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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 제9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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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956호

2014.12.5. (음 4.4)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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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한자 등 텍스트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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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가를 말하지 않고, 얼마나 많이 해냈는가를 이야기하라. - 제임스 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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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휘거

스포츠 종목은 다양하다. 같은 육상이지만 10초 만에 ‘허무하게’ 끝나는 남자 100미터 달리기가 있는가 하면 2시간 내내 ‘지루하게’ 선수만 따라가야 하는 마라톤이 있다. 격렬한 현장 분위기 따라 함성 터지는 경기가 있는가 하면, 사격이나 양궁처럼 사수의 호흡에 맞춰 숨죽여야 하는 종목도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승패가 갈려 한시도 눈 뗄 수 없는 격투기가 있고, ‘경기 관전’보다는 ‘연기 감상’이라 하는 게 어울리는 ‘아름다운 종목’이 있다. 리듬체조와 피겨스케이팅이 그렇다.

지난 주말 펼쳐진 김연아의 연기는 눈부셨다.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트리플 플립, 플라잉 카멜 스핀, 더블 악셀, 레이백 스핀, 스텝 시퀀스-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으로 구성된 김연아의 쇼트 프로그램은 훌륭했다. 트리플 악셀을 내세운 아사다 마오는 김연아의 라이벌이 아니었다. ‘트리플’은 ‘(공중)3회전’이고 ‘러츠’는 기술을 처음 선보인 사람 이름에서 온 명칭이다. 트리플 악셀은 피겨스케이팅에서 유일하게 앞으로 뛰어오르는 기술이다. ‘2회전 콤비네이션…3회전 루프…원형 스텝…3회전 살코 점프…’(토리노올림픽 중계 해설자) 같은 설명이 실황중계에서 사라진 게 아쉽다.

지난달 북한 보통강변에 있는 ‘빙상관’(아이스링크, 빙상경기장)에서는 ‘빙상무용’(피겨스케이팅)이 펼쳐졌다. ‘모범출연’(시범경기) 방식이었다. 중계 영상을 보니 연기와 기술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대신 스포츠를 체제유지 수단으로 삼으려는 뜻은 강하게 드러났다. “장군님의 약속을 지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스케트’(스케이트)를…”처럼 삼대세습을 찬양하며 시작한 행사는 ‘… 목숨으로 사수’하겠다는 노래에 맞춰 수십 명이 나선 ‘집체출연’과 ‘스케트무용’(아이스댄싱), ‘쌍경기’(듀엣) 등으로 구성되었다. 올해로 22회째를 맞은 이 행사 이름은 ‘백두산상 국제휘거축전’. ‘휘거’는 피겨를 가리키는 북한말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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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어진 사람 - 백무산


어질다는 말
그 사람 참 어질어, 라는 말
그 한마디면 대충 통하던 말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양반이나 상것이나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그 사람 어진 사람이야, 그러면 대충 끄덕이던 말
집안 따질 일이며 혼처 정할 일이며 흉허물 들출 일에도
사람을 먼저 보게 하는 말
나머진 대충 덮어도 탈이 없던 말

시장기에 내놓은 메밀묵맛 같은 사람
조금 비켜서 있는 듯해도
말끝이 흐려 어눌한 듯해도
누구든 드나들수록 숭숭 바람 타는 사람
보리밥 숭늉맛 같은 사람
뒤에서 우두커니 흐린 듯해도 끝이 공정한 사람
휘적휘적 걷는 걸음에 왠지 슬픔이 묻어 있는 사람
반쯤 열린 사립문 같은 사람
아홉이 모자라도 사람 같은 사람
아버지들 의논을 끝내던 그 말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어질기만 해서 사람 노릇 못해,
그럴 때만 쓰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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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2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아들에게서 배운 교훈

 내 아들 다니엘은 열네 살이 되면서부터 서핑(파도타기)에 미치기 시작했다. 학교가 시작되기 전이나 방과후면 다니엘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파도타기 경계선 너머까지 헤엄쳐 가서는 키가 1미터에서 1미터 80센 티미터 안팎인 파도타기 친구들과 도전을 벌이곤 했다 파도타기에 대한 다니엘 의 그런 열정은 어느 운명적인 오후에 시험을 당하게 되었다.

 "댁의 아들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수상 구조원이 내 남편 마이크에게 전화를 걸어 알려 왔다.  남편이 놀라서 물었다.

 "많이 다쳤습니까?"

 구조원이 말했다, "많이 다쳤습니다 파도 꼭대기로 올라가다가 서핑 보드 끄트머리에 눈을 얻 어맞은 겁니다."

 남편은 다니엘을 싣고 황급히 응급실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다니엘은 곧바로 성형외과로 옮겨져, 눈가에서 콧등까지 무려 스물여섯 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을 받았다. 다니엘이 수술을 받고 있는 동안 나는 강연 일정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고 집 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성형외과에서 나오자마자 남편은 다니엘을 태우고 곧 바로 공항으로 달려왔다.대합실에서 나를 맞이한 남편은 다니엘이 차 안에서 기 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니엘이요?"

 나는 놀라서 물었다. 아마도 그날의 바다가 파도를 별로 보내 주지 않은 모양 이라고 난 생각했다. 그러자 남편이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다니엘이 사고를 당했소. 하지만 곧 괜찮아질 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일 때문에 집을 비우고 여행을 다니는 엄마의 악몽이 현 실로 일어난 것만 같았다. 눈앞에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어찌나 빨리 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던지 하이힐의 뒷굽이 부러져 버렸다. 나는 차문을 왈칵 열었다. 눈에 붕대를 감은 내 막내아들이 나를 향해 두 팔 을 벌리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엄마가 집에 돌아와서 정말 기뻐요."

 나 역시 아들의 팔에 안겨 흐느껴 울었다. 구조원이 전화를 했을 때 그 자리 에 내가 없었던 것이 그토록 후회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아들이 나를 달랬다.

 "괜찮아요, 엄마. 어쨌든 엄마는 파도타기의 세계를 모르시잖아요."
 "뭐라구?" 나는 아들의 엉뚱한 논리에 놀랐다. 그러자 아들이 말했다.
 "전 괜찮을 거예요. 의사 선생님은 제가 8일 뒤면 다시 물속에 들어갈 수 있 다고 하셨어요."

 이 아이가 정신이 어떻게 된 걸까? 난 그 아이에게 앞으로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는 다시는 물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말라고 소리 치려고 했다. 하지만 애 써 참고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내 아들이 파도타기에 대한 것을 영원히 잊어 주기를 기도했다.

 그 다음 일주일 동안 아이는 다시 파도타기를 하러 갈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끝없이 내게 압력을 가해 왔다. 백 번이 넘도록 강력하게 안 된다고 말을 하고 난 어느 날, 다니엘은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엄마, 엄마는 늘 우리에게 우리가 가장 원하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잖아요."
 그러더니 다니엘은 내게 뇌물을 내밀었다. 랭스턴 휴즈의 시가 담긴 작은 액 자였다. 다니엘은 그것이 '엄마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샀노라고 말했다.


 엄마가 아들에게 주는 글

 아들아, 난 너에게 말하고 싶다.
 삶은 나에게 수정으로 된 계단이 아니었다는 걸.

 그 계단에는 못도 떨어져 있었고
 가시도 있었다.
 그리고 판자에는 군데군데 구멍이 났지.
 바닥에는 양탄자도 깔려 있지 않았어.
 전부 맨바닥이었다.

 그러나 난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그 계단을 걸어올라왔다.
 층계참에도 도달하고
 모퉁이도 돌고
 때로는 전깃불도 없는 캄캄한 곳까지 올라갔다.

 그러니 아들아, 넌 돌아서지 말아라.
 계단 위에 주저앉지 말아라.
 왜냐하면 넌 그것이 다만
 약간 힘든 것일 뿐이라고 알게 될 테니까.

 지금 무너져 내리면 안 된다.
 왜냐하면 얘야. 난 아직도 그 계단을 올라가고 있으니까.
 난 아직도 오르고 있다.
 그리고 삶은 나에게 수정으로 된 계단이 아니었지.


