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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9 14:57

독서편지 - 제9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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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954호

2013.4.19 (음3.10) / 발송인:

nowmaster@nate.com

한자 등 텍스트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남을 시궁창에 붙잡아 두려면 자기도 시궁창 속에 있어야 한다. - 부커 T.워싱턴(美 작가, 1856~1915)
 

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새 학기 단상

새 책, 학용품, 책가방, 연필깎이, 새 벗, 반 편성, 담임선생님…. ‘새 학기’ 하면 떠오르는 게 무엇인가, 피디(PD)와 기자 몇 명에게 물으니 돌아온 답이다. 내 기억도 그랬다. 새 학기가 시작될 때면 한 학기 동안 쓸 공책, 연필 따위를 사러 형제들과 함께 시내에 있는 큰 문구점에 가곤 했으니까. 책 크기에 맞춰 마름질한 알록달록 예쁜 포장지와 비닐로 국어책·지리부도 등을 싸며 맡았던 새 책 냄새, 사이좋은 벗들과 한 반이 되기를 바랐던 마음, 피구 경기에서 진 우리들을 위로하다 눈물로 아쉬움을 털어냈던 선생님이 다시 우리 담임이 되기를 바랐던 마음. 이런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려보니 새 학기를 맞던 때의 설렘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대학에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선 강의실은 초롱초롱한 학생들의 눈망울로 밝게 빛났다. 강의 개요, 평가 방법, 과제에 대한 설명 가운데 학생들이 귀를 쫑긋 세우는 대목은 ‘평가 기준’이다. 학점은 이른바 ‘스펙’의 기본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열심히 공부해도 누구는 ‘에이뿔’(A+)을 받고 어떤 이는 최저 학점을 받아야 하는 상대평가 과목일 때는 더욱 그렇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모인 대학 강의실에서도 ‘공부 더 잘하는 학생’을 가려야 하는 것이다.

공부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다.(표준국어대사전) 사전 뜻풀이 아래 예문을 보니 ‘공부를 잘하다(못하다)’는 표현이 편치 않게 다가온다. 놀랄 만한 보람을 얻은 학생에게 부득이 낮은 점수를 줘야 하는 일을 겪은 뒤부터의 일이다. 공부 잘해도 성적(학생들이 배운 지식, 기능, 태도 따위를 평가한 결과)이 낮은 학생은 있기 마련이다. 수학은 못해도 국어를 잘하는 학생, 과학 점수는 낮아도 음악 재능이 뛰어난 학생을 두고 뭉뚱그려 ‘공부 못한다’ 하는 것은 그래서 내키지 않는다. 앞으로 ‘공부 못한다’ 할 자리에 ‘성적이 안 좋다’ 하는 게 어떨까.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시시한 비망록 - 공광규

돈이 사랑을 이기는 거리에서
나의 순정은 여전히 걷어차이며
울었다

생활은 계속 나를 속였고
사랑 위해 담을 넘어본 적도 없는 나는
떳떳한 밥 위해 한 번도
서류철을 집어던지지 못했다

생계에 떠밀려 여전히
무딘 낚시대 메고 도심의 황금강에서
요리도 안 되는 회환만
월척처럼 낚았다

자본의 침대에 누워
자존심의 팬티 반쯤 내리고
엉거주춤 몸 팔았다

항상 부족한 화대로
시골에 용돈 가끔 부치고
술값 두어 번 내고
새로 생긴 여자와 극장에 가고
혼기 넘긴 친구들이
관습과 의무에 밀려
조건으로 팔고 사는 결혼식에
열심히 축의금을 냈다

빵이냐 신념이냐 물어오는 친구와
소주 비우며 외로워했다

나를 떠난 여자 생각하다가
겨울나무로 서서 울기도 했다

지나고 나니 이런,
시시한 비망록이라니.

 

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2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의 편지

 존 코코란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자만 보면 조롱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문 장 속의 글자들은 그의 눈에만 들어오면 제 멋대로 자리 바꿈을 하고, 모음들은 그의 귓속을 통과하는 순간 소리의 의미를 상실했다. 때문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존 코코란은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완전히 다르다 는 걸 느끼면서 멍청히 앉아 있어야만 했다. 만일 누군가 그 어린 소년의 옆자 리에 앉아 어깨에 팔을 얹으면서 "내가 도와 줄 테니 걱정하지 마."하고 말하 기만 했더라도 그의 인생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해 주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아무도 실독증(글을 읽지 못하는 병)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었 다. 실독증이란 문자나 숫자 등의 상징물들을 논리적으로 배열하는 기능을 가진 왼쪽 두뇌에 이상이 생겼을 때 찾아오는 병이다. 이 경우에는 아무리 문장을 읽 으려고 해도 실패로 끝나고 만다. 어린 존으로선 이런 병을 남에게 설명할 능력 조차 없었다. 그 결과, 이학년이 되었을 때 존 코코란은 '벙어리 줄'에 앉아야만 했다. 삼학년이 되었을 때는 수녀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에게 대나무 자를 주고, 존 이 책 읽기와 글자 쓰기를 거부할 때마다 종아리를 때리도록 했다. 사학년이 되자 담임 선생님은 존 코코란에게 책읽기를 시키고는 1분이 넘도록 가만히 기다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존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쨌든 그는 그런 식으로다도 한 학년씩 진급을 했다. 존 코코란은 평생 동안 한 번도 낙제를 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반이 될 무렵, 존 코코란은 학교 농구 팀에서 두각을 나타내 졸 업생 대표로 선발되기까지 했다. 졸업식장에서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존에 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 대학 진학을 권유했다. 대학이라고? 대학에 간다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존 코코란은 엘 파소에 있는 텍사스 대학에 입학하기로 결정했다. 그 대학의 농구팀에서 활동할 계획이었다. 존은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적진을 향해 돌파했다. 대학 캠퍼스에서 존 코코란은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묻곤 했다. 어느 교수가 논술 시험을 많이 내는가? 어느 교수가 사지선다형 시험을 내는가?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 밖으로 나오면 존은 다른 학생이 노트를 빌려 달라고 할까 봐 무의미 하게 휘갈겨 쓴 자신의 강의 노트를 그 자리에서 찢어 버리곤 했다. 저녁에는 기숙사로 돌아와 룸메이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일부터 두꺼운 대학 교재를 펼쳐 들고 오랫동안 앉아 있기도 했다. 밤에 지쳐서 잠자리에 누워도 존 코코란은 머릿속을 괴롭히는 생각들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만일 하느님께서 학점을 얻도록 해 주신다면 3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미사에 참 석하겠노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어쨌든 존 코코란은 학위를 따냈다. 그리고 약속대로 30일간 새벽 미사에 참가했다. 이젠 뭘 할 것인가? 어쩌면 그는 이제 철저히 중독이 됐는지도 모를 일 이었다. 그가 마음 속으로 가장 불안하게 여기면서 또한 가장 원하는 것은 남에게 인정받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존은 1961년에 교사가 되었는 지도 모른다.

 존 코코란은 캘리포니아에서 교편을 잡았다. 날마다 수업시간에 그는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읽도록 시켰다. 시험 문제도 구멍 뚫린 답안지 하나를 얹어 놓고 채점을 할 수 있도록 사지선다형 문제만 냈다. 주말 아침이면 존 코코란 교사는 비참한 기분이 되어 몇 시간씩 침대에 누워 있곤 했다. 그 무렵 존은 운명처럼 캐시를 만났다. A학점을 받는 학생이자 간호사였다. 물론 존처럼 나뭇잎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바위 같은 여자였다. 그녀와 결혼하기 전인 1975년의 어느 날 밤에 존은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고백할 것이 있소, 캐시. 난 글을 읽을 수가 없소." 그 말을 듣고 캐시는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학교 선생인데...'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마 글을 빨리 읽지 못한다는 뜻이리라고 생각했다. 여러 해가 지나 존 코코란이 18개월 된 딸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지 못하는 걸 보고서 캐시는 비로소 그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캐시는 존에게 서 류들과 편지들을 읽어 주고 대필을 해 주었다. 왜 자기한테 읽고 쓰는 법을 가 르쳐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는지 캐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존은 누군가 자기를 가르칠 수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존은 스물여덟 살이 되자 2천5백 달러를 빌려 집을 한 채 더 샀다. 그러고는 그 집을 수리해서 세를 놓았다. 그런 식으로 존은 여러 채의 집을 사서 세를 놓 았다. 사업이 점차 확장되어 마침내 비서와 변호사와 동업자까지 두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계사는 그에게 백만장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알렸다. 완벽했다.

