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
고려조 말엽에 문익점이란 분이 있었다.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벌을 받아 멀리 교지까지 귀양을 가 있게 되었다. 그런데 밭에 허옇게 핀 이상한 꽃을 여인들이 줄로 서서 수확하는 것이 아닌가? 물으니까 그것으로 실을 짜아 옷을 짜 입는다는 것이다. 씨를 받았더니
"이것은 국금이라 외국 사람에게 주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도로 뺏는다.
그때 살짝 씨앗 세 개를 손새에 감춰서 갖기는 하였는데 가져올 도리가 없다 글씨 쓰던 붓대 속에 넣어 귀양이 풀린 뒤 무사히 가지고 돌아오긴 했으나 처음 일이라 작물의 성질도 재배법도 모른다. 그해 봄에 그 세 개의 씨앗을 열흘 간격으로 하나씩 심었더니 둘은 죽고 곡우 때 심은 하나만이 겨우 싹을 내어 컸다. 이것이 개화되도록까지의 우리 나라 목화의 시조가 된 것이다.
목화를 수확하게 되자 씨 뽑는 기계를 생각해내고 여러 모로 민생에 도움을 주었는데 그 손자 문래라는 분은 처음으로 실 짜는 기계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명칭이 없어 그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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