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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모어에 대한 재인식 

    우리의 미의식 2 - "안 미인"과 "못 미인"

  그룹 미팅에 다녀온 사람에게 상대가 어땠느냐고 물으면 대략 "뭐 그저 그래,  별로야, 괜찮아, 좋아, 아주 좋아, 후져, 정말 후져"등과 같은 답변을 듣는다. 이 답변을 대별하여 어떤 이가 말하기를, 상대가 아주 마음에 드는 경우는 "킹카"가 되고 별로인 경우는 "후지카", 정말 기대 밖의 경우는 "으악카"가 된다던가. 여성에게도 상대 남자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는 있겠지만 남성의 예처럼 그렇게  철저하지는 않다. 앞서 언급한 아름답다, 예쁘다,  곱다, 세첩다 등의 미적용어가 여성의  전용물인 점을 보더라도 아름다움은 역시 여성의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 곧 아름답지 못한, 못생긴 여인은 고유어로 어떻게 표현되는가? 그런데 특이하게도 미에 대한 긍정적인 어사는 앞서 든 예처럼 쉽게 발견할 수 있으나 부정적인 어사는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모두 미인들은 아닐 텐데, 어쩌면 못생긴 여성에 대해서는 이처럼 관대한지 모르겠다. 흔히 쓰는 말로 "추녀"라는 한자말이 고작이고 고유어로는 그저 못난 여자, 못생긴 여자와 같이 부정법이 사용될 뿐이며, 특별한 독립어사는 발견되지 않는다. 추녀도 자주 쓰이는 말은 아니다. 간혹 "가을에 온 여인"이라 하며 능청을 떠는 걸 보면 아무래도 "더러울 추"자만은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한자 추는 귀신이  술에 취한 모습이니 얼마나 흉할까.

  우리 조상들은 외양이 못생긴 것을 가지고 그리 문제를 삼지 않았다. "못생긴 사람, 못난 사람"이라면 얼굴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의 마음가짐이나 행실이 잘못되었음을 질책할 때 쓰는 말이다. 특히 여성의 외양을 입에 올릴 때는 잘생긴 경우에만 쓰는 말이다. 꽃 같은 자태의 붉은 입술, 또는 달 아래 선 미인(월하미인)이니 하여 아름다움을 기리는 데는 침이 마르지만 못생긴 여성에 대해서는 먼 산을 바라보며 그만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간혹 고전에서 놀부마누라나 "심청전"의 뺑덕어멈 같은 추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와 같은 지독한 괴녀와는 성질을 달리한다. 못생긴 여자를 지칭하는 은어들, 이를테면 호박, 박호순, 옥떨메, 주메순, 무허가 건축, 자유민주주의, 백미터 미인 따위는 그저 재미로 지어낸 은어일 뿐으로 이는 고유어의 빈약함을 메우기 위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말 부정법에는 "아니(안)"와 "못"이라는 두 가지 부사가 있다. 이 둘은 능력과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미혼녀가 말하는 "시집 안 갔다"와 "시집 못 갔다"의 차이가 바로 그것인데, 이 경우에도 우리는 능력의 유무를 나타내는 "못"에 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대게의 여성들이 자존심을 위해 의지의 표시인 "안 갔다" 쪽을 택하지만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못 갔다" 쪽에 훨씬 더 호감과 동정을 나타낸다. 그만큼 솔직하고 겸손하다는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가고 싶어도 못 갔으나 언제든 마땅한 임자를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못"이라는 부정부사는 "모자라다"에서 나온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가장 완전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이상형을 상정하고 있다. 현실에서 완벽한 것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이상형에 가까운 것을 볼 때 "근사하다" 고 말한다. "못"은  바로 그 이상형에 미치지 못한, 다소 모자라는 상태를 가리킨다.

  우리말 욕설에 "못된 놈"이니 "덜된 놈"이니 하는 말도 바로 이를 두고 이름이다. 인간을 주어진 존재(being)가 아니라 "되어지는 존재(becoming)"로 파악하는 게 우리의 인간관인거 같다. 영어의 "갓뎀(Goddamn)"에서는 신이 저주했기에 그 사람은 이미 끝난 존재 곧 다 된 놈이다. 우리는 못되거나 덜된 사람은 장차 이상적인 존재, 곧 됨됨이(품격)을 갖춘 좀더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욕설 가운데 "나쁜놈", "더러운 놈"의 경우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 될 수 있다. "나쁘다"는 "낮다"에 접미사 "-브다"가 연결된 말로 일정한 수준에 미치지 못함을 나타낸다. 나쁘다의 상대어인 "좋다"는 본대 "됴하다"가 줄어 "둏다"가 되고 다시 구개음화하여 "좋다"가  되었다. 이는 어떤 기준에서 높은 수준에 위치해 있다는 뜻으로 "더하다"라고 할 때의 "더"와 같은 계통의 말이다. 따라서 "더럽다"고 하면 "더함이 없다"는 뜻이며, 이는 곧 자신이 소망하는 선에 미치치 못함을 나타낸다.

  앞서 인간은 되어지는 존재라 했는데, "되다"라는 말의 "되(고어로는  )" 도 둏다의 "됴"와 더하다의 "더"와 뿌리를 같이 한다. 뿐만 아니라 위인답다, 인간답다는 예에서 보이는 접미어 "-답다" 역시 여기서 파생된 말이다. 인간답다면 인간이 될 수 있는 어떤 이상적 기준선애, 위인답다면 위인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수준에 미쳤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본래부터 완전한 인간은 없었고, 본래부터 완전한 미인도 없었다. 인간은 부단한 수양에 의해 인간답게 되어지고, 인간의 아름다움 역시 부단한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아름답게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못 미인"이란 말은 있을 수 있어도 "안 미인"이란 말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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