백만장자가 건물에 들어갈 때마다 유리문에 적힌 '미시오'와 '당기시오 '를 구분하지 못해 매번 엉뚱한 문에 부딪치고, 화장실에서는 어느 쪽이 신사 용인지 몰라 다른 사람이 들어가거나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누가 눈치챌 것인가? 1982년에 사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집들은 빈 채로 남아 있게 되었고, 투자 자들은 자금을 회수해 갔다. 배달된 서류봉투들 속에선 저당물을 경매에 부치거나 소송을 걸겠다는 협박이 쏟아져 나왔다. 매일 아침 눈만 뜨면 존 코코란은 대출금 납부 기한을 연기해 달라고 은행 직원들에게 통사정을 해야 했다. 건물에 세든 사람들에겐 떠나지 말고 좀더 있어 달라고 애원하고, 건물의 주주들에게도 납득이 가도록 설명해야만 했다. 머지않 아 그들 모두가 자신을 심판대에 세워 놓고서 검은 옷을 입은 판사가 이렇게 선언할 것만 같았다. "진실을 말하시오. 존 코코란. 당신은 글을 읽을 수 없지 않소?" 마침내 1986년 가을. 마흔여덟 살이 된 존 코코란은 자신이 지금까지 하지 않은 두 가지 일을 결심했다. 그는 자기 집을 담보로 해서 건축에 필요한 마지막 융자를 얻었다. 그리고 그는 칼스바드 시립 도서관에 찾아가서 개인 교습 프로그램 담당을 맡은 여성에게 말했다. "난 글을 읽을 줄 모릅니다." 그러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존 코코란에게는 엘리노어 콘디트라는 예순다섯 살의 할머니가 소개되었다. 그녀는 무한한 참을성을 갖고 한 글자씩 발음을 하면서 존을 가르쳤다. 14개월 만에 그의 부동산 개발회사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존 코코란은 이 제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 단계는 고백을 하는 일이었다. 존 코코란은 샌디에고에 모인 2백 명의 쟁쟁한 사업가들 앞에서 자신이 글을 읽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최초로 고백했 다. 그 후 그는 <샌디에고 문맹 퇴치 위원회>의 이사로 선출되어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강연을 하기 시작했다. 존 코코란은 청중들에게 말하곤 했다. "문맹은 노예 상태와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비난하면서 언제까지나 시간을 낭비할 순 없습니다. 글자를 아는 사람들에게 매달려 끝까지 배워야만 합니다." 존 코코란은 손에 잡히는 모든 책과 잡지들을 읽었다. 그리고 길을 지나가면 서도 간판에 적힌 글들을 소리 내어 읽었다. 아내 캐시가 시끄럽다고 소리 지를 때까지. 그것은 노래하듯이 기쁜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존 코코란은 편안히 잠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존 코코란은 마음 속에 떠오른 게 한 가지 있었다. 그가 마지 막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남아 있었다. 그렇다. 그의 사무실에 있는 먼지 묻은 상 자 속에는 리본에 묶인 편지 한 묶음이 보관되어 있었다. 25년 전, 사랑하는 연 인 캐시로부터 받은 편지들이었다. 존 코코란은 이제 그 편지들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파멜라 트루아

 

문학자료 → 과학


이기적인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제10장 - 내 등을 긁어 다오. 나는 네 등을 타고 괴롭히겠다 (2/4)

        벌목의 성 결정 시스템

  개미류, 꿀벌류, 장수말벌류 등을 포함하는 그룹을 벌목(Hymenpatera)이라고 한다. 이 종류의 곤충은 매우 특이한 성 결정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흰개미는 이 종류에 포함되지 않으며, 또 이특이한 성결정 양식도 공유하지 않는다. 벌목의 전형적인 집에는 성숙한  여왕이 한 마리밖에 없다. 여왕은 젊어서 결혼 비행을 한 번 했고, 그때에 저장한 정자로 나머지 전생애 -십 년 또는 그 이상- 동안 애낳기를 해낼 수 있다. 이 기간에 암놈은 정자를 일정량씩 방출하여 수란관을 통과하는 알을 수정시킨다. 그러나 모든 알이 수정되는 것은 아니다. 미수정란이 발육하면 수놈으로 된다. 즉, 수놈에게는 아비가 없다. 수놈의 몸의 모든 세포 중에 는 우리들의 경우와 같이 두 세트의 염색체(한 조는 어미, 그리고 한 조는 아비로부터)가 포함되는 것이 아니고 그저 한조의 염색체(모두 어미 혈통)밖에 포함되지 않는다. 제3장에서의 비유를 쓰면 벌목의 수놈의 세포 속에는 보통은 두 개의 염색체가 포함되어 있는 것에 반해 각각의 '권'의 한 사본(염색체)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반면에 벌목의 암놈은 보통의 동물과 다름이 없다. 암놈에게는 아비가 있고 암놈의 체세포들 속에는 보통과 같이 두  세트의 염색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암놈이 일벌레가 되느냐 여왕이 되느냐는 유전자가 아닌 어떻게 자랐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말해서 암놈은 여왕을 만드는 유전자의 완전한 세트와 동시에 일벌레를 만드는 유전자의 완전한 세트도 가지고 있다(후자에 대해서는 일벌레, 병정 등 개개의 특수화된 계급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좋을지도 모른다). 어느 세트의  유전자에 '스위치가 켜질지'는 그 암놈이 어떻게 양육되느냐, 특히 어떤 먹이를 받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있을지라도 벌목의 성 결정 시스템의 본질적인 상태는 위와 같다. 어떻게 이와 같이 특이한 유성 생식 시스템이 진화되었는지는 아직 모르고 있다. 훌륭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나 문제는 그것을 벌목이 나타내는 하나의 기묘한 사실로서 다룰 수 밖에 없다. 이 특이한 시스템이 어떻게 유래했든 그 특이함 덕분에 제6장에서 소개한 근친도의 간단한 계산법이 여기서는 심한 혼란을 일으키고 만다. 예를 들면, 인간의  경우라면 한 사람의 남자에게서 유래하는 정자는 모두 틀린 유전 조성을 가지고 있는데, 벌목의 시스템에서 한 마리의 수놈이 만드는  정자는 모두 똑같은 정자로 되어  버린다. 벌목의 수놈의 몸 속 세포는 두 세트가 아니고 한 세트의 유전자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느 정자도 세포 중의 유전자 세트에서 50%의 샘플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100%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동일한 수놈에서 유래하는 정자는 모두 같다.

  그러면 이와 같은 조건하에서 어미와 수놈  자식의 근친도를 계산해 보기로 하자.  우선 지금 한 수놈이 유전자 A를 소유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면 어미가 이것을 공유하는 확률은 어떨까? 수놈에게 아비는 없고 모든 유전자는 어미로부터 전수되었으므로 답은 100%가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역으로 여왕이 유전자를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수놈 자식은 여왕의 유전자의 절반밖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B 유전자를 공유하는 확률은 50%가 된다. 어딘가 모순된 것 같은 느낌일지 모르나 그렇지는 않다. 수놈은 자기의 유전자를 '모두'어미로부터 받으나 어미는 자기 유전자의 '절반'밖에 자식에게 주지 않는다. 이외견상의 패러독스를 푸는 해결은  수놈이 보통의 수의 절반밖에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근친도의 '정확한' 지표가 1/2인지 1인지에 대해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 이 지표도 단순히 인공적인 척도이고 이것을 구체적인 사례에 써서 사태를 해결하기 어렵게 되면 그것을 포기하고 첫번째 원리로 되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여왕의 몸 속에 있는 유전자 A의  입장에서 문제를 고찰해 보면 이 유전자가 수놈에게 전해지는 확률은 1/2로, 암놈에게 전해지는 확률과 같다. 그러므로 여왕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의 자식은 암수 관계없이 어느것이든 같은 정도의 혈연자가 된다. 이 혈연 관계의 정도는 인간의 아이가 그들의 모친에 대한 것과 같다.

  자매 관계를 상대로 하면 사태는 다시 까다롭게 된다. 같은 부친으로부터 유래하는 자매는 단순히 부친을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녀들은 수정시킨 두 개의 정자는 모두 유전자에게 완전히 같다. 즉, 부친 유래의 유전자에 관한 한 그녀들은 일란성 쌍생아와 같다. 만약 한 자매가 유전자 A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이것은 부모 누구에겐가로부터 유래했을 것이다. 만약 그 유전자가 모친의 유전자라면 자매가 그것을 공유하는 확률은 50%이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부친으로부터 유래한다면 자매가 그것을 공유하는 확률은 100%이다. 따라서 벌목에서는 같은 부모로부터 유래하는 자매간의 근친도는 보통의 유성 생식동물의 경우 1/2이 아니라 3/4으로 된다. 이에 따르면 벌목의 암놈의 경우 부모를 공유하는 자매에 대한 어미의 혈연 정도는 자기의 양쪽 성의 자식에 대한 어미의 혈연 정도보다 가깝다. 해밀턴이 밝힌 바대로 위의 사정은 효율이 좋은 자매 생산이계로서 이용하기 위해 모친을 봉양한다는 경향을 암놈에게 발달시키는 요인으로 될 가능성이 있다(더구나 해밀턴은 여기서 내가 말한 것과 똑같은 설명법을 취하고 있지 않다). 이 경우 간접적인 방법으로 자매를 만들게 하는 유전자는 직접 자식을 만들게 한 유전자보다 급속히 증식한다. 일벌레의 불임성은 이렇게 해서 진화했다. 일벌레의 불임성을 수반하는 '진실한 사회성'은 벌목에서는 '독립적으로' 적어도 11번 진화했고 나머지 동물계 전체에서는 단지 흰개미에서 한 번 진화했을 뿐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연히 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함정이 있다. 일벌레가 자매 생산 기계로서 어미를 봉양하기 위해서 성공적이라면 자매와 동시에 같은 수의 형제를 일벌레에게 양육하도록 하는 어미의 당연한 경향을 어떤 방법으로든 억제하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벌레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임의의 형제가 어미의 유전자의 특정한 1개를 공유하는 확률은 1/4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만일 번식 능력을 가진 암수의 자식을 동수로 낳는 것을 여왕에게 허락했다면 일벌레의 입장에서 보면 한 여왕을 봉양하는 것은 아무런 이익도 없게 될 것이다. 그런 것을 허용한다면, 일벌레는 자신들의 귀중한 유전자의 증식을 최대화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일벌레가 누이를 증식하는 방향으로 성비를 기울게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에 착안한 이는 트라이버스와 헤어였다. 그들은 최적 성비(앞장에서 취급한)에 피셔는 계산법을 응용하여 벌목이라는 특수한 예에 관해 계산을 다시 고친 것이다. 그 결과 어미에 대한 최적 투자 비율은 통상대로 1:1로 된다. 그러나 자매에 대한 최적 비율은 형제보다는 자매에 유리해서 3:1이 된다. 만약 독자가 벌목의 암놈이라면 유전자를 증식하는 데 가장 유리한 방법은 스스로 새끼를 낳는 것을 억제하고, 그 대신에 당신의 모친에게 번식 능력을 가진 누이와 아우를 3:1의 비율로 낳아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둘다 자신이 자식을 낳아야만 하는 처지가 되면 번식 능력이 있는 자식을 동수 출산하는 것이 당신의 유전자에게도 가장 유리한 길이다.