 나는 완전히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 당시 다니엘은 서핑에 미친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지금 다니엘은 자기 삶 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어른이 되어 있다. 전세계 파도타기 프로 선수들 중에서 다니엘은 상위 25위 안에 올라 있다. 나는 먼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청중들에게 역설하던 한 가지 중요한 원리를 내 자신의 집안에서 시험당한 셈이 되었다 그 중요한 원리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정열을 바치는 사람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 다니엘르 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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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과학


우연의 과학 - 이야마 히로유키, 옮긴이: 이정임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1/2)

  하늘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까 하는 기나라 사람의 걱정을 그냥 웃어넘길 수 있을까? 중국의 고전인 열자 '천기편'에 나오는  이 고사는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재난을 두려워하는 소심증을 가진 사람의 어리석음을 우화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인가가 떨어질 것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우화는 그러한  예측 불허의 사태에 대해 인간이 마음속 깊이  품고 있는 공포를 상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여름 밤하늘에 커다란 국화꽃을 피우는 불꽃놀이를 올려다보며 즐기는데, 그 엄청난  양의 화약 잔해가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 낙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피서의 한때가 서늘하게 변해  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어버이날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가던 젊은 남성이 희생된 실제 사건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길을 지나가던 청년을 백화점 옥상에서 자살하려고 떨어지던 다른 남성이 그대로 덮친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사고는 어떤 것의 낙하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 비극의 일례이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우연한 사건의 인상적인 형식들  중에 낙하와 충돌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려 준다.

  우연에 대해 말하려고 할 때,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을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아이스킬로스는 고대 아테네에서 활약한 그리이스의 대표적인 비극시인으로,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이라고 하면 없어진 것도 포함해 70편 가량인 그의 희곡 중 어느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비극이란, 실제로 시인 본인의 신상에 발생한 전례가 드문 재난을 말한다. 게노스라고 불리는 단편에 기록된 짧은 전기에 의하면 비극 작가 자신의 비극은 다음과 같이 발생했다.

  그리고 아이스킬로스는 참주 히에른과 게라 시의 시민들에게도 커다란 호의를 받았는데, 3년 간 그롯에서 산 후 나이가 들어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독수리 한 마리가 거북 한 마리를 홱 낚아챘는데, 그 먹이를 뜻대로  할 수가 없자 등껍질을 깨뜨리려고 바위에 거북을 떨어뜨렸다. 그런데 거북은 비극 시인의 머리 위에 떨어져 그를 죽이고 말았다. 사실 이전부터 아이스킬로스에게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일격이 당신의 생명을  빼았는다'는 신의 계시가 있었다.

  이 사고 이야기를 듣고 웃는 것은 좀 미안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외에도 여러 번의 죽을 기회를 넘긴 것을 생각하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황당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원래 아이스킬로스는 용맹스러움으로 이름을 날린 형 키네게이로스와 함께 마라톤 싸움에 출전하였다. 사라미스 해전에도 참전하였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에레우시스의  비밀의식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는 비운도 맛보았다. 이렇게 몇 번이나 저승의 문을 두드리면서도 살아 남아 나중에 영예로운 노후와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시인이 비운을 당한 게라라는 곳은 현재 시실리섬에 있고, 그 땅에 군림한 참주 히에른이 문화유치 정책의 일환으로써 인기있는 예술가였던 그를 멀리서 불러들인 것도 뜻밖의 사고로 죽게 되는 한 원인이었다. 역사에 남는 우연한 발견을 이룬 200년 후의 아르키메데스도 같은 시실리섬에서 이 참주와는 다르지만 같은 이름의 히에른을 섬겼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전개하도록 하겠다. 역사가들은 게노스에 기록된 이 불가사의한 사건에 신빙성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다. 이야기 내용으로 보아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건의 진위보다도 이 일화가 현재까지 전승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싶다.

  그러면 거북이에 관한 것으로 화제를  옮기도록 하자. 아무래도 거북이와 우연 사이에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것같다. 달리기 시합 때에는 상대의 생각지도 못한 실책으로 행운을 잡아 토끼를 이길 수 있었던 거북이였지만 독수리에게는 깜쪽같이 당했다. 잘 알려진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거북이가 독수리에게 나는 것을  자신에게 가르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독수리는 거북이의 태생이 태생인 만큼 그런 일은 아무래도 불가능하다고 충고했지만, 거북이는 그래도 계속해서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독수리는 거북이를 발톱으로 움켜잡고 하늘 높이 데려간 후 거기서 놓아 버렸습니다. 거북이는 바위 위에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말하는 것은 모험을 좋아해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그 몸을 상하게 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에피뮤토스라고 불려진 작자 본인이 덧붙인 처세훈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그 부분은 그대로 두기로 하겠다. 아이스킬로스의 사고에 대해 적어도 말할 수 있는 것은 상처를 입은 주인공은 거북이가 아니라 무방비 상태였던 시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이스의 푸른 하늘에서 거북이가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점에서는 흥미진진하다. 어쩌면 거북이의 추락 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흔히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눈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사건이 사실은 거북이와 독수리 사이에서 자주 있었던 것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쓰여진 프리니우스의 기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제3의 종류에 속하는 독수리는 모노프노스로...크기나 힘이 두 번째이고, 호수 근처에 살고 있었다...이빨을 가졌지만 벙어리로 소리를 내지 못하고 독수리 중에서는 가장 색이 검고 매우 멋있는 꼬리를 갖고 있었다...이  독수리는 거북이를 높은 곳으로  낚아채 가서 떨어뜨린 후 거북이 등을 깨뜨리는 교묘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이야기에 의하면 이러한 우연의 사건이 시인 아이스킬로스의 죽음을 야기했다고 한다. 분명히 그는  운명의 여신들에 의해 예언된 이런 류의 재난을 피하고자 하늘에 빌고 있었다. 프리니우스의 이야기중에는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될 이야기들도 있다. 어린시절에 동굴에 들어가서 57년간을 하루같이 잠을 잔 후 일어난 립반 윙클의 이야기라든가, 모노꼬리라고 불리는 발이 하나밖에 없는 산족종족의  이야기와 같이 속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읽어야 할 일화가 실제로 많다. 원래 그런 기술은 대게 저자가 비판적으로 음미하지 않고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승이나 이국의 여행담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에서 유해한 것이기 때문에 진실성에 대해서 적당히 감안해서 읽으면 내용의 풍부함만으로도 그 나름의 효용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들의 운명은 어려 가지 우연으로부터 태어난다"는 그의 지론은 이 책의 테마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어서, 우연의 본성을 조금씩  쫓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들은 다시 한 번 프리니우스와 만나게 된다.

  독수리에게 거북이를 낚아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는 본성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종류는 다르더라도 마찬가지 습관이 현재의 독수리에게서  관찰되는 점으로 보아도 어쩌면 사실일 수 있겠다. 아이스킬로스도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프리니우스가 말했듯이 신의 계시에 나타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일격'을 무언가가 건물 위에서 떨어질 위험이라고 시인이 해석하고 그것을 피해 건물이 없는 평지를 선택했다고 하면 그는 결국 얄궃은 종말을 맞이한 셈이다. 하늘의 별을 열심히 바라본 나머지 발밑의 구멍을 발견하지 못하고 떨어져 부상을 입은 이오니아의 철학자 탈레스의 이야기와 같아 아무래도 고대 그리스에는  어리숙한 지식인이 많았던 것같다. 아이스킬로스의 기구한 운명에 주목하고 유래가 드문 우연 사고로서 멋있게 각색해서 그려보고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다름아닌 나츠메 소세끼다. 좀 길게 인용해서 미안히지만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중의 한 번 읽으면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유명한 부분을 읽어보자.

