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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

광화문 광장에 흰 천이 덮인 것처럼 보였다. 팔랑이는 미사포가 탐스러운 함박눈처럼 다가온 것이다. 산타의 빨간 옷이 화면에 선연하게 떠오르는 듯했다. 순교를 상징하는 붉은 제의가 언뜻 그렇게 보인 것이다. 시청 앞에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노란 불빛이 반짝이는 듯 흩날렸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리본의 나풀거림을 장식이 깜박이는 것처럼 본 것이다. 여름의 기세는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물러섰고 ‘비바 파파’의 함성과 우레 같은 박수, 기도의 힘이 그 자리를 채웠다. 광화문과 시청 먼발치에서 함께한 ‘시복식 현장’이 그랬다.

‘왠지 울컥’, ‘콧등 시큰’, ‘괜히 눈물’…. 프란치스코 교황을 대하는 누리꾼의 반응이다. 교황이 내민 손길에 세월호 유족이 친구(親口, 숭상하고 존경하는 대상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입을 맞춤)하는 광경은 숱한 감동의 하나일 뿐이다. ‘유민 아빠’의 편지를 손수 주머니에 넣는 장면은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상대에 마음 못 여는 대화는 독백’이라 한 말씀은 잠언으로 남는다. 맞다. 대화는 ‘말하기’가 아닌 ‘듣는 것’으로 완성되고, 소통은 ‘전달’과 ‘수용’이 어우러지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시복 청원’을 받아들인 교황은 ‘가경자’(可敬者, 시복 후보에 대한 존칭)를 ‘복자’로 허락했다. 가톨릭의 ‘복자’, ‘성인’, ‘시복(식)’, ‘시성(식)’의 뜻은 여러 매체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수단’(목부터 발목까지 단추가 달려 있는 사제복), ‘장백의’(제의 아래 받쳐 입는 길고 흰 옷), ‘영대’(목에 걸어 가슴 앞으로 늘어뜨리는 띠) 같은 명칭은 낯설지 않은 표현이 되었다. ‘교황 성하’에서 ‘교종’으로, 다시 ‘낮은 자의 목자’로 다가선 교황 또한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그가 머물렀던 닷새의 대한민국은 ‘8월의 크리스마스’로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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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꺼짐

'싱크홀’은 지질 현상의 하나를 가리키는 용어다. 정보통신기술(IT) 용어로 쓰일 때도 있다. 지질학에서 ‘싱크홀’은 ‘용식 함지’라 한다. ‘용식’은 빗물이나 지하수가 암석을 녹여서 침식하는 현상, ‘함지’는 움푹 꺼져 들어간 땅을 뜻한다. 석회암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싱크홀’이 최근엔 자연 지형과 무관한 곳에서도 일어난다. 지하 난개발의 결과로 추측하지만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정보통신기술 분야의 ‘싱크홀’은 ‘디엔에스(DNS) 싱크홀’, ‘디도스(DDoS) 싱크홀’처럼 ‘악성 봇 차단 솔루션’의 하나를 이르는 이름이다.

문화방송이 <신비한 티브이 서프라이즈>에서 소개한 ‘싱크홀’은 외국의 불가사의 현상을 엮어 전한 ‘남의 얘기’였다.(2010년) 에스비에스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괴구멍 미스터리, 싱크홀의 정체는?’을 다루면서 비로소 ‘한국도 싱크홀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2012년) 기사 검색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언론에 ‘싱크홀’이 등장한 때는 2010년이다.(네이버) 나라밖 소식으로 이따금 알려지기 시작한 ‘싱크홀’은 국내 발생이 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기사 빈도가 늘어났다. 최근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 근처 사고로 ‘수도권 주민 95%, “싱크홀 무서워”’(<한겨레> 8월21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싱크홀’(sink hole)이 낯설 때 매체들은 ‘순식간에 땅이 푹 꺼져 버리는(현상)’, ‘멀쩡하던 땅이 갑자기 꺼져 생기는 구멍’, ‘(땅이)가라앉아 생긴 구멍’, ‘지반이 붕괴되는(현상)’, ‘거대 구멍’, ‘움푹 팬 웅덩이’, ‘지반침하’ 따위의 설명을 붙였다. 명사인 원어를 설명적으로 다루거나, 웅덩이(움푹 파여 물이 괸 곳)처럼 풀이가 적절하지 않은 것도 있다. ‘땅꺼짐’은 어떨까. 널리 쓰이고(14만2000건, 구글), 정부 발표문에도 나오는 표현이다.(‘물관리 종합대책’, 1996년 8월)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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