      여왕과 일벌레의 차이
  이미 말한 대로 영왕과 밀벌레의 차이는 유전적인 것이 아니다. 유전자에 주목하는 한 암놈의 배(embryo)는 3:1의 성비를 '바라는' 일벌레가 되든지 아니면 1:1의 성비를 '바라는' 여왕이 되도록 운명지어져 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바람'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다. 만약 한 유전자가 여왕의 몸에 들어 있다면 그 유전자는 번식 능력이 있는 아들과 딸에게 여왕의 몸이 1:1의 비로 투자를 실시할 때 최대의 효율로 증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유전자가 일벌의 몸에 들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그 유전자는 일벌의 몸을 도와서 그 어미에게 작용하여 어미가 수놈보다 암놈을 많이 만들도록 영향을 줌으로써 자기의 증식을 최대화할 수 있다. 여기서 모순은 전혀 없다. 유전자는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의 동력레버를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한다. 여왕으로 될 개체의 발육을 좌우할 입장에 놓인다면 유전자는 이에 걸맞는 최적 전략을 강구하여 그 제어력을 자기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면 된다. 만약 일벌의 발육을 좌우할  수 있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면 전자와는 별도의 최적 전략을 취하여 그 힘을 자기의 이익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 이상의 사정은 사회성 벌목류의 집이라는 양식장 속에 이해 대립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왕은 암수에게 동등한 투자를 행하려고 하고 있다. 일벌은 성비를 수컷 1에 암컷 3의 방향으로 이동시키려고 하고 있다. 일벌은 농부이고 여왕은 증식용의 암말이라고 하는 견해가 옳다면 아마도 일벌들은 여왕이 바라는 3:1의 성비를 잘 달성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의 견해가 틀렸다면, 즉 여왕이 실제로 그 이름에 걸맞게 행동을 취하고 있고, 일벌들은 여왕의 노예이고 왕립 탁아소의 고분고분한 보육자라고 하면 성비는 여왕의 '바람대로' 1:1이 될 것이다. 이 특수한 형태의 세대간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도대체 어느 쪽일까? 이것은 검정 가능한 문제이고, 실제로 트라이버스와 헤어는 많은 종류의  개미를 가지고 그것을 테스트했다.

  문제의 성비는 수놈의 번식충과 암놈의 번식충의 비이다. 이들은  큰 날개를 가진 대형의 개체이고, 결혼 비행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개미집에서 빠져 나온다. 이 결혼 비행 중, 벎은 여왕은 새 집단만들기에 착수한다. 위의  서이 추정치를 얻기 위해서는 이들 중 날개 달린 형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많은 종에 있어서는 수놈과 암놈의 번식충의 크기에 커다란 차이가 있고, 이것이 문제를 매우 복잡하게 한다. 앞의 크기에 커다란 차이가 있고, 이것이 문제를 매우 복잡하게 한다. 앞장에서 언급한 대로 피셔의 최적 성비의 계산법을 엄밀하게 말하면 수놈 암놈의 '수'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암수 각각에 대한 '투자량'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 점을 배려하기 위해 트라이버스와 헤어는 번식충의 성비에 무게를 참조하였다. 그들은 20종류의 개미를 재료로 하여 암수의 번식충에 대한 투자량의 비로 나타내는 성비를 추정하였다. 그들은 일벌레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집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론에서 예측되는 암수의 비가 3:1이라는 것에 상당히 납득이 가도록 잘 일치됨을 발견하였다. 연구 대상이었던 위의 개미류에서는 일벌레가 이해 대립에서 '이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렇게까지 놀랄 정도는 아니다. 일벌레의 몸은 보육장의 관리자로 근무하고 있으므로 여왕의 몸보다 실제로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 여왕의 몸을 매개로 하여 세계를 조작하려는 유전자는 일벌레의 몸을 매개로 하여 세계를 조작하려고 하는 유전자에게 반역당하고 만다. 그러나 반대로 여왕편이 일벌레보다 실제로 힘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은 없는지 그와 같은 특수 사례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트라이버스와 헤어는 그들 이론의 비판적 검정에 사용할 만한 안성맞춤의 상황이 있음을 깨달았다.

      노예 사역종
  개미 무리 중에 노예를 사역하는  종이 있다는 사실이 이 일의 발단이다. 노예 사역종의 일개미는 통상의 일을 전혀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솜씨가 좀 나쁘다. 일개미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은 노예를 사냥하는 일이다. 대립하는 대군이 싸워서 상대방을 죽이는 진정한 의미의 전쟁은 사람과 사회성 곤충에서만 볼 수 있다. 많은 개미류에서는 병정개미라고 하는 특수한 일개미가 전투용의 거대한 턱을 가지고 집단을 위해 다른 개미 군대와 싸우는 일을 도맡고 있다. 노예 사냥도 전투 행위의 특수한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노예 사역 개미는 다른 종의 개미집을 공격해 집을 방위하고 있는 상대방의 일개미나 병정개미를 죽이고 우화전의 유충을 빼앗아 간다. 유충은 포획자의 보금자리 안에서 우화되어 노예의 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신경계에 주입된 프로그램에 따라 일을 시작한다. 노예들은 자기와 같은 종의 보금자리에서 보통 행해야 할 모든 일을 해치운다. 노예 개미가 보금자리에 머물러 청소, 먹이구하기, 새끼돌보기 등 개미집을 유지하기 위한 일상적인 작업에 정성을  쏟고 있는 사이에 노예 사역종의 일개미, 즉 병정개미는 다시 노예 사냥 원정을 계속한다. 물론 노예들은 자기들이 시중들고 있는 여왕이나 새끼가 남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한다. 모르는 사이에 노예들은 노예 사역종의 새로운 대군을 돌보고 있다. 노예 사역종의 유전자에 작용하는 자연 선택은 틀림없이 노예화에 대항하는 여러 적응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노예 사역의 현상은 광범위하게 볼 수 있으나 대항책이 큰 효과를 못 올릴 것이 명백하다.

  우리의 견해로 보아 관심을 끄는 노예 사역이라는 습성의 필연적 귀결은 다음과 같다. 즉, 노예 사역종의 여왕은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성비를 기울게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적출의 자식들, 즉 노예 사냥꾼들은 이미 보육장의 실권을 잡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이 힘을 쥐고 있는 놈은 노예들이다. 물론 노예 개미들은 자기의 동포를 시중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보통 노예들은 자기와 같은 종의 보금자리 안에서라면 3:1이라는 암놈을 바라는 성비를 달성하는 데 확실히 일역을 할 수 있는 각 노예 사역종의 여왕은 이들에 대한 저항 수단을 자 행사할 수 있다. 더욱이 노예 개미와 자신들이 돌보는 새끼는 남이기 때문에 위의 대항 수단을 무력하게 하는 선택이 노예들에게 작용할 여지는 없다. 예컨대 어떤 종류의 개미에서 여왕이 수컷이 될 알에 암놈과 같은 냄새가 나도록 위장을 '기도했다'고 생각해 보자. 자연 선택은 일개미가 나타내는 경향 중에서 이 위장을 '간파하는 데' 역할하는 모든 경향을 촉진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말하자면 여왕이 부단히 암호를 바꾸고' 일개미는 그 '암호를 바꾸고' 일개미는 그 '암호를 해독한다'고 하는 어떤 종의 진화상의 다툼이 있다고 예상된다. 누구든지 번식충의 몸을 매개로 하여 다음 세대에 자기의 유전자를 보다 많이 전달할 수 있는 자가 이 싸움의 승자가 된다.  이미 말한 대로 보통은 일개미가 승자가 된다.

  그러나 '노예 사육종'의 경우에는 여왕이 암호를 바꾸면 노예 개미에게 이 암호를 해독하는 능력이 진화할 가능성은  없다. 노예 개미 몸에 '암호 해독용'의 유전자가 존재해도 그 유전자는 그 보금자리에서 일어나는 어떤 번식충에게도 공유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 전해질 리도 없다. 그 집에서 출생하는  번식충은 모두 이 노예 사역종에 속해 있기 때문에 여왕과는 혈연 관계가 있으나 노예 개미와는 혈연 관계가 없다. 노예 개미의 유전자가 어떤 번식충에 공유된다고 하면 그 상대는 유괴당하기 전에 자신들이 소속하고 있던 본래의 집에서 출생하는 번식충이다. 즉, 노예의 일개미들은 오히려 노예 사역종의 여왕이 쓰는 것과는 다른 암호를 해독하기에 바쁠 것이다. 노예 사역종의 여왕은 자신의 암호를 해독해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 전해지는 것을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여왕은 자유로이 암호를 바꿔 일개미의 대항책에 대처해 나갈 수 있다. 노예를 부리는 개미에게는 암수 번식충에 대한 투자  비율이 3:1이 아닌 오히려 1:1에 가까운 값이 될 것이라는 것이 이상의 까다로운 논리의 결론이다. 이 경우에 한해서는 여왕의 바람대로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종류의 노예 사역  개미에 관해서이기는 하지만 트라이버스와 헤어는 실제로 이와 같은 비율을 발견했다.