  옛날 그리이스에 이스킬라스라는 작가가 있었다고 한다. 이 남자는 학자와 작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머리를 가졌다고 한다. 학자와 작가에게 공통된 머리란 대머리라는 의미다. 왜 머리가 벗겨지는가 하면 머리의 영양 부족으로 털이  성장할 만큼 활기가 없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학자와 작가는 가장 많이 머리를 사용하는 자이며, 대개는 가난할 게 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와 작가의 머리는 모두 다 영양 부족이며, 모두 다 벗겨져 있다. 그런데 이스킬라스도 작가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벗겨지지 않을 수는 없다. 그는 반들반들한 금귤간은 머리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머리를 치켜들고 태양을 비추면서 길을 걷고 있었다. 이것이 실책의 원인이다. 대머리는 햇빛을 받으면 굉장히 반짝거리는 법이다. 높은 나무가 바람을 많이 맞는 것처럼 빛나는 머리도 수난을 겪기 마련이다. 이 때 이스킬라스의 머리 위에 한 마리의 독수리가 날고 있었는데, 어딘가에서 낚아챈 한 마리의 거북이를 발톱 끝으로 움켜쥔 채다. 거북이나 자라 따위는 맛이 좋은 것은 틀림없으나 그리이스 시대로부터 딱딱한 껍데기를 쓰고 있었다. 제아무리 맛이 좋다고 해도 껍데기가 붙은 치로는 어쩔 수가 없다. 새우를 껍질 째 구운 것은 있지만, 거북 새끼를 껍질 째 굽는 것은 지금까지도 없는 것으로 보아 그때도 물론 없었을 게 뻔하다. 한다하는 독수리도 어쩌지 못하는 참에 아득한 하계에 반짝 빛나는 것이 보였다. 독수리는 됐다고 생각했다. 저 빛나는 것 위에다가 거북 새끼를  떨어뜨린다면 껍데기는 틀림없이 깨어질 것이 뻔하다. 깨어진 뒤에 날아내려가 알맹이를 가지고 가면 간단하리라. 그렇게 되겠다고 결정한 후에  그 거북 새끼를 높은 데서부터 기척도 없이 머리 위로 떨어뜨렸다. 얄궃게도 작가의 머리가 거북이 껍데기보다 연했기 때문에 대머리는 깨지고 유명한 이스킬라스는 여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건 그렇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독수리의 생각이다. 그 머리를 작가의 머리인 줄 알고 떨어뜨린 것인지, 아니면 민둥 바위인 줄 착각하고 떨어뜨린  것인지에 따라 라쿠운칸의 적과 이 독수리를 비교할 수도 있고, 또 안할 수도 있다. 주인의 머리는 이스킬라스나 저 고명하신 여러 학자님들처럼 반짝반짝 빛나지는 않지만.

  문장 중의 이스킬라스는 물론 아이스킬로스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것을 영어로 읽은 것이다. 피렌체시의 메디치 도서관 소장의 11세기 전기 사본이 이 일화의 출전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그래서 그것이 '출자'와 같은 내용의 것이라면 이미  소개한 것과 같이 거기에는 대머리에 관한 지적은 없었을 것이다. 팔로스섬 대리석 비문에 기록된 노시인의 향년이 69세인 것을 생각하면 머리가 벗겨진 것이 이상할 것은 없지만,  사실이 어찌되었든지 소세끼가 풍부한 재치로 창작했다고 보는 것이 납득하기 쉽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고양이'중에 이 대머리 일화의 삽입을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하는 내용들이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구샤미선생이 아내에게 조루리(악극 비슷한 일본의 연극 대본)<산주산겐도>에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가 갑자기 병이 났을 때의 일이다. 서재로  아내를 부른 선생은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한 경우에  당황하지 않도록 어느 서양 속담을  들려준다. '입에 든 떡도 넘어가야 제것이다'. 아무 생각없는 일상의 한 때라도 갑자기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그때에 구샤미 선생은 아내의 머리가 약간 벗겨진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계속해서 읽어나가면 대머리에 관한  에피소드가 쾌 나온다.

  도둑이 든 다음날 찾아 온 제자 다타라 산페이군은 후두부에 직경 한치 정도가 벗겨졌는데, 영어로 대머리를 오탄친 팔레오로구스라고 말할 뿐 아니라 메이테이가 독신을 고수하게 된 원인이 대머리와 관계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에치고 지방의 간바라군의 다케노코다니를 지나서 다코쯔보 고개로 접어든 산골 마을에서 하루 밤을 머물며 식사 대접을 받은 메이테이는, 거기에서 높이 빗어올린 머리 스타일을 한 미인을 만나 첫사랑을 경험한다. 그러나 다음날 그 여자  머리의 정체가 완벽한 대머리였다는 것을 알고 실연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그만 대머리 방향으로 흘렀지만, 물건이 떨어지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사태를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샘솟는 우연이란 어떤 것일까? 안타깝게도 18세기 프랑스의 유물론 철학자인 드라메트리가 "매일매일 생겨나는 버섯과 같다."고 우연의 사상을 형용하고 있는 예 정도밖에 찾을 수 없지만, 샘솟는 것은 아닐지라도 떠 다니는 정도의 우연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도 역시 거북이가 관계되어 있다.

  연약한 다리를 이끌고 참고 걸어가는 길을, 운정을 빗겨 돌아 하늘도 이별하는 동운의 도로를 오늘 처음으로 만났지만, 또 언제 돌아갈 지도 모르는 의지할 곳도 없는 몸의 행방, 부목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눈먼 거북이와 같은 이 내 신세는 어두운 길을 더듬어 떠도는 구름도 떠오르는 아이사카산에 도착했네...

  이것은 유명한 가사인 <세미마루>중의 한 절이다. 글  중의 '눈먼 거북이의 어두운 길'이란 잡아함경에 들어 있는 '눈먼 거북이의 부목'이라는 비유를  근거로 한 것으로, 부처의 가르침이나 행운과 한 번도 만날 수 없는 것을 예를 들고 있다. 깊은 바다 속에 백년에 한 번 수면에 떠오른다는 눈먼 거북이가 살고 있는데, 바람에 따라 바다 위를 동서로 표류하고 있는 단 하나의 부목에만 있는 구멍을 그 거북이가 만나는 정도로 가능성이 희박한 우연을 말하고 있다.

  세미마루는 '고쿠라 햐쿠닝 잇슈' 중에서도 비교적 외우기 쉬운 '이것이 이것'으로 시작되는 시의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존 인물인지는 의심스럽다. 이 가사에서 그는 다이고 천황의 네 번째 왕자로  태어났는데, 나면서부터 장님이었기 때문에  가혹하게도 천황의 명으로 내쫓겨 아이사카산에 버려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다. 왜 세미마루를 눈먼 거북이에 비교한 것일까? 눈이 안보인다는 것도 당연히 한 가지 이유가 되지만, 아이사카산이라는 장면 설정이 암시하듯이 이후에 있을 해후 때문이다. 초가집에 비파를 안고 홀로 엎드려 울고 있던 세미마루는 마침내 비파를 타기 시작한다. 그곳에 머리가 엉크러지고 뻗친 채 살고 있는 누님이 우연히 지나간다. 미친여자라는 이유로 왕인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아 궁에서 떠나온 그녀는 초가집 안에서 그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비파 가락을 듣고 멈춰선다. 그리운 동생인 세미마루임을 알게 되어 그에게 다가간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손에 손을 마주잡고 소매를 적시며 서로의 괴로운 신세를 위로하였다. 즉 '눈먼 거북이의 부목'의 예는 생이별한 남매의  만남이 눈먼 거북이가 구멍을 뚫린  부목을 만난 것과 같이 어렵고 드문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극히 드문 우연의 사고로 이제까지 소개한 두가지  이야기-'눈먼 거북이의 부목'과 '하늘에서 떨어진 거북이와의 충돌'-는 공통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점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자.

