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0.05.07 07:43

위탁모, 땅거미

조회 수 149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위탁모

  목요일 깊은 밤에 안방극장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 있다. ‘자원봉사 희망 프로젝트, 나누면 행복’이다. 엊그제 방송의 주인공은 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갓난아기였다. 심장 수술을 받아 파리한 아기를 보니 콧등이 시큰거렸다. 그랬던 핏덩이에 살이 오르고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양부모가 나서기 전까지 보살피는 자원봉사자의 돌봄 덕분이다. 프로그램은 아기의 뜻깊은 백일을 담아냈다. 한 배우가 ‘일일엄마’로 나서 씻기고 먹이고 재우며 돌봐준 것이다. 그의 역할은 ‘위탁모’였다.

  위탁모(가정)’를 사전에서 찾으니 나오지 않는다. 방송에서 써도 되겠느냐'는 방송 작가의 문의가 ‘위탁모’를 글감으로 삼게 했다. 무심히 흘렸던 관련 표현을 찾아보았다. ‘(입양 전) 위탁모’는 1980년대 중반에 등장한다. 그 이전에 “위탁양육보호제도를 처음 실시한 곳은 홀트아동복지회로 67년부터였다… 위탁양육부모의 조건은…”(ㅁ경제, 1976년 3월15일)에서처럼 ‘위탁양육 부모’가 보이기도 한다. 위탁은 ‘남에게 사물이나 사람의 책임을 맡김’으로, 여기에 붙어 만들어진 낱말은 ‘-무역’, ‘-품’, ‘-생’, ‘-인’ 등 32개였다.(표준국어대사전) 이에 기대어 ‘위탁모’의 뜻을 새기면 ‘일정한 계약 아래 남에게 아이를 맡긴 여자’가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탁모’와 다른 것이다.

‘조어의 문제’로 ‘위탁모’를 배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낼지 모른다. 역할에 걸맞은 말을 찾자면 ‘피(被)위탁모’와 ‘탁아모’(보호자 대신 어린아이를 맡아 돌보는 여자), ‘수탁(다른 사람의 의뢰나 부탁을 받음)모’쯤 되겠지만 이 또한 왠지 마뜩잖다. 이참에 ‘위탁모: 부모를 대신하여 아이들을 맡고 있는 사회복지기관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 또는 주로 아이가 입양되기 전까지 기관으로부터 위임을 받아 자신의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고려대 한국어대사전)처럼 사전에 올려 자리 잡아 주는 것은 어떨까 싶다.


………………………………………………………………………………………………………………

땅거미

올해 태양이 가장 높게 뜬 순간은 지난 6월21일 낮 2시4분께였다. 낮 길이가 가장 긴 하지의 한때였다. 여름 기운 짙어지는 칠월에 접어들면서 더위가 깊어간다. 한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겠지만 낮 길이는 한겨울 동지까지 짧아진다. 해넘이가 빨라지면 어스름이 찾아오는 때도 빨라진다. 황혼이 깃들고 땅거미 지는 시간이 일러지는 것이다. 황혼은 ‘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때. 또는 그때의 어스름한 빛’이고, 땅거미는 ‘해가 진 뒤 어스레한 상태. 또는 그런 때’이니 비슷한 표현이지만 말맛은 조금 다르다. ‘빛’(황혼)과 ‘그림자’(땅거미), 어느 쪽을 보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 ‘옅은 밤’인 박야(薄夜), ‘저녁 그늘’인 석음(夕陰), ‘어스레한 낮’의 뜻인 훈일도 사전에 올라 있지만 죽은말(死語)에 가깝다.

해거름 무렵 드리워지는 ‘땅거미’는 노래와 시에 잦게 등장한다. 노래로 불리고 시어로 살아 있는 ‘땅거미’가 나오는 곡은 얼마나 될까. ‘땅거미’를 노래한 이는 많았다. 같은 곡이어도 부르는 가수, 편곡이 다른 경우까지 따져보니 132곡이었다. 한명훈·이범용(‘꿈의 대화’), 이선희(‘영’, ‘혼자된 사랑’), 남궁옥분(‘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 김승진(‘스잔’)의 것처럼 귀에 익은 노래는 물론 그 옛날 배호(‘먼 여로’)의 곡도 있었다. 얼마 전 타계한 이종환(‘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의 시 낭송을 포함해 발음은 하나같이 [땅꺼미]였다. 에스지 워너비(‘꿈의 대화’ 아르앤비 솔(R&B Soul) 버전)는 [땅·거미]라 했지만 유의미하지 않았다. 어쿠스틱 버전에서는 [땅꺼미]로 했으니 악센트 때문이었기에 그렇다. [땅꺼미]는 ‘땅거밋과의 거미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땅에 사는 거미’를 가리킨다. 사전은 황혼녘의 ‘땅거미’ 발음을 [땅거미]로 제시하고 있다. [땅꺼미]가 대세인 현실 발음과 다른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1290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7667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2761
3058 바치다,받치다,받히다 바람의종 2010.04.19 13203
3057 목재가구 / 목제가구 바람의종 2009.11.23 13184
3056 뒤처지다 / 뒤쳐지다 바람의종 2012.03.27 13180
3055 흐리멍텅하다 바람의종 2009.11.09 13176
3054 한목소리, 한 목소리, 한걸음, 한 걸음 바람의종 2010.06.01 13159
3053 심금을 울리다 바람의종 2008.01.19 13158
3052 "정한수" 떠놓고… 1 바람의종 2008.04.01 13157
3051 가난을 되물림, 대물림, 물림 바람의종 2010.03.30 13155
3050 적자 바람의종 2007.08.16 13149
3049 장마비, 장맛비 / 해님, 햇님 바람의종 2009.02.22 13149
3048 양해의 말씀 / 기라성 바람의종 2010.03.23 13135
3047 교환 / 교체 바람의종 2010.10.04 13127
3046 캥기다 바람의종 2011.11.21 13118
3045 호프 바람의종 2011.11.21 13115
3044 애끊다와 애끓다 바람의종 2010.03.15 13111
3043 휘하 바람의종 2007.10.09 13090
3042 하락세로 치닫다 바람의종 2009.02.05 13073
3041 고주망태 바람의종 2010.03.30 13072
3040 있사오니 / 있아오니 바람의종 2011.11.30 13064
3039 다대기, 닭도리탕 바람의종 2012.07.06 13056
3038 ‘-율’과 ‘-률’ 바람의종 2010.04.18 13047
3037 훈훈하다 바람의종 2007.11.09 1304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