      집단 분할 및 창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사태를 이상화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현실 생활은 그렇게까지 정연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예컨대 사회성 곤충 중에서 가장 낯익은 꿀벌은 전혀 '기대 밖의' 것같이 보인다. 꿀벌의 경우 여왕에게 주어지는 분량보다 훨씬 많은 투자가 수벌에 대해 일어나고 있고, 이것은 일벌이나 모친인 여왕벌 어느 입장에서 보아도 계산이 맞을 것 같지 않다. 이 수수께끼에 대해 해밀턴은 가능성이 있는 해답 하나를 내놓았다. 그는 분봉시에 여왕벌이 일벌의 큰 무리를 동반하고 떠나 이 일벌들이 새로운 집단 창설을 도와주는 것에 주목했다. 이들 일벌은 부모집으로부터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자신들을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대가는 번식의 대가의 일부로서 계산되어야만 한다. 집을 떠난 여왕벌마다 많은 여분의 일벌이 만들어져야 된다. 이들 여분의 일벌에게 투자된 부분은 번식 능력이 있는 암벌을 만들기 위한 투자의 일부로 간주되어야 한다. 성비를 계산할 때 이들 여분의 일벌은 수벌의 반대축의  천칭에 놓고 무게를 재야만 한다. 그래서 꿀벌의 예도 앞에서 기술한 이론으로서는 결국 그다지 심각한 난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해밀턴 이론의 훌륭한 활약을 저지하는 더 귀찮은 방해물이 있다. 그것은 사회성 벌목 중에는 결혼 비행시에 젊은 여왕이 두 마리 이상의 수벌과 교미하는 종이 있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예에서는 그 여왕이 낳은 암컷끼리의 평균 근친도는 3/4 미만으로 되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1/4에 가까워진다. 너무 이론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여러 수벌과의 교미는 여왕이 일벌에게 가하는 교묘한 일격이라고 보이는 것도 흥미있다.  그렇다면 만일 이와 같이 생각할 때 일벌은 여왕벌이 교미를 한 번 이상 못하도록 결혼 비행에 따라다녀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옴직하다. 그러나 그런 짓을 해도 일벌은  자기의 유전자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에 의해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다음 세대의 일벌의 유전자이다. 동일한 계급으로서의 일벌들 사이에는 노동 조합 정신 같은 것은 없다. 각각의 개체는 자기의 유전자에 대한 '배려'밖에 없다. 일벌은 가능하다면 자기 모친의 결혼 비행에 따라붙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벌에게는 그러한 기회가 없었다. 그때에는 아직 수정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결혼 비행을 떠나려고 하는 젊은  여왕은 그 시점의 세대의 일벌과는 자매이지 어미는 아니다. 따라서 그 시점의  일벌은 자신들의 조카에 불과한 다음 세대의 일벌과 한편이 아니고 젊은 여왕과 한편이다.  이제 슬슬 이 문제를 매듭지을 때가 온 것 같다.

      유전자 양식장
  벌목 곤충의 일벌레가 그들의 어미에게 가하고 있는 작용을 여기서는 양식업으로 비유했다. 이 양식장은 유전자의 양식장이다. 자기들의 유전자의 사본을 생산하기 위해 일벌레는 스스로 그 일을 하기보다 유전자 생산의 효율이 좋은 이유로 해서 어미를 그들의 유전자 사본의 생산자로 이용하고 있다. 문제의 유전자는 번식충이라는 이름의 포장 속에서 일관 작업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사회성 곤충은 전혀 다른 의미로 양식된다고 할 수 있다. 위의 양식업의 비유를 이것과 혼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렵과 채집 생활보다 정착해서 먹이를 양식하는 것이 훨씬 높은 효율을 올릴 수 있다. 사회성  곤충은 인간보다 훨씬 이전에 그것을 발견했다. 예컨대 아메리카 대륙의 개미와는 달리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의 흰개미들은 균원(fungus garden)을 만드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남미의 우산개미(parasol ant) 종족이다. 이들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한 집당 개미 수가 200만을 넘는 예도 있다. 그들의 집은 지하에 퍼지는 통로와 길다란 방의 거대한 복합체로서 그 깊이는 3미터 또는 그 이상에 달하기 때문에 파내는 흙의 양은 40톤이나 된다. 지하의 방에는 균원이 있다. 식물의 잎을 세분하여 특수한 퇴비 못자리를 만들고 개미들은 일부러 거기에 특수한 종류의 균류를 뿌린다. 일개미는 즉시 먹이가 될 만한 것을 구하러 나가는 것이 아니고 퇴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잎을 수집하러 나간다.

  우산개미의 군집이 잎을 수집할 때의 식욕은 놀라워서 그들은 크나 큰 경제 피해를 주는 해충이라고도 한다. 수집된 잎은 그들 자신의 먹이가 아닌 그들이 키우는 균류의 먹이로 되는 것이다. 얼마 후 그들은 그 균류를 수확하여 자신도 먹과 새끼들에게도 먹인다. 개미보다 균류가 높은 효율로 잎을 분해한다. 균원작이 개미에게 이익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편 균류쪽에서도 물론 수확을 뺏기는 손해도 있으나 위의 상호 관계에 의해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포자의 분산이라는 메커니즘보다 개미의  도움쪽이 효율적으로 균류를 증식시킬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미들은 균원의 '풀뜯기'까지 해 주고 다른 종의 균류가 침입 못하도록 해 준다. 경쟁이 없어짐으로 해서 개미에게 재배되는 균류에게는 유리할지도 모른다. 개미와 균류 사이게는 일종의 상호 이타주의적인 관계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계통적으로 서로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각종의 흰개미들 사이에서 아주 잘 닮은 균류 재배 시스템이 독립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진딧물과 만나
  개미류는 재배용의 식물뿐만 아니라 가축도 소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진딧물이 그것이다. 진딧물류는 식물의 즙을 흡입하기 위해 고도로 특수화된 곤충이다. 그들은 영양가를 조금만 흡수하고 나머지 액체는 분비한다. 설탕을 많이 포함한 '꿀방울'이 몸의 후단에서 대량으로 넘쳐 흘러 나온다. 자기 자신의 체중을 넘는 정도의 꿀방울을 매시간 분비할 때도 있을 정도이다. 꿀방울은 비처럼  지상에 떨어진다. 하느님이 주신 양식으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만나'는 실은 이 꿀방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개미 중에는 그 꿀방울이 진딧물의 몸에서 이탈하는 순간에 즉시 그것을 탈취해 버리는  종류가 있다. 그들은 더듬이와 다리로 진딧물의 궁둥이를 비벼서 '꿀을 짠다.' 진딧물도 개미에게 반응한다. 개미가 건드릴 때까지 작은 꿀방울을 내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예도 있고, 개미가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작은 꿀방울을 뱃속으로 되돌리고마는 예도 있다. 어떤 종의 진딧물은 개미를 쉽게 유인하기 위해서 개미의 안면과 닮은 외관과 감촉을 가진 엉덩이가 진화됐다. 이 상화 관계로 진딧물이 얻는 것은 분명히 천적으로부터의 보호이다. 인간에게 사육되고 있는 소처럼 그들도 보호받는 생활을 하고 있고  개미로부터 대폭적인 보살핌을 받고 있는 종류들은 자기 방어 메커니즘을 잃고 만다. 개미가 자기들의 지하 집 속에서 진딧물의 알을 돌봐 주는 예도 있다. 이 경우, 개미는 진딧물의 유충에 먹이를 주어 그들이 성장하면 그들을  보호가 될 수 있는 목장으로 친절히 운반한다.
 

문학나눔 → 고사성어


  羊頭狗肉(양두구육)
  羊(양 양) 頭(머리 두) 狗(개 구) 肉(고기 육)

  안자춘추(晏子春秋) 내편(內篇)의 이야기. 춘추시대, 제(齊)나라 경공(景公)은 어리석고 무능한 국왕이었다. 그는 궁안의 여자들로 하여금 남장(男裝)을 하게 하고, 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궁궐 밖의 여자들도 이 소문을 듣고 남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경공은 이 사실을 알고 관리를 보내 이러한 유행을 금지하도록 하였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승상(丞相)인 안영(晏 )에게 그 까닭을 묻자, 안영은 이처럼 대답하였다.

 궁안에서는 여자들에게 남장을 시키면서 궁밖에서는 이를 금지시키시는데, 이는 마치 문에다 소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猶懸牛首于門而賣馬肉于內也). 만약 왕께서 궁안의 남장을 금지시키신다면, 궁밖의 여자들도 남장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본시 소머리와 말고기였던 것이 후에는 양머리(羊頭)와 개고기(狗肉)로 바뀌었다. 羊頭狗肉이란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음 을 비유한 말이며, 영어로는 Cry up wine and sell vinegar(포도주 대신 식초 팔기) 라고 한다. 가짜 한우고기와 가짜 양주 판매업자, 그리고 풀려난 권력형 비리관련자들. 이들은 모두 개(狗)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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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말] 현양두 매구육(懸羊頭賣拘肉).
[동의어]현양수매마육(懸羊首賣馬肉),
현우수(매)마육[懸牛首(賣)馬肉].
[유사어] 양질호피(羊質虎皮), 현옥매석(衒玉賣石).
[출전]《晏子春秋》,《無門關》,《揚子法言》

밖에는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판다는 뜻. 곧 ① 거짓 간판을 내검. ②좋은 물건을 내걸고 나쁜 물건을 함. ③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음의 비유. ④ 겉으로는 훌륭하나 속은 전혀 다른 속임수의 비유.

춘추시대, 제(齊)나라 영공(靈公)때의 일이다. 영공의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男裝)을 시켜 놓고 완상(玩賞)하는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취미는 곧 백성들 사이에도 유행되어 남장한 여인이 날로 늘어났다. 그러자 영공은 재상인 안영(晏嬰:晏子)에게 ‘궁 밖에서 남장하는 여인들을 처벌하라’는 금령을 내리게 했다. 그러나 유행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영공이 안영에게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궁중의 여인들에게는 남장을 허용하시면서 궁 밖의 여인들에게는 금령을 내렸사옵니다. 하오면 이는 ‘밖에는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羊頭狗肉]’과 같사옵니다. 이제라도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을 금하시오소서. 그러면 궁 밖의 여인들도 감히 남장을 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영공의 안영의 진언에 따라 즉시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 이튿날부터 제나라에서는 남장한 여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君使服之於內 而禁之於外 猶懸牛首于門 而賣馬肉於內也 公何以不使內勿服 則外
            莫敢爲也.        
 