  눈먼 거북이나 하늘에서 떨어진 거북이나 모두 하늘과 바다의  차이는 있지만, 연직 방향으로 운동하고 있다. 한편 그러한 사정을 전혀 모르는 노시인과 부목은 한가로이 수평 방향의 운동에 몸을 맡기고 있다. 양자는 모두 다른 인과의 계열에 따라 운동을 하고 있는 관계로 각각 인과의 운동표에는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 즉 우연을 대표하는 이러한 사례에 있어서는, 첫 번째로 두 개의 독립된 현상의  계열이 시공상의 한 점에서 생각지도 않게 교차하고, 두  번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충돌의 원인이 관찰자에게는 떠오르지 않는다는 상황이 성립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교차하는 현상이 거듭되는 경우가 있더라도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매일매일의 신문에 보고되는 자동차 충돌 사고나 해난사고는 넓은 의미에서는 우연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 원인의 부재라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먼저 말한 우연의  부류에는 속하지 못한다. 장거리 운전수의 졸음이나 레이더 기기의 고장으로 원인이 특정된다면 오히려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상으로 해석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에 소개하는 예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점을 제공해준다.


    하늘로부터의 선물 - 만나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실  양식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같았더라...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사십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우연의 대표적인 예로 낙하가 된 이유는 우리들의 생활 공간이 거의 지표 부근으로 한정되어 있는 사실에 있다. 대부분의 일상적인 일들이 수평좌표 위에서 일어나는데 반해 낙하 현상은 그 좌표에 수직방향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면 렘브란트가 그린 <다나에>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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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램브란트의 황금비를 맞는 다나에]

황금비로  변해 다나에의 침실을 쳐들어온 제우스에게 있어서는 하늘로부터의 낙하 자체가 계산되고 예정된 행동이었지만, 나체의 다나에에게 있어서는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우연이었을 것이다. 신에게 있어서는 신의 의지에 따른 필연의 행위라도 그것이 수직축을 따라 이루어지는 한 받아들이는 측인 지상의 인간에게는 우연의 사건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인용문의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잠자는 사이에 떨어진 서리를 다음날 본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수상히 여긴다. 신의 말씀을 모세로부터 전해  듣고서야 비로소 그것이 배고픔을 견디어 내기 위해 신이 준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리하여 만나가 내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게 된다. 얼핏 보기에는 우연이라고 생각되는 사건이 자주 신의에 따른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 우연의 제2의 요소에 대해서는 다른 장에서 다시 한번 논하도록 하겠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탈출해 엘림과 시내산 사이에 있는 광야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심각한 식량 부족을 겪는다. 그들은 신과  자신들 사이를 이어주는 모세와 아론을 향해 굶주림에 고통받을 바에야 애굽에서 죽는 것이  낫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신이 보내준 만나는 이러한 불평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고,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지탱해준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에덴동산에서 토지를 경작하도록 명령받은 아담의 후예인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관대한 배려라고도 말할 수 있다. 굴러 들어온 호박과 같은 이 사건은 성서의 세계에서는 오히려 예외에 속하는 것같다.  대체로 하늘에서 낙하하는 것은  갑자기 사람에게 재난을 초래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 한 후 사십일 동안 밤낮으로 내린 비도 그렇고, '요한계시록'에 이르러서는 천사가 나팔을 불 때마다 하늘에서 피섞인 우박과 불이나 횃불같은 큰 별 등이 장소에 상관없이 엄청나게 떨어지는 것도 그렇다. 성경이나 신화를 제외한 다른 문헌을 찾아보아도 이러한 은혜의 물질(하사품)에 관한 일화는 매우 드문 것을 알 수 있다. 겨우 2세기 로마의 아테나이오스가 다음과 같이 전하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나는 물고기 비가 온다는 이야기도 알고 있다.  파이니아스는 '에레소스의 위정자' 제2권에서 몇몇 사람이 여기저기서 물고기 비를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헤라클레이데스 렌보스(기원전 2세기)는 '역사'의 제 21권에서  "마케도니아의 파이오니아와 소아시아 북단의 다르다니아에서는 개구리 비가 내리는데, 그 수가 엄청나 거리는 말할 것도 없고 집안에도 개구리로가득찼다고 한다. 처음 하루 이틀은 개구리를 죽이고 문단속을 해서  하늘로부터의 은혜를 크게 활용했다. 그러나 그 후에는 그렇게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집안의 그릇이란 그릇엔 개구리가 가득 차 음식을 찌거나 볶을 때에도 함께 들어가 있었다. 그밖에 물도 마실 수 없게 되고 밖으로 나가려고 발을 내밀  수도 없었다. 온통 개구리로 가득찼기 때문이다. 결국 죽은 개구리로 인한 악취에 질려 사람들은 토지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개구리를 전계라고 칭하며 귀중히 여기는 중국인과는 달리 일본 사람은 평소 개구리를 먹는 습관이 없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그다지 은혜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에 대해 당사자들조차 매일 개구리를 먹는데 질려서 마침내 하늘의 은혜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친절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어떤 진수성찬이라도 계속해서 먹으면  미각에 민감할 사람일수록 질려버리는 것이다. 이에 반해 만나를 40년간 계속해서 먹은 이스라엘 백성은 기특하게도 신이 내려주신 식탁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다시 만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만나의 유래를 다른 원인에서 구하는 학자들 중에 과학계에 파문을 일으킨 이마뉴엘 베리코프스키가 있다. 1895년에 러시아에서  태어난 베리코프스키는 영국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후 귀국해 모스크바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다음 베를린에  가서 생물학을 전공하는 한편, 후에 예루살렘 대학 창립의 계기가 된 잡지  '스크립터 우니벨시타티스'의 창간에 관여하고, 특히 팔레스틴에서 개업의로서 실적을 쌓은 후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 취리히와 빈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한 후, 1938년 미국으로 건너가는 등 어지러울 정도로 바쁜 인생을 보낸 학자이다. 그는 미국에서 문제의  문서를 공표한다. 1950년에 간행된 '충돌하는 우주'가 그것이다. 처음에는 맥미란사에서 출판되었는데, 더 이상 인쇄를 계속하면 교과서를 집필하지 않겠다고 과학자들이 모두 항의하고 압력을 가한  결과 다른 출판사에 판권이 양도되었다고 하는 복잡한 사정이 있는 문서이다. 과학자가 서적을 탄압하는데 협력한 진기한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학계에 파문과 동요를  야기시킨 '충돌하는 우주'에는 어떤  것이 쓰여져 있을까? 우연과 관련이 깊은 부분에 초점을 맞춰 소개하도록 하겠다.

