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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강화와 마리산 - 반도 한가운데 솟은 머리산

  아득히 먼 옛날 이 땅에 하늘이 처음 열릴적 이야기다. 만리 밖 북서쪽 대륙에서부터 따뜻한 남국을 찾는 발걸음이 있었다. 맏형인 "마리"를 필두로 하여 혈구, 고려, 진강, 능주라는 이름을 가진 다섯 형제의 이주 행렬이었다. 남동 방향으로 향하던 이들 오형제는 반도에 이르러 이 땅에 먼저 와서 자리를 잡은 삼형제, 곧 삼각산이 있음을 알고 따로 육지 못 미쳐 서해 바다상에 앉기로 했다. 앞서 오던 마리가 먼저 뭍을 향해 자리를 잡자 뒤를 이어 혈구와 고려가 차례로 앉는다. 다만 넷째인 진강이 앉으려다 보니 자신이 앉으면 막내인 능주의 자리가 없을것 같아 그대로 돌아서려고 한다. 그때 먼저 자리한 마리 형이 그의 뒷덜미를 잡아 당기는 통에 그만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만다. 진강산이 지금처럼 돌아 앉은 것은 그 떄문이란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 강화의 생성에 얽힌 지명 전설이다. 이육사의 시 "광야"의 서두처럼 그야말로 하늘이 처음 열리고 닭 우는 소리 들리던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다. 특히 강화의 마리산에는 국조 단군의 신화가 숨쉬는 참성단이 있기에 더 그러하다. 흔히 강화를 소개할 때 지명에 대한 설명에서 이르기를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의 세 강 어구에 위치하므로 "강화"요, 마리산 참성단에서 겨레의 영화를 빌고 성화의 불꽃을 밝혔으므로 "강화"가 되었다고 말한다. 멋진 의미 부여요, 그럴 듯한 지명 해석이지만 맞는 말은 아니다. 강화를 고구려 때 "가비고지"라 했다. 삼국시대 지명을 기록한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갑화고치라 차음 표기하고 차훈하고 있다. "가비고지"는 "가운데 곶"이라는 의미로 본뜻에 맞게 한역했다면 중갑이 되었을 것이다. 가비에서 말모음이 줄면 "갑"이 되고 여기에 장소를 뜻하는 접미사가 붙으면 "갑은데", 곧 가운데가 된다. 음력 팔월 보름을 한가위라 하는데, 여기서 "가위"도 본래 가비 또는 가배와 같은 말이다. 가비고지의 가비는 앞서 말한 대로 세 강의 한가운데로 비죽이 나온 곳이기에 붙은 이름이다. 여기에 좀 더 차원높은 의미를 덧붙인다면 이곳 강화가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 전체에서 한 가운데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가운데 곶 또는 가운데 입구를 뜻하는 가비고지는 신라 때의 해구를 거쳐 고려 태조때 지금의 강화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가비가 가람의 뜻인 강으로 바뀐것은 앞서 말한 세 강에 이끌린 탓으로 보인다. 가비고지의 차훈 표기인 혈구는 지금의 혈구산으로  남아 있고, 그 본래 이름은 탱자나무로 유명한 현 강화읍의 갑곶리에서 유지되고 있다.(현지민은 갑곶을 "가꾸지"라 부름) 가비고지(갑곶)의 중심은 역시 마리산이다. 이 땅에 멘 처음 들어온 맏형격인 이 산은 단군 성조의 숨결이 밴 성스러운 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더구나  정상에는 당신께서 하늘에 계신 삼신상제와 직접 교신하던 참성단이 건재한다. 참성을 혹은 삼성이라 기록한 문헌이 있는 걸 보면 이것이 바로 하늘과 교통한 증거가 아닐까 싶다.

  마리산은 앞서 말한 전설처럼 멀리 만리  밖에서 이동해 왔다고 하여 만리산이라 부르기도 하나 최근에는 불경 한역표기로 인해 "마니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니는 용왕의 뇌속에서 나온 구슬을 지칭하는 말로서 누구든 이 보주를 얻으면 무구 또는 여의라는 한역 그대로 만사가 형통하는 것으로 믿는다. "고려사지리지"나 "세종실록지리지"에서도 이 산명을 마니산으로 차음 표기하고  있다. 다만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그 이후의 문헌에서는 마니의 니를 니로 바꾸어 적고 있는데, 이는 불교의 영향이라 생각된다. 마리산과 이웃한 길상산의 길상도 역시 불교용어로서 길조를 뜻하는 범어의 음역이다. 마리는 머리와 같은 어사로서 마리와 머리의 관계는 모음교체에 불과하다. 산마루라고 할 때의 마루나 짐승의 머릿수를 세는 마리도 같은 말이며, 옛 신라의 왕칭어 마립간의 마리나 고구려의 관직명 막리지의 마리도 같은 말이다. 따라서 삼랑성을 쌓았다는 단군의 세 아드님 부우, 부수, 부여등의 이름도 이와 같은 계통의 이름일 것으로 추정된다.

  마리산은 그다지 크고 높은 산은 아니다. 높이가 고작 467m에 불과한데, 이는 우리가 잘 아는 백운산 백운대(836m)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산은 크기나 높이로 따질 일이 아니다. 정상에 있는 참성단과 함께 우리 민족이 받들어  모셔야 할 성산이니 우리가 흔히 종산 또는 두악이라 칭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우리나라 지도를 펴놓고 강화 마리산의 위치를 찾아보면, 북쪽 끝의 백두산과 남쪽 끝의 한라산을 일직선으로 연결할 때 마리산은 꼭 중앙에 위치한다.  마리산은 반도의 어떤 산맥과도 이어지지 않은 독립적인 산이다. 또한 앞서 소개한 마리산 형제의  이동은 태고적 우리 민족의 남행 이동과도 흡사한 데가 있어 신비감을 더해 준다. 중국의 자금성이 그 자체로서 고궁 박물관이듯 강화섬도 섬 전체가 우리의 역사 박물관이라 칭할 수 있다. 강화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마니산사고가 있었다지만 지금은 없어지고 대신 섬 전체가 우리의 역사와 신화, 전설을 보관하는 무형의 사고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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