문학자료 → 수필


간디자서전. 시민의 불복종 - 간디 / 함석헌 역


 제2편

21. 3파운드의 세금

 발라순다람 사건으로 나는 계약노동자들과 접촉을 하게 되었지만, 나로 하여금 그들의 상황을 깊이 연구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것은 그들에게 과중한 특별세금을 부과하려는 정치 작전이 진행되고 있던 것 때문이었다. 같은 해인 1894년, 나탈 정부는 계약노동자에게 매년 25파운드의 세금을 부과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계획을 보고 나는 깜짝놀랐다. 나는 그 사건을 의회에다 토의안건으로 내놓고서 즉시 필요한 반대작전을 펴기로 결의를 보았다. 먼저 이 세금의 유래를 간단히 설명해야 하겠다. 1860년쯤 해서 나탈에 있던 유럽인들은 사탕수수 재배가 상당히 유리하리라는 것을 알자 자신들의 노동력의 부족을 느꼈다. 밖에서 오는 노동력이 아니고는 사탕수수의 재배나 사탕의 제조는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나탈의 줄루인들은 그런 종류의 노동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탈 정부는 인도 정부와 교섭하여서 인도 노동자를 모집할 허가를 얻었다. 이들 응모자들은 5년간 나탈에서 일한다는 계약에 도장을 찍어야 했고, 그 기한이 끝나면 자유로이 거기 정주하며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 것들은 그들을 유인하기 위해 내세운 미끼였다. 그 당시 백인들의 계획으로는 그 계약노동의 기한이 다 되면 그 후에는 그 인도 노동자들의 근면함을 이용하여 자기네의 농업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나은 효과를 냈다. 그들은 많은 양의 채소를 재배했고, 인도산의 여러가지 종류를 수입했고, 또 그 지방 토산 종류들을 헐값으로 재배하기도 했다. 또 망고를 수입했다. 그뿐만 아니라 농업에만 그치지 않고 상업까지 시작했다. 땅을 사고 집을 짓고 많은 사람이 노동자의 신세에서 토지. 가옥의 소유자로 올라갔다. 그 뒤를 따라 인도에서 무역상들이 와서 거기 정주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고 셰드 아부바카르 아모드는 그중의 제1인자였는데, 그는 곧 거대한 실업가가 되었다. 깜짝 놀란 것은 백인 무역상들이었다. 그들이 처음에 인도 노동자들을 환영했을 때는 그들의 사업 재능을 계산에 넣지 못했었다. 그들이 독립한 농민으로만 있었다면 아마 참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역에서 경쟁자가 되다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이것이 인도인 적대시의 불씨가 되었다. 그밖의 여러가지 요소가 더해져서 점점 더 자라 갔다. 우리의 생활양식이 다른 것, 우리의 검소한 버릇, 근소한 소득으로 만족하는 우리의 성질, 건강과 위생의 원리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 주변을 깨끗하고 산뜻하게 하기를 게을리하는 버릇, 우리의 인색한 성질로 집수리를 할 줄 모르는 것, 이 모든 것에다가 종교가 서로 다른 것까지 한데 합하여져서 인도인에 대한 적개심의 불길에 부채질을 해주었다. 이 적대심이 입법을 통하여서 선거권의 박탈 법안, 계약노동자에 대한 세금 부과 법안으로 표현이 되어 나온 것이다. 입법과는 별도로 인도인을 못살게 구는 갖가지 정책이 벌써부터 생겨나고 있었다.

  첫째안은 인도 노동자들을 강제로 본국으로 호송하여 계약 기한이 인도에서 끝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인도 정부가 그것을 잘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대안을 내놓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1) 계약노동자들은 계약 기한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갈 것.
  (2) 매2년마다 계약을 갱신하고, 갱신할 때마다 계약금을 올릴 것.
  (3) 인도로 돌아가기를 거절하거나, 계약 갱신을 거절할 때는 매년 25파운드의 세금을 낼 것.
  이 안에 대한 인도 정부의 동의를 얻기 위하여 헨리 빈즈경과 메이슨씨로 구성된 대표단이 인도로 파견되었다. 당시의 인도 총독은 엘진 경이었는데, 그는 25파운드 세금 부과에는 반대했으나 3파운드의 인두세에는 찬성을 했다. 나는 지금도 역시 그렇지만, 그때 그것은 총독의 큰 실책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거기에 찬동할 때 그는 인도의 이해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와 같이 나탈의 유럽인을 유리하게 해주는 것은 그의 의무에 속하지 않는다. 3,4년 지나노라면 아내와 16세의 아들, 13세의 딸을 거느리는 계약노동자가 세금을 바쳐야 된다. 남편, 아내, 두자녀의 네 사람 가족이 남편의 매월 평균 수입이 14실링을 넘지 못하는 때에 한해에 12파운드를 바쳐야 하니, 이런 제도는 세계 어디를 가도 찾아볼 수 없는 가혹한 것이다. 우리는 이 세금을 반대하는 치열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만일 나탈 인도 국민 의회가 이 문제에 대해 잠자코 있었더라면 총독은 아마도 25파운드 세까지도 찬동했을 것이다. 25파운드에서 3파운드로 감소된 것조차 완전히 국민의회의 시위운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인 지도 모른다. 인도 정부는 처음부터 25파운드 세금에는 반대했고 3파운드로 감소된 것도 국민의회의 반대와는 관계없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것은 인도 정부가 신의를 저버린 것이었다. 인도 복지의 책임을 지는 총독은 그런 비인도적인 세금에 찬성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국민의회로서는 세금을 25파운드에서 3파운드로 감소시킨 것을 큰 성공으로 알 수는 없었다. 계약노동자의 이익을 철저히 옹호하지 못한것은 유감이었다. 세금을 철폐시키자는 결의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결의가 실현된 것은 20년 후였다. 그리고 그것이 실현된 것은 나탈이 인도인만이 아니라 남아프리카에 있는 전 인도인의 노력의 결과로 된 것이었다. 그 최종적인 투쟁은 고 고칼레 씨에 대한 배신행위가 계기가 되어서 일어난 것이었는데, 그 투쟁에 있어서 계약노동자들은 전적으로 참가하여, 정부가 감행한 발포 결과 몇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만 명 이상이 투옥되는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진리는 종국에 가서 이기고야 말았다. 인도인의 고난은 그 진리의 표현이다. 그러나 물러설 줄 모르는 신앙과 비상한 인내의 부단한 노력 아니고는 그 승리는 있을 수 없었다. 공동체가 만일 그 투쟁을 중단했다면, 국민의회가 투쟁을 그만두고 세금을 불가피한 것으로 알고 항복해 버렸다면, 이날까지도 한스러운 세금은 계약노동자에게 부과되었을 것이고, 남아프리카의 인도인과, 그리고 전 인도인의 영원한 치욕으로 남았을 것이다.
 

문학자료 → 동서고전/신화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14장 헤라클레스

    1. 알크메네

  알크메네(Alcmene)는 아르고스 왕 엘렉트류온의 딸이다. 엘렉트류온은 아이톨리아인에게 살해된 아들들의 원수를 갚아주면 딸 알크메네와 왕권을 내주겠다고 암피트류온에게 약속하였다. 이에 암피트류온이 아이톨리아 전쟁터에 나간 사이 제우스가 암피트류온으로 변신하여 알크메네와 하룻밤을, 그것도 보통보다 세 배나 긴 밤을 지냈다. 한편 승리한 암피트류온이 다음 날 전쟁터에서 돌아왔으나 알크메네가 별로 반기는 기색이 없고 새삼스럽게 군다는 태도를 취하자 의아하게 생각되어 예언자 티레시아스를 찾아갔다. 사랑의 경쟁자가 존엄한 제우스 신임을 알게 된 암피트류온은 자랑스러운 아내에게 돌아왔고 얼마 후 알크메네는 쌍둥이를 낳았다. 그 중 한 아이가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이고, 나머지 하나는 암피트류온의 아들인 이피클레스였다. 제우스가 신과 인간을 위하여 영웅을 낳고자 알크메네를 택했던 것이다. 알크메네는 생을 마친 후 제우스의 올림포스 신전에 묻혔다.

    2.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Heracles, Hercules)는 '헤라의 영광'이라는 말로 헤라 여신을 숭배하는 부족에서 유래하였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명성이 높고 괴력을 가진 영웅으로 보통 키를 가진 사람으로 전하는데, 로마인은 그를 탐스러운 근육을 가진 중량급으로 표현하였다. 사후에는 신으로 모셔져 숭배되었다. 신화에는 같은 이름이 많아 예컨대 디오도로스는 3명, 키케로는 6명, 어떤 작가는 43명이나 등장시키고 있다. 모두 제우스와 알크메네의 아들이며 테베 사람으로 적고 있다. 제우스 신은 온 누리가 우러러보는 위대한 영웅을 얻기 위하여 알크메네의 침실에서 긴 밤을 지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헤라 여신은 매우 화를 내며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학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아이가 필연코 힘이 장사에 세력이 강성해져 나라를 지배할 것이라고 짐작한 헤라는 서둘러 아르고스 나라로 가서 왕 스테넬루스에게 빨리 아이를 낳으라고 지시하였다. 이렇게 해서 서둘러 낳은 아이가 헤라클레스보다 두 달 먼저 출생한 허약한 칠삭둥이 에우류스테우스였다. 알크메네와 쌍둥이 헤라클레스와 이피클레스를 티륜토스(디오도로스는 테베라 함)에서 키웠다. 생후 8개월이 되었을 때 헤라는 두 마리 뱀을 보내 어린 아이를 물게 하였으나 조숙한 헤라클레스는 두려움 없이 양 손에 뱀 한 마리씩을 잡고 목을 조여 죽여 버렸다. 동생 이피클레스는 놀라 집안이 떠나갈 듯 비명을 질렀다.

