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에 넣어?
우리는 쓸모없는 말을 하면서 아픔을 덤으로 겪는다. “감안하다, 고려하다, 참작하다, 계산하다 …”들은 쓰임이 비슷하다. 말만 많을 뿐 생산성이 없다. ‘감안’(勘案)은 왜식투이니 예부터 쓰던 ‘고려·참작’으로 바꾸라고 한다. 때로는 바꿔 쓴들 뭐가 나아지랴 싶다. 물론 그런 노력에서 좀은 분별심이 생기고 말 갈피가 잡힐 터이다.
그런데, 한걸음 나아가 헤아리면 앞의 말들은 죄다 버려도 될 말이다. ‘헤아리다’면 뜻·쓰임에서 이들을 아우르는 데 모자람이 없고, 쉽고 정확한데다 말맛도 살기 때문이다. ‘살피다·셈하다·생각하다·따지다’ 들도 이에 못지 않다.
“계산에 넣다, 계산에 넣지 않다”란 말을 흔히 쓴다. 영어 익은말(take account of/ take … into account/ taking into … account/ leave out of account /leave out of considertion)을 뒤친 표현들이다.
한자말 ‘산입하다’(算入-)를 ‘셈쳐 넣다, 셈해 넣다, 셈에 넣다’로 다듬어 쓰는데, 실제로는 ‘계산에 넣다’로 많이 쓴다. 이는 한자말과 영어에 두루 가닿는 연원이 복잡한 번역투인 셈이다. 이미 버릇돼 고치기 어려운 지경이지만 ‘계산에 넣다’ 역시 “아우르다, 헤아리다’ 정도로 끝내서 아쉬울 게 없는 말이다.
“고려에 넣다, 고려에 넣지 않다”란 말도 흔히 쓰는데, ‘계산에 넣다’를 다시 뒤친 표현으로서, 무척 부자연스럽다. 이는 그냥 “고려하다, 고려하지 않다”가 낫고, 이 역시 ‘헤아리다·생각하다’로 바꿔 써야 간명하고 쉬워진다.
△환경적, 현실적 요소들을 고려에 넣지 않고 오로지 ‘돈’만을 가지고 따질 경우 → 환경이나 현실적 요소들을 헤아리지 않고 ‘돈’으로만 따진다면.
△해외 용병을 수입하는 경우, 반드시 고려에 넣어야만 하는 요소가 있다 → 외국선수를 데려올 때 반드시 짚어봐야 할 점이 있다.
△이같은 상관 관계는 비만과 당뇨를 고려에 넣어도 여전히 유의미한 것으로 분석됐다 → 이런 상관 관계는 비만과 당뇨를 고려해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 것을 포함해 모든 것을 고려에 넣어 입장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 모든 것을 헤아려서 태도를 정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1994년 판결은 “사실의 동일성이 갖는 법률적 기능을 염두에 두고, 피고인의 행위와 그 사회적인 사실관계를 기본으로 하되, 그 규범적 요소도 고려에 넣어 판단하여야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 1994년 판결은 “사실의 동일성이 갖는 법률적 기능을 헤아리고, 피고인의 행위와 ~, 그 규범적 요소도 아울러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불법복제와 다운로드가 판치는 현실을 고려에 넣는다면, 현재 극장과 영화가 상업적으로 대단히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 불법복제와 내려받기가 판치는 현실을 다시 헤아린다면, ~.
△각 학파가 불교의 화엄·선 사상 등과 같은 비유교적인 사상 형태로부터 받은 영향까지 고려에 넣는다면, 차이점은 훨씬 더 커지기 마련이다 → ~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
△차 타는 시간을 계산에 넣고 여정을 짜다 → 차 타는 시간도 헤아려 여정을 짜다.
△혹 유전되었을 수도 있는 성향까지도 고려에 넣어 살펴보아야 한다 → 혹 유전되었을 수도 있는 성향도 아울러 살펴봐야 한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 목록 | 바람의종 | 2006.09.16 | 53494 |
공지 |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 바람의종 | 2007.02.18 | 200105 |
공지 |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 風磬 | 2006.09.09 | 215082 |
2996 | 봄날은 온다 | 윤안젤로 | 2013.03.27 | 19889 |
2995 | 잔떨림 | 윤안젤로 | 2013.03.18 | 20767 |
2994 | 조개 | 바람의종 | 2013.02.05 | 19852 |
2993 | 삯 | 바람의종 | 2013.01.25 | 17902 |
2992 | 어떠태? | 바람의종 | 2013.01.21 | 20124 |
2991 | 등용문 | 바람의종 | 2013.01.15 | 18047 |
2990 | 두루 흐린 온누리 | 바람의종 | 2013.01.04 | 21054 |
2989 | 감질맛, 감칠맛 | 바람의종 | 2012.12.24 | 30554 |
2988 | 피랍되다 | 바람의종 | 2012.12.21 | 24170 |
2987 | 통음 | 바람의종 | 2012.12.21 | 21333 |
2986 | 상봉, 조우, 해후 | 바람의종 | 2012.12.17 | 22044 |
2985 | 폭탄주! 말지 말자. | 바람의종 | 2012.12.17 | 19194 |
2984 | 외래어 합성어 적기 1 | 바람의종 | 2012.12.12 | 20466 |
2983 | 온몸이 노근하고 찌뿌둥하다 | 바람의종 | 2012.12.12 | 24254 |
2982 | 미소를 / 활기를 / 운을 띄우다 | 바람의종 | 2012.12.12 | 38137 |
2981 | 자잘못을 가리다 | 바람의종 | 2012.12.11 | 25962 |
2980 | 수뢰 | 바람의종 | 2012.12.11 | 17987 |
2979 | 금도(襟度) | 바람의종 | 2012.12.10 | 17761 |
2978 | 박물관은 살아있다 2 | 바람의종 | 2012.12.10 | 23871 |
2977 | 달디달다, 다디달다 | 바람의종 | 2012.12.05 | 21425 |
2976 | 썰매를 지치다 | 바람의종 | 2012.12.05 | 21618 |
2975 | 자처하다, 자청하다 | 바람의종 | 2012.12.04 | 26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