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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목소리

의젓한 김연아 선수. 우리나이로 스물다섯, 어른이지만 ‘어린 말투’를 쓰는 또래 젊은이가 많은 시대에 그의 말씨는 돋보인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어느 날 ‘아이처럼’ 말하기 시작한 서른 즈음의 여자 후배가 떠올랐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끝의 변화였다. 새로운 남자친구를 찾아 나서기 위해 예쁘게 아기처럼 소리 내려 했던 것이다. 이런 것을 ‘위장발화’라 한다는 걸 <한겨레> ‘esc’를 통해 알았다. ‘사람의 목소리에는 표현하기 어려운 에너지와 파장이 숨어 있음’을 짚어준 지난주 ‘내 목소리 성형법’ 기사는 인상적이었다. 좋은 목소리는 곧 예쁜 목소리가 아닐 수 있다는 걸 언중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가수나 성우, 아나운서의 성대는 예쁘게 생겼다. 같은 가수여도 판소리하는 사람을 보면 혹이나 굳은살이 박인 성대가 많다. 쇳소리를 내는 사람은 성대가 가지런하게 맞닿아 있지 않다.” ‘성대를 보면 직업을 알 수 있다’는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말이다. 성대에 따라 목소리가 결정된다는 얘기지만 고운 목소리가 곧 좋은 목소리의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그는 덧붙인다. 성대는 악기와 같은 것이어서 연주법을 제대로 익혀 갈고닦으면 투박한 악기(성대)로도 훌륭한 연주(발성)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 성형’의 기본은 바른 발성과 발음에서 시작한다. 그렇다고 ‘성형’이 ‘호감 있는 소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좋은 음색에 훌륭한 발성으로 말해도 불편하게 들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투박한 목소리여도 편하게 들리는, 가슴 울리는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 채제공은 <번암집>에서 ‘말이란 마음에서 나온다’ 했고, 같은 시기 프랑스의 철학자 조르주루이 뷔퐁은 ‘스타일(화법·문체)은 그 사람 자신이다’라고 했다. 말(글)은 곧 사람, 인격인 것이다. 호감 있는 소리를 내려면 예쁘게 고치거나 만드는 ‘성형’만큼이나 인격(마음)을 바로잡는 ‘정형’에 힘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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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발음

라디오 청취율 1위를 다투는 한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김연아 선수는) 새로운 ‘슬레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라 했다. 여자 진행자가 멈칫하는 느낌이 전파 너머로 느껴질 순간 남자 진행자가 “영어가 아닌, ‘설레임!’” 하며 잡아챈다. “아, ‘슬레임’이 아니라 ‘설·레·임’입니까?”로 되받은 출연자. ‘설렘’이 맞는 말이지만, ‘사투리가 귀엽다’는 청취자의 반응을 전하며 프로그램은 마무리됐다. 그런가 하면 그 옛날 어려웠던 청소년기를 얘기하며 ‘특수상고’를 졸업했다고 힘주어 말한 국어 선생님이 있었다. 그 학교가 ‘덕수상고’였음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묵동’(중랑구) ㅎ아파트 가자고 했던 손님, 혹시 싶어 되물으니 ‘목동’(양천구)이었다”는 택시 기사를 만난 적도 있었고. 모두 ‘ㅓ/ㅡ’ 구별이 모호한 경상 방언 때문에 생긴 일이다.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에는 말씨가 엉망인 꽃 파는 처녀와 그의 말투를 다듬어 사교계에 데뷔시키겠다고 장담하는 음성학자가 나온다. 그의 호언은 현실이 되고 영화는 행복결말(해피엔딩)로 끝난다. [h] 음가를 제대로 내기 위한 ‘촛불 불기’로 [후]와 [하] 따위의 후음을 익히고, ‘입에 구슬 넣고 발음하기’처럼 조음기관 길들이기로 바른 소릿값을 만드는 방법 등이 영화에 나온다. ‘The rain in spain stays mainly in the plain’(스페인에서 비는 평야에만 내린다)을 되뇌며 [r]과 [l]의 소릿값을 익혀가는 주인공의 노력은 ‘제값’을 한다. 훈련으로 발음 바룰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좋은 발음, 곧 정확한 발음의 출발은 ‘법학[버박]’, ‘밑을[미슬/미츨]’, ‘그렇지[그러지]’가 아닌 [버팍], [미틀], [그러치]처럼 연음을 살리는 것이다. 모음 소릿값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 ‘6모음(ㅣ, ㅏ, ㅜ, ㅗ, ㅔ/ㅐ, ㅡ/ㅓ)체계’인 경상 방언 화자도 반복 훈련으로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는 것이다. 국립국어원 누리집(www.korean.go.kr)의 ‘바른발음’은 좋은 발음의 길잡이로 삼을 만하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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