  일찍부터 공부를 시켰는데 튠다레오스의 아들 카스토르는 싸움하는 법을, 에우류토스는 활쏘는 기술을, 아우톨류코스는 이륜수레를 모는 범을, 리노스는 수금켜는 법을, 에우몰포스는 노래하는 창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당대에 이름난 켄타우로스족 케이론에 사사하여 씩씩하고 나무랄 데 없는 젊은이라 성장하였다. 18세 되던 해 암피트류온의 가축과 농토에 심한 피해를 주는 키타이론 산의 어마어마하게 큰 사자를 잡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는 역시 사자의 재앙을 받고 있던 테스피오스 나라의 왕을 찾아가 50일간 후한 대접을 받았다. 왕에게는 50명의 공주가 있었는데 왕의 깊은 뜻으로 헤라클레스는 궁에 묵는 동안 모든 공주를 잉태시켰다. 키타이론 산의 사자를 사냥하는 데 성공한 헤라클레스는 테베 나라로 가서 매년 에르기노스 왕에게 100마리의 황소를 바치는 부담을 해소시켰다. 황소 100마리는 에르기노스의 부친이 테베인에게 살해당한 대가였는데 이를 헤라클레스가 거절하고 싸움을 일으켜 에르기노스를 죽인 것이다. 이러한 공헌이 알려지자 헤라클레스는 온 나라의 우상이 되고 테베의 왕 크레온은 큰딸 메가라를 헤라클레스와, 작은딸을 동생인 이피클레스와 결혼시켰고 그 사이에서 많은 자식이 태어났다. 8명의 자녀를 둔 헤라클레스는 특히 동생의 맏아들 이올라오스를 각별히 귀여워하였다. 그 후 헤라클레스는 제우스 신의 지시로 미케네의 왕 에우류스테우스에게 종속되었다.

  에우류스테우스는 자신의 막강한 권세를 과시하고자 헤라클레스를 미케네로 오라고 지시하고 또 모든 일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였다. 헤라클레스보다 2개월 먼저 출생하여 선배 행세를 톡톡히 부리는 에우류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노역을 시켰다. 비위가 상한 헤라클레스가 이 요구를 거절하자 헤라 여신은 복종하지 않는 헤라클레스에게 벌을 내려 정신발작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 결과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아이들을 에우류스테우스의 아이들로 착각하여 모두 활로 쏘아 죽여 버렸다. 정신이 돌아온 후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참사에 극심한 충격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비통한 나머지 어두운 지하 골방에 들어가 모든 사람과의 접촉을 끊었다. 그 후 친구들의 권유에 따라 아폴론의 신탁을 받은 바 에우류스테우스의 지시에 따라 12년간 노역에 종사하는 것이 제우스의 명을 준수하는 것이고 어려운 노역을 마치면 신의 일원으로 소명을 받는다고 하였다. 명백한 회답을 받자 헤라클레스는 미케네로 가기로 하고 어떤 일을 시키더라도 인내로써 완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에우류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를 완전히 복종시켜 적에게 자기의 권위를 깨우치게 하기 위해 일찍이 없었던, 달성 가능성이 없는 극히 어려운 노역을 골라 강요하니 이것이 바로 헤라클레스의 12노역이다. 이제 난사의 수행에 들어가게 되자 헤라클레스는 신들의 호의를 받아 완전무장을 하였다. 아테나 여신은 철모와 장신구를, 헤르메스는 칼을, 포세이돈은 말을, 제우스는 방패를, 아폴론은 활과 화살을 제공하였다. 그 외 헤파이스토스에게서는 황금갑옷과 놋쇠로 만든 장화를 받고 또한 이름난 놋쇠 곤봉(일설에는 자신이 네메아의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도 받았다.

  첫 노역은 미케네 근방을 황폐시키는 네메아의 사자를 퇴치하는 일이었다. 활로 잡을 수 없자 굴까지 추격하여 곤봉으로 질식시킨 후 사자를 어깨에 메고 미케네로 돌아온 헤라클레스는 이 사자의 껍질을 벗겨 옷을 해 입었다. 에우류스테우스는 그 짐승과 헤라클레스의 용맹성에 너무 놀라 앞으로 사냥에서 돌아오면 성문에 들어오지 말고 성밖에 대기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래도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놋쇠통을 만들게 하여 헤라클레스가 돌아오면 그 속으로 피신하였다. 사자는 천공에 올라 사자자리가 된다. 두 번째 노역은 레르나 숲의 히드라라는 7두 괴물(일설에는 50두 혹은 100두 물뱀이라 함)을 퇴치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 거대한 괴물을 활로 쏘고 다가서서 곤봉으로 머리를 내쳤으나 성과는 없었다. 곤봉으로 머리를 부수면 곧 두 개의 머리가 다시 솟아나왔기 때문이다. 이올라오스가 불에 달군 쇠로 지져서 뿌리를 없애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던들 퇴치에 실패하였을 것이다. 괴물을 퇴치한 헤라클레스는 배를 가른 후 담낭에 화살을 꽂아 상처가 아물지 못하도록 하고 독이 묻은 화살은 무기로 사용하였다. 바로 그 유명한 히드라 독화살이다. 히드라에 가세하여 헤라클레스의 발을 문 거대한 게는 헤라 여신이 게자리로 올려놓았다. 세 번째 과제는 황금뿔과 놋쇠다리를 지녔으며 믿기 어려울 만큼 날쌔다는 케류니티아의 수사슴을 상처없이 잡아오는 일이었다. 소문난 이 짐승은 오이노이 지방에 자주 나타났는데 만 1년간의 추적 끝에 붙잡을 수 있었다. 덫으로 혹은 기진한 상태에서 또는 경상을 입혀 재빨리 움직일 수 없게 만든 후 생포하였다 한다. 그런데 헤라클레스가 승리감에 싸여 돌아오는 길에 아르테미스 여신이 사슴을 빼앗으며 심히 견책하였다. 그 사슴은 여신에게 바쳐진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는 에우류스테우스에게 사슴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설득한 후 다시 찾아서 주겠다고 여신을 달래었다.

  네 번째 과제는 에류만토스 인근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거대한 수퇘지를 생포하는 일이었다. 사냥길에 하찮은 일로 켄타우로스족과 싸움이 붙은 헤라클레스는 그들을 결국 멸망시키고 수퇘지는 깊은 눈 속에서 뒤쫓아 잡았다. 에우류스테우스는 이번에도 수퇘지를 보고 너무 놀라 수일 간 놋쇠통 속에 숨어 지냈다고 한다. 다섯 번째는 아우게아스 마구간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아우게아스는 엘리스의 왕으로 황소와 양를 엄청나게 많이 기르면서도 외양간을 청소한 적이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가축의 1/10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이 청소를 맡았는데 단시일 내에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축사 청소를 알페오스 강과 페네오스 강 줄기를 돌려 하루 만에 해치웠다. 그러나 아우게아스는 힘 하나 안들인 술책이라며 약속한 보상을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헤라클레스 편을 들며 약속을 지킬 것을 주장한 왕자 퓰레오스까지 나라에서 추방시켜 버렸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아우게아스와 싸워 그를 죽이고 퓰레오스에게 왕관을 씌워 주었다. 파우사니아스의 말에 따르면, 그 아들을 보아 아우게아스를 살려주고 왕자 퓰레오스는 이미 둘리키움에 정착하였으므로 왕관은 다른 왕자에게 넘겨 주었다고 한다. 이후 아우게아스는 장수하였고 죽은 후에 주민들이 신으로 존중하였다. 이 노력 후 알페오스 강과 그 지류 클레데오스 강 사이에 위치한 크로니온 산록에서는 헤라클레스의 승리를 기념하는 경기가 개최되었다(올림피아드의 시초!). 여섯 번째는 아르카디아 지방 스튬팔로스 호수 근방에서 극성을 부리는 육식성 새를 잡는 일이었다.

  일곱 번째는 크레타 섬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거대한 야생 황소를 펠로폰네소스로 잡아오는 일이었다. 이 또한 무사히 해냈으며 이래로 크레타의 수도는 헤라클리온으로도 불리고 있다. 여덟 번째는 디오메데스가 기르는, 사람고기를 먹는 암나귀를 잡아오는 일이었다. 헤라클레스는 디오메데스를 죽여 이 나귀에게 먹게 한 후 끌고 왔다. 일설에는 제우스 신에게 바쳐졌으며 알렉산더 대왕 때까지 종축으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아홉 번째 노역은 아마존족의 여왕 히폴류타의 허리띠를 가져오는 일이었다. 열 번째는 가우데스의 괴물 게류온을 퇴치하는 일이었는데 이 괴물인간은 3두 3신으로 사람고기를 쌓아 놓고 가축으로 사육하고 있었다. 괴물을 처치하고 가축을 아르고스로 끌고 왔다. 열한 번째는 요정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에서 황금사과를 따오는 일이었다. 트로이 전쟁의 불씨로 유명한 이 황금사과 나무는 머나먼 서쪽 끝 아틀라스 산록의 정원에 있었다. 원래 가이아 여신이 헤라와 제우스의 결혼선물로 준 것인데 정원에 심어 아틀라스의 딸들인 헤스페리데스가 가꾸고 헤라 여신이 보낸 무서운 용 라돈이 지키고 있어 아무도 얼씬거릴 수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에리다 노스 강 요정에게 물어 바다의 노인신 네레우스로부터 그 방도를 알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에 둔갑을 하며 피하는 네레우스를 꽉 붙들고 도움을 요청하니 프로메테우스에게 의논하라는 답을 들었다. 헤라클레스는 다시 머나먼 카우카소스 산 바위에 묶여 있는 프로메테우스를 찾아가 그의 간을 찍고 있는 독수리를 활로 쏘아 떨어뜨리고 풀어주니 자신의 형제인 아틀라스를 찾아가 부탁하라고 하였다. 창공을 양 어깨에 메고 있던 아틀라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사과를 따올테니 그 동안 대신해서 창공을 지고 있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사과를 따온 아틀라스가 자신이 직접 에우류스테우스에게 가져다 주겠노라고 하니, 난처해진 헤라클레스는 일단 응하면서 다만 오랜 기간 지고 있으려면 어깨받이를 덧대어야 하겠으니 잠시 하늘을 받치고 있으라고 사정하였다. 그 말대로 아틀라스가 다시 하늘을 짊어지자 헤라클레스는 사과를 쥐고 얼른 그 곳을 빠져나왔다. 에우리피데스에 의하면 헤라클레스가 직접 가서 라돈을 죽이고 사과를 따 왔다고 한다. 당시 아틀라스는 이미 페르세우스가 갖고 있던 메두사의 안광 때문에 돌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설이 앞뒤가 맞는다. 에우류스테우스는 신성한 황금사과를 다시 헤라클레스에 되돌려 주고 헤라클레스는 이를 아테나 여신에게 바쳤다.