  기원전 1500년 경 목성의 일부가 분리돼 혜성이 되어 태양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이 혜성은 돌고 돌아 현재의 금성이 되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 중에 몇 번인가 지구에 근접한다. 혜성에는 긴 꼬리가 있고  지구에 가장 가까웠을 때에 그  꼬리는 지구와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혜성의 꼬리에 완전히 뒤덮인 지구에는 여러 가지 천재지변이 발생한다. 하천은 피와 같이 붉게 물들고, 낙하하는 운석으로 인해 하늘은 불로 뒤덮인다. 태양은 보이지 않게 되어 깜깜한 날이 며칠씩 계속된다. 혜성의 중력으로 인해 지구의 자전은 늦어지고 그로 인해 지표에는 폭풍이 발생하고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천재지변의 모든 것이 성서를 비롯한 고대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다시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 이야기를 하면  혜성의 꼬리 속에는 탄소와 수소가 포함되어 있어 지구의 대기중에 있는 분진이나 수증기와 화학반응을 일으켜서 탄수화물을 만든다고 베리코프스키는 주장한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구한 불가사의한 음식인 만나는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최종적으로는 지구와 혜성과의 우연의  충돌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이 이야기는 물론 액면 그대로 신용할 수 없다. 오카르트 학설을 계통적으로 비판한 하인즈가 지적하듯이, 천문관측이나 에너지 물리학이나 유기화학 분야에서 우리들이 현재 받아들이고 있는 지식과 정반대로 대립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만나가 탄수화물인 것은 그렇다고 해도 탄소와 수소의 충돌로 만들어지는 것은 어렵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 조건에서는 탄화수소는 만들어져도 탄수화물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충돌현상이 사실이 아니었더라도 베리코프스키가 얼토당토 않은 결론에 달할 때까지의 추론 과정에는 우연에 얽힌 중요한 특징이 포함되어 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만나의 일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구약성경 이외에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아이슬랜드의 전설에서는 세계적인 화재가 있은 후에 한파가 엄습해 북방지역에서는 한 쌍의 부부밖에 남지 않게 된다. 두 사람은  혹한 동안 아침이슬을 먹으며 연명했다고 되어 있다. 불경에서는 세계 윤회의 종말에 밤낮의 구별이 없어지고 하늘의 음식이 인간의 음식이 되었다는 기술이 있다. '리그베댜'에는 '매두'라고 불리는 꿀이 구름에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고, 그리이스 신화에는 안브로지아라는 꿀맛이 나는 방이 등장한다고  한다. 또 이집트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나일강에서 한때는 꿀이 흘렀다고  한다. 어느 것이나 하늘로부터 인간의 굶주림을 채우는 은혜의 식량이 내려왔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그것이 거의 세계 전체에서 관측되는 것을 베리코프스키는 발견했다고 말하고 있다. 만나의 기원을 규명한 이 기묘한 학설의 논리는 융이 공시성이라고 부른 현상을 그 중심에 두고 있다. 거기에서는 교차하는 것 없이 오히려 병행관계에 있는 서로 독립된 사상이 기묘한 우연의 일치를 성립시키고 있다. 불쌍한 아이스킬로스와  거북이가 직교성의 우연을 경험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마치 병행성의 우연이  존재하는 것과 같다. 베리코프스키는 예를 들면 집단무의식과 같은 공시성의 개념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그러한 병행계역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거대한 충돌을 가정함으로써 수없이 많은 불가사의한 우연을 지구와 혜성의  충돌이라는 단 하나의 원초적인 우연으로 환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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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風雨同舟(풍우동주)
  風(바람 풍) 雨(비 우) 同(같을 동) 舟(배 주)

  손자(孫子) 구지(九地)편에는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서로 미워하나, 배를 같이 타고 가다가 바람을 만나면 서로 구함이 좌우의 손과 같다(當其同舟而濟, 遇風, 其相救也) 라는 대목이 있다.

  춘추시기, 중국의 남쪽에 오(吳)와 월(越)이라는 두 개의 제후국이 있었다. 두 나라는 영토가 인접하고 산수(山水)가 서로 이어져 있었지만, 항상 전쟁이 그치지 않았으며, 양국 백성들은 서로 원수 대하듯 하였다. 이러한 양국 관계 때문에, 백성들은 서로 마주 치기라도 하면 가볍게는 말다툼이나 욕지거리, 심하게는 사생 결단의 싸움을 하였다. 그런데, 두 나라 사람들이 같은 배를 타게 되었는데, 마침 폭풍우가 몰아쳤다. 두 나라 사람들은 협심합력하여 난관을 벗어나야 했기 때문에, 서로 욕하거나 싸우지 않고, 마치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도왔던 것이다.

   風雨同舟 는  오월동주(吳越同舟) 라고도 한다. 이는 원수같은 사람들이 공동의 난관을 만나 어쩔 수 없이 합심함 을 비유한 말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정치권. 급한 김에 합당(合黨)이라는 조각배에 올라 탓지만, 풍랑이 가라앉은 다음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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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간디자서전. 시민의 불복종 - 간디 / 함석헌 역


 제2편

24. 본국으로

  이때까지 나는 남아프리카에서 3년을 보냈다. 나는 민중을 알게 되었고 민중은 나를 알게 되었다. 1896년, 나는 6개월 동안 본국에 다녀오도록 허락해 줄 것을 청했다. 이제는 거기 오래 있어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변호사업이 상당히 잘 되도록 기반을 닦기도 했고, 사람들이 내가 있기를 원하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본국으로 가서 처자를 데리고 이곳에 와서 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또 본국에 가면 여론을 일으켜 남아프리카에 있는 인도인에 대해 한층 더 관심을 가지게 함으로써 어떤 공공의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도 생각하고 있었다. 3파운드 세금 문제도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였다 그것이 철폐되기 전에는 평안히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없는 동안 국민의회와 교육협회의 일을 누가 맡아 보아야 할까? 나는 두 사람을 생각할 수 있었다. 아담지 미야칸과 파르시 루스톰지이다. 이제는 상인계급에서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간사의 책임을 사무적으로 가장 잘 볼 수 있고, 또 인도인 사회에서 가장 신임을 받는 것은 그 두사람이었다. 간사는 정말 실무적인 영어 지식이 있어야 했다. 나는 지금은 고인이 된 아담지 미야칸을 국민의회에 추천했더니 찬성했으므로 그를 간사로 임명했다.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 선택은 아주 잘한 것이었다. 아담지 미야칸은 그의 인내와 관용과 온화와 공손으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켰고, 간사가 되는 데는 변호사 자격이나 고등 영어 지식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님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보여 주었다.

  1896년 중간쯤 나는 캘커타 행 기선 퐁골라 호를 타고 본국을 향해 뱃길을 떠났다. 승객은 아주 적었다. 그 가운데 두 사람의 영국 관리가 있었는데 나는 그들과 친숙해졌다. 그 중 한 사람과는 매일 한 시간씩 장기를 두었다. 승무원 의사가 타밀어 자습책을 하나 주어서 나는 그 공부를 시작했다. 나탈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이슬람 교도와 가까이 사귀려면 우르두어를 알아야 하고, 마드라스 인도인과 가까운 접촉을 하려면 타밀어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나와 같이 우르두어를 읽고 있던 영국 친구의 요청으로 나는 3등 선객 중에서 뛰어난 우르두 학생 한 사람을 찾아냈는데, 그 때문에 우리 공부는 아주 놀라운 진보를 보였다. 그 관리는 나보다도 기억력이 좋았다. 그는 어떤 단어도 한번 본 다음에는 잊지 않았다. 나는 우르두 글자를 잘 풀지 못하는 일조차 종종 있었다. 나는 더욱 분발했지만 그 관리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타밀어는 상당히 진전이 되었다. 어디서 도움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그 자습서가 잘된 책이었으므로 별로 외부의 도움이 필요치 않았다. 인도에 도착한 후에도 이 공부는 계속할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1893년 이후에 나의 독서의 대부분은 감옥 안에서 한 것인데 타밀어와 우르두어도 감옥 안에서 좀 진보가 되었다. 타밀어는 남아프리카 감옥에서였고, 우르두어는 예라브다 감옥에서였다. 그러나 타밀어 회화는 끝내 못배우고 말았고,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실제로 쓰지 않으니 점점 잊어버려지고 말았다.

