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죄
법률에 명시된 죄목에 ‘괘씸죄’라는 게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죄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죄가 없을 것이다.
‘괘씸죄’라는 말은 매우 재미있는 말이다. 이치와 논리와 인과관계를 꼼꼼하게 따지는 법률 요건을 가볍게 뛰어넘어 버리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죄’라는 말에서 법 냄새가 약간 느껴지기는 하지만 법과는 거리가 먼 말이다. 어떻게든 혼내 주고 싶은데, 마땅히 적용할 죄목이 없는 이에게 적용하기 딱 좋은 말이다.
이 말은 ‘괘씸하다’라는 형용사 어근 ‘괘씸’에 ‘죄’가 붙어서 된 말이다. 그러니까 괘씸하게 생각되는 사람에게 지우는 죄다. 사람의 감정상 나쁜 사람은 용서할 수 있어도 괘씸한 사람은 용서하기 어렵다. ‘나쁘다’는 사회적 인식에 따른 객관적 서술이지만, ‘괘씸하다’는 개인의 감정에 따른 주관적 서술이다.
나쁜 사람은 사회적 공분을 사는 존재이지만, 괘씸한 사람은 어느 특정인의 속을 터지게 하는 존재다. ‘인간으로서 그럴 수가 있느냐’는 문제가 아니라 ‘네가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 하는 문제다. 이런 일은 보통 사람 사이에서 신의를 저버릴 때 일어난다.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야 예사롭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는 울화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어진다. 그렇다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일도 아니다.
이런 울화를 풀고자 응징을 하느냐 마느냐는 것은 나중 일로 밀쳐 두더라도, 일단 ‘괘씸죄’라는 말로 상대의 배신 행위를 곱씹어 두고 싶을 것이다.
우재욱/우리말 순화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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