  열두 번째 최종 노역은 가장 어렵고도 위험한 일로, 지하계의 호랑이 꼬리에 머리가 세 개 달린 개 케르베로스를 지상으로 끌고 오는 일이었다. 타이네로스산 동굴로 해서 지하세계로 내려간 헤라클레스는 마침 지하세계 왕 하데스의 명으로 명계에 잡혀 있던 테세우스와 피리투스를 구출하고 약속대로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케르베로스를 지상으로 끌고 왔다. 케르베로스는 후에 다시 명계에 반환하였다. 헤라클레스는 이상과 같은 노역들을 모두 완수해 냈을 뿐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여러 가지 위대하고 빛나는 일을 이룩하였다. 우선 그는 미케네 왕에게로 돌아가기 전에 콜키스로 출범하는 아르고 원정대에 동행하였으며, 신족과 거인족 간의 전쟁에서는 신족을 도와 제우스 신에게 승리를 가져오게 하였다.

  한편 오이칼리아 왕 에우류토스의 딸 이올레를 깊이 사랑하여 청혼하였다가 거절당하자 다시 실성, 두 번째 발작을 일으킨 헤라클레스는 그간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중계역을 하던 에우류토스의 외아들 이피토스를 죽이게 되었다. 살인한 죄를 속죄하고 실성에서 회복하지만 여러 신을 너무 괴롭혀 고뇌하던 끝에 델포이 신전에 가서 신탁을 받기로 하였다. 그런데 신전으로 가는 길에 여사제 퓨티아에게 냉대를 받자 화가 치밀어 아폴론 신전의 보물을 약탈하리라 앙심을 품고 신성한 삼각대를 들고 나왔다. 아폴론이 이에 대항하여 심한 싸움이 벌어지자 제우스 신을 할 수 없이 직접 개입하여 벼락을 쳐서 싸움을 중지시켰다. 그리고 이로 인해 헤라클레스는 노예로 팔려가 3년간 극도로 비참한 노예생활을 해야 이 난동을 보상할 수 있다는 신탁을 받았다. 헤라클레스가 복종하자 제우스 신의 명으로 헤르메스는 그를 리디아의 옴팔레 여왕에게 노예로 팔았다. 이 나라에서 헤라클레스는 모든 도둑 무리를 소탕하였고 그 위대한 공적에 감탄한 여왕은 그를 자유의 몸으로 복귀시킨 후 결혼을 하였다. 헤라클레스는 이 여왕과의 사이에서 아겔라오스 및 라몬을 두고 그 후예인 크로이소스가 리디아의 왕위를 계승하였다. 또한 여왕 옴팔레의 시녀를 사랑하여 알케오스를 두기도 하였다. 3년간의 기간을 다 채운 헤라클레스는 다시 펠로폰네소스로 돌아와 히포콘에게 빼앗긴 스파르타 튠다레오스 왕의 왕권을 복귀하는 데 힘썼다. 또한 쉼없이 경쟁자들과의 싸움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아켈루스는 헤라클레스의 가장 힘든 경쟁상대였는데 그는 뱀과 황소로 연신 변신하며 헤라클레스와 대적하였다. 그러나 결국 헤라클레스가 그의 뿔 하나를 꺾어 패배시키자 창피해서 물 속으로 후퇴하였다. 뿔은 요정이 집어 꽃과 과일을 담아 승리자의 손에 넘겨지고 풍요의 여신에게 바쳐졌다. 어떤 설에 따르면 이후 아켈루스는 강으로 변하고 이 강은 에피로스를 흘렀다고 한다. 핀도스 산에서 시작하는 이 강은 아이톨리아에서 아카르나니아 지류가 생기고 이오니아해로 흘러갔다.

  승리를 거머쥔 헤라클레스는 아이톨리아 왕 오이네우스의 아름답고 절찬을 받는 공주 데이아네이라와 결혼하였다. 결혼 후 일시 장인의 영토 칼류돈에서 머물렀으나 주먹을 휘둘러 본의 아니게 사람을 죽이는 바람에 이 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에 좋아하던 멧돼지 수렵도 포기하고 칼류돈을 떠나 트라키아의 케육스 왕궁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도중에 에우에노스 땅이 수해로 범람하여 개울을 건너는데 마침 켄타우로스족 네소스가 친절하게도 데이아네이라를 돕겠다 하여 맡겼다. 그러나 개울을 건넌 네소스는 강제로 데이아네이라를 납치해서 강탈하였고, 아내의 비명을 들은 헤라클레스는 급히 활을 당겨 독화살로 네소스를 쏘아 죽였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네소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앙심을 품고 데이아네이라에게 남편의 외도를 막는 비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였다. 즉 자신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와 급히 덮치느라고 흘린 체액을 받아 기름에 섞어 남편의 내의에 바르면 남편이 다른 상대와는 절대로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데이아네이라는 얼떨결에 갖고 다니던 기름병에 이 피와 체액을 재빨리 받다 놓았다. 화급하게 개울을 건너온 헤라클레스는 아내를 부축하여 길을 떠났다. 트라키아의 왕 케육스는 헤라클레스 부부를 정에 넘치게 환대하고 칼류돈에서 본의 아니게 저지른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헤라클레스는 전에 이올레 쪽에서 자기의 청혼을 거절한 데 대한 불쾌한 심정을 못내 씻어내지 못하고 결국은 이올레의 아비 에우류토스와 전쟁을 벌여 왕과 세 아들을 죽게 하였다. 이올레는 아비의 살인자 손에 넘어갔는데 헤라클레스가 전과 다름없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자 그를 따라 오이타 산으로 갔다. 헤라클레스는 그 곳에 제단을 짓고 제우스 신에게 엄숙히 제물을 바칠 차비를 차렸다. 그리고 우선 의식용 의복을 갖추기 위하여 키스를 데이아네이라에 보냈다. 데이아네이라는 남편이 이올레와 사랑에 빠졌음을 알게 되고 네소스의 말이 생각나 피와 체액이 섞인 기름을 속옷에 발라 의복과 함께 보냈다. 결국 이 의복으로 갈아입은 헤라클레스는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지고 레르나 숲의 히드라 독소가 뼛속으로 스며들었음을 알아차린다. 죽음의 옷을 벗으려 애쓰지만 이미 늦어 고통과 고뇌 속에서 네소스의 속임수를 경솔히 믿은 데이아네이라, 잔인한 에우류스테우스, 질투심과 증오심이 심한 헤라여신 등에게 격렬히 저주와 통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혼란이 계속되는 상태에서 그는 제우스의 가호를 탄원하며 활과 화살을 필록테테스(파이안 혹은 휼로스라고도 함)에게 주고 오이타 산 정상에 장작더미를 쌓게 하였다. 그리고 그 더미 위에 네메아의 사자털 가죽을 펴고 누운 후 곤봉에 머리를 기대었다. 필록테테스에게 나무더미에 불을 지르도록 지시한 헤라클레스는 아무 공포감이나 두려움 없이 불붙는 자신의 주위를 쳐다보았다. 천공에서 이를 내려다보던 제우스는 주위의 신들에게 헤라클레스는 지상에서 많은 괴물과 역적들을 퇴치한 공적이 있으니 불사의 신체를 천상으로 끌어오겠다고 주장하였다. 여러 신들은 제우스 신의 결정에 찬동하고, 불타는 장작더미는 곧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이윽고 인간부분이 다 타고 없어졌을 때 헤라클레스는 네 필이 끄는 수레에 실려 새벽녘 천상으로 운반되었다. 승천할 때 벼락과 굉음이 천지를 진동하였고, 모여 있던 많은 친구들은 헤라클레스의 뼈나 재도 보지 못하였다. 그 후 나무더미가 있던 곳에 제단을 쌓아 헤라클레스의 공적을 기념하였다. 악토르의 아들 메노이테오스는 황소, 야생 수퇘지, 산양을 제단에 공양하였고 오포스 사람들은 매년 의식을 갖추어 제를 올렸다. 곧 헤라클레스 숭배는 널리 퍼져나가고 그간 완강하게 그를 학대한 여신 헤라도 노여움과 원한을 잊고 자기 딸 헤베를 배우자로 주었다.

  헤라클레스를 숭배하는 지방과 노역을 완수한 고장에서는 그를 여러 별칭으로 부르고 있으며, 각지에 그의 신전을 세워 힘의 신으로 숭배하였다. 로마의 헤라클레스 신전에는 개와 날짐승은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가우데스의 헤라클레스 신전에는 여자와 돼지는 전혀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도한 페니키아인은 제단에 맛있는 메추리를 바치는데, 헤라클레스 신이 꿈을 관장하여 병자나 허약자를 신전에서 자게 하면 꿈에 영감을 받아 활력을 찾는다고 믿었다. 신전에는 백약나무를 바쳤다. 헤라클레스는 일반적으로 팔다리가 균형잡히고 힘이 있는 나신이나, 네메아 산에서 잡은 사자의 털가죽을 걸치고 손에 마디가 굵은 곤봉을 잡고 기대서 있는 자세로 표현된다. 또한 백양나무 잎으로 된 관을 쓰고 풍요의 뿔을 가지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 귀염둥이 에로스와 같이 서서 화살과 곤봉을 부러뜨리는 상으로도 표현되는데 이것은 영웅의 사랑에 빠진 심경을 암시하는 것이다. 무장한 옴팔레가 질책하고 헤라클레스는 비웃음을 받으며 여자시녀와 같이 실을 뽑고 있는 상도 있다.