  지금도 타밀어와 텔루구어를 모르기 때문에 곤란한 점이 많다. 남아프리카에서 있던 드라비다인들이 보여 준 사랑을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간직해 두고 있다. 언제나 타밀어나 텔루구어 친구를 만날 때면 나는 남아프리카에 있던 그들의 많은 동족들의 신앙과 인내와, 그리고 자기를 잊는 희생적 활동에 대한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남자 여자 할 것없이 그들의 대부분은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남아프리카에서의 싸움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고, 그 무식한 졸병들에 의한 싸움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가난한 자를 위한 싸움이었는데 그 가난한 사람들은 힘껏 참여하여 싸웠다. 그러나 그들이 글을 모르는 것이 내가 그 단순하고 선량한 동포들의 마음을 사는 데 조금도 장애가 된 것은 없다. 그들은 서투른 힌두스타니어와 서투른 영어를 했는데, 그래도 우리 일을 해가는 데 별 지장을 느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타밀어, 텔루구어를 배워서 그들의 애정에 보답하고 싶었다. 타밀어는, 먼저 말한 대로 조금 배웠지만, 텔루구어는 인도에서 배우려고 했지만 알파멧 이상을 나가지 못했다. 이제는 도저히 그 말들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러므로 드라비다인들이 힌두스타니어를 배우기를 바란다. 남아프리카에 있는 사람들 중 영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은 서투르게나마 힌디어나 힌두스타니어를 쓴다. 그것을 배우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다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뿐이다. 그들은 마치 영어가 우리나라 말 배우는데 장애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야기가 옆길로 나갔다. 나의 항해 이야기를 끝내기로 하자. 나는 기선 풍골라 호의 선장을 독자들께 소개하려고 한다.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었는데 그 착한 선장은 플리머스 동포교회의 교인이었다. 우리는 항해 이야기보다도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그는 도덕과 신앙 사이에는 경계선을 그었다.  성서 의 교훈은 그에게는 어린애 장난 같은 것이었다. 성서의 훌륭한 점은 단순함에 있었다. 남자거나 여자거나 아이들이거나, 누구나 예수를 믿기만 하면 틀림없이 죄의 사함을 받는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 친구는 나에게 프리토리아의 플리머스 동포교회 교인을 다시 생각나도록 해 주었다. 어떤 도덕적 구속을 하는 종교는 그에게는 좋지 않은 것이었다. 나의 채식주의가 언제나 그런 토론의 문제거리가 되었다. 왜 육식을 해서는 안되는가? 그래, 쇠고기라하자, 왜 안되나? 하나님은 모든 하등동물을 사람이 먹으라고 낸 것이 아닌가? 식물을 먹게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런 문제는 자연 종교 토론으로 들어가고야 만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납득시킬 수가 없었다. 내게는 종교와 도덕은 서로 같은 것이라는 내 의견이 옳았고, 선장에게는 반대의 자기 의견이 옳았다. 24일만에 유쾌한 항해는 끝이 났고 나는 후글리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탄하면서 캘커타에 상륙했다. 그날로 기차를 타고 봄베이로 향했다.


25. 인도에서

 봄베이로 가는 도중에 기차는 알라하바드에서 45분간 정차했으므로 나는 그 시간을 이용하여 시내에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다. 약방에 가서 약을 좀 살 것도 있었다. 약제사가 반쯤 졸고 있어서 약을 짓는 동안에 시간이 턱없이 가 버렸다. 그 결과 역에 도착하니 기차는 이미 떠난 후였다. 역장은 친절하게도 나를 위해 특별히 1분 연발시켰는데도 내가 오지 않자 잊지 않고 내 짐을 차칸에서 내려 놓기까지 해주었다. 나는 캘르너씨 집에 방을 정하고, 그곳에서 즉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알라하바드에서 발해되는  파이어니어(개척자) 지에 대하여 많이 들었었다. 내가 알기로는 그것은 인도인의 향상운동을 반대하는 신문이었다. 내 기억에 그때의 발행인은 체스니 2세였다. 나는 각 당파의 지원을 다 얻도록 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체스니에게 편지를 보내서, 기차를 놓쳤다는 이야기와, 그러니 다음날 떠날 수 있도록 회견 시간을 허락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즉시 허락해 주었고, 특히 고마운 것은 아주 끈기있게 잘 들어 준 것이었다. 그는 내가 글을 쓰면 무엇이든지 자기네 시문에 소개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다만 인도인의 요구를 전부 다 지지해 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 이유는 자기네로서는 식민지인들의 견해도 이해해 주고 적당히 존중해 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여러분들이 그 문제를 연구하시고 그것을 지상에서 논평해 주시기만 한다면 족합니다. 나는 다만 당신들이 우리를 공정하게 보아 주시기를 원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할 것이 없습니다.

  그날의 남은 시간은 시내를 돌며 세 줄기의 강, 즉 트리베니가 합류하는 장관을 감상하는 것과 내 앞에 놓인 일의 안을 짜는 것으로 지냈다. 예기하지 못했던  파이어니어 지의 발행인과의 회견은 앞으로 일어날 일련의 사건들의 기초가 되는데 그 사건들의 조국은 내가 나탈에서 린치를 다하는 데 이르게 된다. 나는 봄베이에 들르지 않고 곧장 라지코트로 갔다. 그리고 남아프리카의 상황에 관한 소책자를 쓸 준비에 착수했다. 그것을 쓰고 인쇄해 내는 데 한 달이 걸렸다. 그 표지가 녹색이었으므로 후에는  녹색팜플렛 으로 알려졌다. 이 팜플렛 안에서 나는 일부러 남아프리카에 있는 인도인의 상태를 더 온건한 그림으로 그렸고, 사용하는 문구도 전에 내가 말했던 두 팜플렛보다 더 부드러운 것으로 했다. 멀리서 듣는 이야기는 언제나 사실보다 더 큰 법이기 때문이다. 1만 부를 인쇄하여서 전 인도안의 각 신문과 각 단체의 지도 인사에게 발송했다.  파이어니어 지가 맨 먼저 사설에서 그것을 소개해 주었다. 그 논문을 요약한 것을 로이터가 영국으로 전보를 쳐서 보냈고, 그 요약문을 또 요약한 것을 로이터의 런던 사무소가 나탈로 전보를 쳐서 보냈는데, 이 전문을 인쇄하니 3행이상 되지 않았다. 이것은 나탈에 있는 인도인들이 받고 있는 대우에 대한 내 글의 축소판이었으나 과장이 되어 있었고 말도 내가 쓴 그대로가 아니었다. 이것이 나탈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느냐 하는 것에 대해선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러는 동안 주요한 각 신문들이 이 문제에 관해서 충분한 논평들을 했다. 이 팜플렛들을 우편으로 발송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내가 포장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만일 삯을 주고 시켰다 한다면 비용도 상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훨씬 간단한 방법이 마침 떠올랐다. 나는 우리 고장 아이들을 전부 불러놓고 수업이 없는 날 아침 두세 시간씩 일을 좀 해주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다들 좋다고 승낙을 해주었다. 나는 그들을 축복해 주마고 약속하고 상으로 내가 모아 두었던 사용한 우표를 나눠 주기로 했다. 그들은 대번에 일을 해치웠다. 이것이 내가 어린아이들에게 자원봉사를 시켜본 첫 경험이다. 그 중 두 친구는 지금 나의 협력자다.

  이 무렵에 봄베이에 역병이 돌기 시작해서 그 일대가 공포에 싸였다. 라지코트에도 발생할 염려가 있었다. 나는 위생국에 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 정부에서 일하겠다는 신청을 했다. 당국은 내 신청을 들어 주고 나를 상태 조사위원회의 한 사람으로 넣어 주었다. 나는 변소의 청결을 특히 강조해서 위원회에서는 거리마다 그것을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네의 변소 검사하는 것을 반대하지도 않고, 그보다도 도리어 지시한대로 개량을 잘 실행해 주었다. 그런데 우리가 상류층의 주택을 검사하러 갔을 때는 일부에서 우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도 않았고, 지시는 더더구나 들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다같이 경험한 것은 상류일수록 변소가 더러웠다. 그 변소들은 어둡고 냄새가 코를 찌르고 오줌과 똥이 흘러나오고 구더기가 득실거렸다. 우리가 지시한 개량이란 것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대변을 땅에다 보지 말고 통을 준비해 둘 것. 소변도 땅에 보아서 잦아 들게 하지 말고 통을 준비하여 볼 것. 바깥 담과 변소 사이의 벽을 없애서 햇빛과 공기가 잘 통하고 청소부가 변소를 쉽게 쳐낼 수 있도록 할 것 등이다. 상류층에서는 이 나중 개량 사항에 대해 갖가지의 반대를 하여 대개는 그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위원회에서는 불가촉민의 거주 지역도 검사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와 함께 거기에 가겠다는 위원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 지역에 가는 것조차 생각도 못할 일이었으니, 그들의 변소 검사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지역을 보고 놀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이것이 내 생애에서 그런 지역에 가본 첫번째 일이었다. 그곳 남자나 여자도 우리가 간 것을 보고 놀랐다. 나는 그들을 보고 변소를 좀 보여 달라고 했더니 그들은 놀라서 큰소리로 외쳤다.

