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더러, 너더러, 저더러
날더러, 너더러, 저더러
'세기의 미인'으로 불렸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 번째 남편이 죽은 뒤 또다시 스캔들이 나자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날더러 어쩌라고? 혼자 살란 말이냐?"며 일축하고 다섯 번이나 결혼식을 더 올려 문화적 충격을 던져 줬다. 이젠 일화가 돼 버린 그의 말처럼 평소 사람들이 "날더러 그 말을 믿으란 거냐" "날더러 누구냐고 묻더군" 등으로 쓰는 것을 자주 본다.
그러나 '날더러'는 바른 표기가 아니다. '날더러'는 '나+ㄹ+더러'로 구성돼 있다. '나'는 일인칭 대명사, '-ㄹ'은 받침 없는 체언에 붙어 '-를'보다 구어적으로 쓰이는 목적격 조사, '-더러'는 한테.보고와 함께 입말에서 '-에게' 대신 많이 사용하는 부사격 조사다. 격조사는 체언 뒤에 붙어 그 체언이 문장 안에서 일정한 자격을 갖도록 해 준다. 뜻을 더해 주는 보조사와 달리 다른 격조사와 결합할 수 없고 하나의 체언에 하나의 격조사만 쓰이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소유의 의미를 나타내는 관형격 조사 '-의'는 '학교에서의 행동'처럼 다른 격조사와 어울릴 수 있다.
따라서 '나' 뒤엔 두 개의 격조사가 나란히 올 수 없다. 의미상으로도 뜻이 통하지 않는다. 위 예문은 어떤 행동이 미치는 대상을 나타내는 조사 '더러'만을 써서 '나더러'로 바꿔줘야 바른 문장이 된다. '너'나 '저' 뒤에 올 때도 너더러ㆍ저더러로 써야 한다. "날 보러 왔니?" "널 정말 좋아해" "절 부르셨어요?" 등은 각각 '나를, 너를, 저를'이 준 말로 '나더러'와는 쓰임새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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