  헤라클레스의 아들들은 각처에서 치른 수많은 사건만큼이나 많고 그 후손들은 헤라클레스가 죽은 후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역을 석권하였다. 특히 메가라와의 소생 데이콘과 테리마코스, 아스튜다미아의 크테시포스, 아우토노에의 팔레몬, 파르테노페의 에우에레스, 데이아네이라의 글류키소네테스와 규네오스 및 오디테스, 칼키오페의 테살로스, 에피카스테의 테스탈로스, 아스튜오케의 틀레폴레모스, 에키드나의 아가튜르소스, 겔로노스 및 스큐테스 등은 유명한 아들들이다. 전 생애를 통해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노력한 헤라클레스를 사람들이 진실된 미덕과 경건성의 모범을 보여준 영웅이자 불사신으로 추앙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3. 테스피오스
  테스피오스(Thespius)는 아티카의 왕 에렉테우스의 아들로 보이오티아 지방에 와서 테스피아이 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패기에 넘친 18세의 헤라클레스가 찾아왔을 때는 같이 키타이론의 사자 사냥에 나서서 이를 퇴치하였고, 사냥하는 동안 그를 왕실에 묵게 한 후 자신의 딸 50명이 헤라클레스의 아이를 갖기를 원하자 젊은이의 침실로 보내 기쁘게 지내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매일 바깥 일로 매우 피곤해서 밤마다 다른 공주와 자는 줄을 몰랐다고 한다. 일부 과장된 이야기에 따르면 이는 일곱 밤, 혹은 하루 저녁에 완수한 헤라클레스의 가장 힘든 열세번째 노역이라고 한다. 테스피오스의 모든 딸은 남아를 출산하였는데 다른 이야기에는 테스피아데스(테스피오스의 딸들) 중에서 한 딸만은 헤라클레스와 동침을 거부하였고, 이에 화가 난 헤라클레스가 그녀에게 평생 독신으로 지내라고 질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공주는 테스피아이 신전의 여사제가 되었다. 테스피아데스의 아들들은 테스피아다이라 부르며 사르디니아로 가서 아비의 조카인 이올라오스의 도움을 받아 정착하였는데 그 후 두 명은 테베로, 일곱 명은 테스피아이에 정주하였다. 테스피오스를 플레우론 왕 테스티오스(아게노르의 손자)와 혼동하는 작가도 있으며, 후자인 테스티오스의 아들들은 시문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이름난 칼류돈의 멧돼지 사냥에 참가하였다.

    4. 케이론
  케이론(Chiron)은 켄타우로스족 중 가장 고명한 예지와 분별력, 자비심을 갖춘 켄타우로스족의 왕으로 사람과 신족 모두에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스클레피오스와 이아손 및 아킬레스 등을 위탁받아 양육과 교육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후기 전설에는 크로노스가 배우자 레아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말로 변장하고 외출하여 오케아노스의 딸 필류라와 연애하여 얻은 아들이라 한다. 그러므로 제우스의 이복형제가 된다. 옛 전설에 신족이라는 이야기는 없지만 케이론은 불사신이었으며 머리가 총명하여 위험한 야생마를 길들이고 인간에게 말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등 큰 은혜를 베풀었다. 또한 음악, 무술, 수렵, 윤리 및 의술에 조예가 깊어 아폴론도 케이론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모든 켄타우로스족을 야만적이고 비협조적인 존재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일찍이 펠레우스를 다른 켄타우로스족들로부터 보호해 주고, 요정 테티스와의 결합을 조언해 주었다. 이는 요정이 인간에게 시집간 처음이자 마지막 예인데 여기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트로이 전쟁에서 활약한 최고의 영웅 아킬레스이다. 케이론은 결혼선물로 물푸레나무를 주었다. 신화에서 켄타우로스족은 헤라클레스의 영웅적 활약과 죽음에 깊이 관여하는데, 호메로스의 경우 헤라클레스와 켄타우로스족을 등장시키지만 확실한 이야기는 없다. 불사신인 케이론의 죽음은 헤라클레스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즉 세 번째 노역으로 배당된 에류만토스 산의 수퇘지 사냥에 나선 헤라클레스는 포이베에서 켄타우로스 폴로스의 호의로 그 집에 묵게 되었다. 헤라클레스가 포도주를 원하자 주인 폴로스는 자기 집 포도주가 없어 망설이다 부족 공동의 포도주를 일부 제공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포도주 향기를 맡은 다른 켄타우로스 사람이 부족 소유의 포도주를 주었다고 분노하여 헤라클레스와 폴로스를 공격하였던 것이다. 공격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켄타우로스인들 중 일부를 죽였고, 나머지 켄타우로스인들은 케이론의 거처로 달아났다. 헤라클레스는 다시 켄타우로스인의 우두머리인 엘라토스에게 화살을 날렸다. 이것이 에라토스의 팔을 관통하고, 마침 무슨 일인지 보러 나온 케이론이 이 화살에 무릎을 다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케이론은 극심한 아픔으로 거처로 들어갔고 헤라클레스는 급히 달려가 자신의 은인인 케이론을 도왔다. 그러나 헤라클레스가 쏜 화살은 치명적인 히드라의 독이 묻은 것이었으므로 케이론은 가지고 있는 모든 의술을 동원해도 치유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케이론은 영생하는 불사신의 몸이었기 때문에 평생 동안 상처의 고통에 신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이 무자비한 곤경을 제우스가 해결하는데, 케이론의 영생권을 프로메테우스에게 양도하고 평온한 죽음을 택하게 하였던 것이다.

   5. 휼로스
  휼로스(Hyllus)는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이라의 맏아들로, 헤라클레스가 죽은 다음 유언에 따라 이올레와 결혼하였다. 그는 아비와 마찬가지로 에우류스테우스의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부득이 펠로폰네소스에서 도피하여 트라키아왕 케육스를 찾아갔다. 그러나 케육스도 에우류스테우스를 두려워하며 안전을 보장하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할 수 없이 휼로스는 다시 아테네의 테세우스 혹은 그 아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고 거기에서 친절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자 에우류스테우스는 아테네에 선전포고를 하고, 이에 휼로스는 헤라클레스 일족을 규합하여 에우류스테우스에 대항, 공격을 하였다. 이 전투에서 에우류스테우스를 추격한 끝에 자신의 손으로 그를 죽이고 그 수급을 친할머니인 알크메네에게 보냈다. 세월이 지난 다음 북에서 내도한 동족 헤라클리다이(도리스인)와 함께 펠로폰네소스를 회복하고자 공격하였다. 그러나 휼로스는 아르카디아 왕 에케모스와의 한판 승부에서 죽음을 당하였다. 이 이야기는 새로 침입한 도리스인이 자신들의 신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헤라클레스에게 연줄을 대고자 헤라클레스의 큰아들 휼로스를 입양시키고 전설을 계승하여 펠로폰네소스의 승리를 정당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6. 안타이오스
  안타이오스(Antaeus)는 리비아(많은 작가들은 현재의 모로코라고 한다)의 거인으로 가이아와 포세이돈의 이들이다. 리비아를 지나는 행인은 누구든 그와 한판 레슬링 벌이고 지면 영낙없이 죽임을 당해야 했다. 그런데 그는 힘이 워낙 세서 한 번도 시합에서 진 적이 없었고 죽인 적수의 해골을 아비의 신전에 전시하여 자랑하였다. 마침 헤라클레스가 황금사과를 찾아 이 리비아를 지나던 중 그의 도전을 받고 승부를 가리는데, 이 자가 땅에 닿으면 번번히 새로운 힘을 대지에 보충받는 것을 알고 그 자를 공중으로 잡아올려 팔로 목을 졸라 죽였다. 헤라클레스는 안타이오스의 처 팅게와 동침하여 아들 소팍스를 낳았다. 소팍스는 마우레타니아를 지배하고 도시를 건설하여 어머의 영예를 위해 도시 이름을 팅기에(현 탕헤르)라 하였다. 소팍스의 아들 디오도로스는 아비의 왕국을 일충 확대하고 마우레타니아 왕조를 창건하였다.

 

문학자료 → 수필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2 - 류시화


  인디아 어록 2. 크게 포기하면 크게 얻는다.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내가 찍은 몇 장의 사진, 그 속에 박힌 인도인들의 얼굴, 눈을 감으면 언제라도 나는 그들 속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이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넌 이 여행에서 무엇을 배웠느냐고. 밤 깊은 시간, 나는 다시금 수첩에 적힌 '인디아 어록'을 펼친다. 그것들은 내 여행의 결정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생각하니 세상 전체가 곧 명상센터였다. 그리고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스승이었다.

    밧줄과 그릇과 쌀
  "불에 타버린 밧줄은 그 형태가 그대로 있다 해도 물건을 묶을 수 없고, 불에 한번 구운 그릇은 그 깨진 조각으로 다신 그릇을 만들 수 없다. 또 일단 불에 익힌 쌀은 땅에 심어도 다시 싹이 트지 않는다. 한번 사랑에 자신을 바친 사람은 이와 같아야 한다."
  벵갈 출신의 위대한 성자 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을 추종하는 청년이 들려준 말.

    쑤닐
  "당신이 이곳에서 여행 중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나한테 연락하시오. 쑤닐을 찾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오. 내가 책임지고 도와주겠소. 난 당신의 친구이니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청년 쑤닐과 나는 버스 안에서 만나 친구가 됐으며, 뭄바이 근처 뿌나 시에서 함께 내렸다. 쑤닐은 무슨 문제든지 곤란한 일이 생기면 꼭 자기를 찾으라고 다짐하고는 헤어졌다. 그런데 정작 쑤닐을 찾자 아무도 그런 사람을 알지 못했으며, 더구나 그 도시엔 쑤닐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1백 명은 넘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새 구두와 헌 구두
  남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북인도 고락푸르로 가는 기차 안에서 밤중에 도둑이 승객이 벗어놓은 새 구두를 훔쳐 신고 달아났다. 경찰에 신고하라는 내 말에 구두를 잃어버린 그 승객이 탄식조로 말했다.
  "도둑이 이미 새 신발을 신고 멀리멀리 도망쳤는데 헌 신발을 신은 경찰이 무슨 수로 잡겠소?"

    포기
  "크게 포기하면 크게 얻는다."
  캘커타 초링기 지역에서 만난 한 거지는 내가 몇 푼을 줄까 망설이자 그렇게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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