   소인들의 변소라구요! 저희들이야 저기 한데서 봐버리면 그만이지요. 변소(*1)란 어른들 같으신 양반님들께만 있는 것입니다.
   좋아요. 그럼 방을 좀 보여주실 수 있어요? 하고 나는 물었다.
   어르신네, 얼마든지 좋습니다. 구석구석 다 보셔도 좋습니다. 저희 것이야 집이라 할 수 있습니까? 굴이지!
  나는 들어가 보았는데, 어찌 좋은지, 안이나 밖이나 깨끗했다. 출입구를 깨끗이 쓸었고, 방바닥은 쇠똥으로 매끈히 발리어 있었으며, 몇 개 안되는 그릇들은 깨끗하고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 지역에는 역병이 발생할 염려가 전혀 없었다. 상류층 지역에서 보았던 변소 하나는 좀 자세히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방마다 하수 시설이 있었는데 거기에 물도 소변도 다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무슨 말이냐 하면 집 전체가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난단 말이다. 한 집에서는 침실 아래 위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방 안에 하수 시설이 있어서 거기서 대소변을 다 보게 되어 있었다. 그 하수통의 파이프가 밑층으로 내려와 있었는데 그 방안에는 고약한 냄새 때문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 방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잠을 잘 수가 있었겠나, 그것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위원회는 또 바이슈나바의 하벨리에도 가 보았다. 이 하벨리의 주지는 전부터 우리 가정과는 매우 친한 사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우리들이 모든것을 거사하고 개량을 지시하는 것을 잘 받아 들였다. 하벨리 구내에는 주지 자신이 한번도 보지 않은 곳도 있었다. 그것은 쓰레기와 점심 접시로 사용한 잎(*2)들을 담 너머로 내버리는 곳이었다. 거기에는 까마귀와 독수리가 몰려들고 있었다. 변소는 물론 더러웠다. 나는 얼마 안 있다가 라지코트를 떠났기 때문에 우리가 지시한 것을 그들이 과연 얼마나 실행했는지는 볼 사이가 없었다. 예배하는 장소가 그렇게 심히 불결하다는 것을 보고 나는 고통스러웠다. 거룩하게 여기는 곳이면 청결과 위생의 규칙을 잘 지킬 것으로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때에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스므리티의 저자들은 안과 밖을 다 정결히 할 것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1. 본래 인도에서는 이 불가촉민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가정에도 변소가 없었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그냥 한데에서 보는 풍속이 남아 있는 데가 많다. 이 점은 옛날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2. 인도에서는 식사 때 바나나, 파초 등의 잎을 접시 대신으로 흔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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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 속의 글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가족

    어느 사랑 이야기 - 작자 미상

  사랑은 당신이 받고자 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사랑은 오직 당신이 주고자 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 캐더린 햅번

  만년설을 이고 선 히말라야의 깊은 산골 마을에 어느 날  낯선 프랑스 처녀가 찾아왔다. 그녀는 다음날부터 마을에 머물면서 날마다 마을 앞 강가에 나가 앉아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렸다. 달이 가고 해가 가고, 몇십 년이 흘러갔다. 고왔던 그녀의 얼굴엔 어느덧 하나둘 주름살이 늘어 갔고 까맣던 머리칼도 세월 속에 희어져  갔지만 속절없는 여인의 기다림은 한결 같았다.
  그러던 어느 봄날, 이제는 하얗게 할머니가 되어 강가에 앉아 있는 그녀 앞으로 상류로부터 무언가 둥둥 떠내려 왔다. 그것은 한 청년의 시체였다. 바로 여인이 일생을 바쳐 기다리고 기다린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청년은 히말라야 등반을 떠났다가 행방불명이 된 여인의 약혼자였다. 그녀는 어느 날인가는 꼭 눈 속에 묻힌 약혼자가 조금씩 녹아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떠내려 오리라는 걸 믿고 그 산골 마을 강가에서 기다렸던 것이다.
  할머니가 되어 버린 그녀는 몇십 년 전 히말라야를 떠날 때의 청년 모습 그대로인 약혼자를 껴안고 한없이 입을 맞추며 울었다. 평생을 바쳐 마침내 이룩한  사랑. 어디 사랑뿐인가. 쉽사리  이루기를 바라고 가볍게 단념하기를 잘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슬픈 이야기이다.



    사랑은 기적을 낳는다 - 서정주

  나는 중학교 2학년 여름에 지독한 열병인 장티푸스에 걸렸다. 서울의 내 하숙을 찾아오신 아버지를 따라 나는 그때 우리 집이 있던  전라북도 줄포라는 곳으로 공부도 중단하고 내려가야만 했다. 시골의 일본인 의사는 나를 다시 진찰해 보고는, 딴 사람한테 전염시키지 않도록 나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격리 병원으로 즉시 옮기게 했다. 가족 중 누구 하나 따라가서  병간호를 하는 것까지는 인정상  말리지 않았으나, 그 따라간 사람도 한 번 집을 나서면 거기서 나와 격리된 생활을 해야 했다. 어머니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나와 생사를 같이할 양으로 죽을지 살지 모르는 나는 홀로 따라오셨다.

  장티푸스라는 병은 지금은 비교적 고치기 쉬운 병이지만, 1920년대 말인 그때만 해도 일본의 의학 수준이 열악해 한 번 걸리면  고치기 힘든 병이었다. '염병 3년에 땀도 못 내고 죽을 놈' 같은 욕설 그대로 염병이라고 불리는 이 장티푸스는 매우 치사율이 높은 죽음의 쇠망치를 든 염라대왕의 사신이었던 것이다.

  격리 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동안 내 열은 점점 더 치솟아  나는 옆에 계신 어머니까지도 몰라보게 되고, 늘 하늘 속을 피터팬처럼 날다가 흉악한 악마를 만나 목을 줄리거나 날카로운 낫으로 협박당하는 고된 환각의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어느 때는 옆에 와서 찬물 베개를 갈아 넣어 주는 어머니를 악마로 보고 소리소리치며 대들기도 했다.  마침내 어느 날 일본인 공의는 이런 나를 와서 다시 진찰해  보곤 이젠 살 가망이 없다고 마지막 선고를 내렸다. 아버지는 의사의 선고를 듣고 조그만 꽃상여를 준비하라 이르고, 자기는 곧 살림을 작파하고 집을 떠나겠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이때부터 긴긴 기도를 시작하셨다. 어머니는 일정한 종교가 없으셨기 때문에 특별히 어떤 종교의 신을 향해서가 아니라 그냥  무턱대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이 애를 살리시고 나를 대신 데려가소서!"

  이 기도는 낮 동안에는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계속되다가, 밤이 깊으면 흰 사발의 정화수에 담기고, 그 앞에 꿇어 엎드리는 당신의 절  속에 담겼다. 궂은 날이나 맑은 날이나 이 일은 날마다 계속 되었으며, 그 동안은 잠도 거의 없이 지내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한결같으신 정성으로 한  순간도 빈틈없이 내 곁을 지키며 찬물 베개와 찬 물수건을 갈아대시고, 미음을 쑤어 먹이셨다. 그래서 기적처럼 나는 서너 달 만에 나아  다시 성한 사람이 되었다. 내 회복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그 무턱대고 한 기도의  힘과, 그 기도의 힘에 맞추어 빈틈없이 갈아댄 찬물 베개와 찬 물수건 덕분인 줄을 이제 나는 안다. (시인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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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모든 날에 저녁이 오듯이
- 홍윤숙


  모든 날에 저녁이 오듯이 삶에도 저녁이 온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 치고 해는 쉬지 않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여 간다. 그처럼 사람도 일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 일은 인간의 자연적 요구이며 일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일을 인간의 자연적 요구이며 일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일을 통하여 인간은 자기를 완성하고 실현하고 표현하며 나아가 세계 완성의 한몫을 담당한다고 믿는다.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라고 했듯이 일은 인간에게 주어진 의무이며 책임이다. 먹고살기 위한 밥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밥 이상의 무엇이 일 가운데는 있다. 단순히 하루 세 끼의 밥 때문이라면 사람은 그다지 일하지 않고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밥 이상의 것, 배고픔 이상의 것, 마음고픔. 그렇다, 그 마음고픔 때문에 인간은 잠자는 시간까지도 일에 골몰한다.  생각하면 나 또한 그 뿌리 깊고 질긴 마음고픔 때문에 이리 하찮고 부질없는 일에 한 생애를 탕진했다. 후회는 없지만 큰 보람도 없다. 그러나 이 일이 아니었다면 어찌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그나마 주어진 역할에 감사한다. 이제 두려운 것은 이런 일이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모든 날에 저녁이 오듯이 나의 삶에도 저녁이 오고 있다. 머지않은 겨울-죽음-을 바라보면서 이 가을이 주는 무겁고 짙은 우수에 나는 한없이 가라앉는다.

