극동’(the Far East), ‘근동’(the Near East)이란 명칭은 ‘동아시아’, ‘서아시아’로 바꾼 지 제법 되었다. 영국의 패권이 한창이던 19세기에 등장한 ‘중동’(the Middle East)은 이렇다 할 대체어를 찾기 어렵다. 지리적 경계를 떠나 문화·종교적 무게가 가볍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중동’을 갈음할 말, 뭐가 있을까.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7600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4266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9147
2886 국물도 없다, 그림책 읽어 주자 風文 2022.08.22 1274
2885 국민 바람의종 2008.11.23 4560
2884 국민께 감사를 風文 2021.11.10 1479
2883 국민들 바람의종 2010.09.08 11732
» 국방색 / 중동 風文 2020.06.24 2299
2881 국수 바람의종 2007.06.05 7465
2880 국어 영역 / 애정 행각 風文 2020.06.15 1685
2879 국어와 국립국어원 / 왜 風文 2022.08.29 1351
2878 국어의 품사 1 바람의종 2009.12.14 15009
2877 국으로 바람의종 2010.11.25 10967
2876 군말 바람의종 2008.05.13 7382
2875 군불을 떼다 바람의종 2007.12.28 12907
2874 군색한, 궁색한 風文 2023.11.21 1332
2873 군인의 말투 風文 2021.09.14 913
2872 굳은 살이 - 박혔다, 박였다, 배겼다 바람의종 2009.07.28 8878
2871 굴뚝새 바람의종 2009.07.08 6084
2870 굴레와 멍에 바람의종 2008.01.17 7726
2869 굴레와 멍에 바람의종 2010.05.18 11527
2868 굴지 바람의종 2007.06.05 6972
2867 굴착기, 굴삭기, 레미콘 바람의종 2008.10.17 7958
2866 굼때다 바람의종 2008.07.05 6939
2865 굽신거리다 바람의종 2008.10.22 681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