  지난 시절 젊은 날에 느끼던 이 계절의 우수는 차라리 감미로웠다. 거기엔 무명솜처럼 보드랍고 따뜻한 질감이 있었다. 지금, 나를 감싸고 있는 이 두껍고 무거운 우수는 때로 융단처럼 숨막히고 때로 삼베처럼 살을 시리게도 한다.  노쇠도 죽음도 정중하게 받아들여야 사람은 혼자서 태어나 혼자서 죽어간다는 사실을 관념적으로는 누구나 알고 있다. 젊었을 때는 가끔 호기심처럼 나는 몇 년쯤 살 수 있을까,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죽을까 하는 따위를 감상적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나이를 먹고 노쇠의 여러 가지 징후를 실감하면서부터는 그렇게 말대로 죽음의 무게를 아름답게 견디어낸다는 일이 쉽지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의연해라, 게으르지 마라, 추하지 마라, 아름다워라, 스스로 마음의 채찍을 들고 등을 치지만 생각은 머리에서만 맴돌고 몸은 부서질 듯 기진하여 쓰러지고 만다. 그러면서 이렇게 한 시대가 끝난다는 적막한 감회의 한끝에서 다른 하나의 생각이 나를 일깨운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때가 바로 시작이다.' 하는 말, 하여 나는 지금 인생의 마지막 전환기, 새로운 시작 앞에 서 있다는 다짐을 스스로 해본다. 그렇게라도 무너지는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한다. 에덴을 돌보고 지키게 하신 내 창조주의 뜻에 따라 주어진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돌아가는 날 그분께 보고해야 한다. 세상에서 내가 한 일을, 나에게 맡기셨던 그 일에 얼마나 충실했던가 또는 게을렀던가를...  생각하면 내 생명은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니다. 고작 70년 아니면 80년 그분께 빌려서 살고 있는 것이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내가 가야 할 날도 나 스스로 알지 못한다. 건강도 질병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젊었을 때엔 눈도 잘 보이고 귀도 밝고 이도 튼튼해서 무엇이든 먹을 수 있었고 몇 시간씩 걸어도 다리 아픈 줄을 몰랐었다.  그 모든 것들을 당연히 내 힘으로 하는 내 능력이라고 믿고 있었다. 건강도 시력도 청력도 모두가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었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그분으로부터 잠시 빌려 가지고 있던 것들임을, 그리고 그것들을 이제는 하나씩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사실을, 돌려주고 이윽고 태어나기 이전의 무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잠이 깬 듯 소스라치는 것이다.  내 주위의 모든 것들, 사랑하는 사람도 애완동물 하나도 화초 한 그루도 내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해 있을 동안에 누군가로부터 빌려 받아 잠시 나와 함께 머물러 있었던 것뿐인데, 젊어서는 그 모든 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한 탓에 자신의 뜻과 어긋날 때엔 잃어버리고 빼앗긴다고 생각하며 미워하고 원망하고 슬퍼했었다.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원래 내 것이 아니고,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주인에게 돌려줘야 할 것임을 진실로 알지 못하였었다.  어찌할 것인가, 이 깊고 가슴 저린 가을날을.

  옛날엔 참고 견디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고 슬기로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그렇게 깊고 가슴 저리게 지나가는 가을날도 내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가을이 실어오는 힘든 삶의 짐들을, 고독을 입술을 깨물면서 참고 견디기에 살이 내렸었다.  그러나 이 좋은 가을날도 내 것이 아니라면, 다만 내 앞을 잠시 지나가는 그 누군가의 발자국이라면, 나는 융숭히 그를 맞이하고 받아들여 잠시 내 곁에 머물게 하고 그리고 지체없이 떠나 보내야한다. 눈물 보이지 말고 허둥거리지 않으며 담담히 그리고 정중히  머리 숙여 보내야 한다.  이 가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내 의자에 앉아 있는 일이다. 두어 번 우편함을 들여다보고 텅 빈 병원의 복도를 돌아가듯 잠잠히  내 안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누군가 나날이 지구를 떡잎으로 말리고 곳곳에 크고 작은 방화를 지르고 하얗게 삭은 해의 뼈들을 공지마다 가득히 실어다 버리건만 나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다. 나뭇잎 한 장도 머무르게 할 수 없다. 내가 이 가을에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내 의자에 앉아 정오의 태양을 작별하고 조용히 하오를 기다리는 일이다. 정중히 겨울의 예방을 맞이하는 일이다.  그렇다. 나는 그저 겸손하고 정중하게 겨울을 맞이하여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거부할 수 없는 것 앞에 추하게 앙탈하고 탄식하며 어리석지 말아야 한다. 결국 노쇠도 죽음도 고독도 그리고 최종적으로 인생 그 자체도 거부할 수 없이 주는 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나이에 와서야 나는 관념이 아닌 실제로 실감하는 것이다.  

  받아들인다 함은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것을 순순히 받아 겸손하게 간직하고 순명한다는 뜻이다. 하여 나는 내 앞에 닥쳐오는 고통 앞에서 생각한다. 이는 네가 원해서 택한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에 의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주어진 것이니 때가 오면 반드시 네게서 걷어갈 것이고 그러면 너는 다시 편안하고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때까지 소리치지 말고 엄살하지 말고 지긋이 받아 안고 등쓰다듬으며 불쌍히 여기라고.  그리고 기쁨 앞에서도 또한 나는 생각한다. 이 기쁨 또한 네가 원해서 너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에 의해 그만한 이유가 있어 잠시 너에게 주어진 것일 뿐 언젠가는 다시 걷어 갈 것이니 너무 그 기쁨에 탐닉하지 말라고, 하여 기쁨이 사라진 뒤에 올 적막함에 대비해 들뜨지 말고 담담하라고. 결국 나는 그 어떤 고통에도 다치지 않고 기쁨에도 동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한의 가장 강한 삶의 방법이다. 슬픔에 다치지 않고 기쁨에 가벼워지지 않는 이끼처럼 질기고 강한 삶의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내 안에 나를 지탱해주고 지켜줄 힘 하나를 지녀야 한다. 언제든 내가 그것을 붙잡고 일어설 수 있고 매달릴 수 있는 것, 나의 방패, 나의 요새 하나를 지녀야 한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가 자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그에게 돌을 주겠습니까? 또는 생선을 청하는데 그에게 뱀을 주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은 악하면서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는 좋은 선물을 줄 줄 안다면,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야 당신에게 청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후하게 좋은 것들을 주시겠습니까!"(마태7,8-11)라고 하신 그분의 힘을.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시오.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추수하지도 않을 뿐더러 곳간에 모아 들이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습니까?... 들의 백합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관찰해보시오. 그것들은 수고하지도 않고 물레질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그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그것들 가운데 하나만큼 차려 입지 못했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여러분이야"(마태6,26-30)하신 그분의 사랑을 나는 내마음의 지주로 삼아야 한다. 그 힘, 그 사랑 없이는 나는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고통에 무너지고 허망한 생의 상실감에 마음 걷잡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삶은 두 개의 골짜기에 걸린 가늘고 덧없는 외줄다리다. 한쪽 골짜기에서 기어 올라와 건너편 골짜기 죽음으로 떨어져 갈 한마당 짧은 다리 건너기다. 해 있을 동안의 남은 다리 건너기에 성심성의를 다하는 것, 그 길만이 빌린 목숨의 빚을 갚는 우리의 의무이며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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