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7.08.31 15:32

배제하다?/최인호

조회 수 8842 추천 수 1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배제하다?/최인호





젖혀두고, 빼고, 내치고, 물리치는 뜻으로 ‘배제하다, 배척하다, 제외하다’ 따위를 쓴다. 힘이 센 쪽, 부려쓸 수단이 많은 쪽, 많이 알고 있는 쪽에서 주로 쓰는, 움직임이 구체적인 말이다.

“부시는 핵무기 사용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조각 과정에서 친일파를 철저히 배제하지는 않았다”처럼 말이다. 여기서 겁을 먹게 하는 것은 ‘핵무기’에도 약간은 있겠지만 실제로는 ‘배제하지 않는다’는 서술어 곧 그것이 안고 있는 행동성 때문이다.


보통 ‘배제하다’를 쓸 때 ‘가능성’을 앞세워 표현을 누그러뜨릴 때가 많다. 누그러뜨리기는 하나 역시, 위협·경고 효과를 노리면서 말하는 방식인 것은 마찬가지다. 때로는 확신이나 단정을 하고서 그것이 빗나갈 수도 있으므로 그 책임을 비켜가고자 이런 말을 쓰기도 한다. 이때 역시 ‘가능성’을 끌어다 쓰는데, “~ 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 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지는 않는다”가 그런 말투다. 이는 남의 말을 따올 때나 말하는 이 스스로 분석할 때 두루 자주 나온다.


이 역시 영어(rule out the possibility, can’t completely rule out possibility, can’t exclude the possibility 따위)에서 온 번역문투다. 영어공부를 하지 않은 이가 없는 까닭에 버릇된 말투인데, 이젠 유행도 지난 성싶으니 그만 쓰거나 달리 쓰는 게 좋겠다. 그냥 “가능성도 있다, ~ 할 수 있다, 여지도 있다”로 쓰거나 심에 차지 않으면 “~ 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 할 가능성을 아주 젖혀놓은 것은 아니다” 정도로는 손질을 해서 쓸 일이다.


△지금까지 핵사용 가능성을 배제해 온 터여서 → 지금까지 핵사용은 고려하지 않은 터여서
△논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 논의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국제정치의 속성상 미국과 중국의 갈등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 ~ 미국과 중국이 서로 부딪칠 수도 있다
△은밀한 뒷거래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 뒷거래를 했을 수도 있다
△박찬호와 우디 윌리엄스 가운데 한 명은 불펜으로 밀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 불펜으로 밀릴 수도 있다
△처녀생식 및 돌연변이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 처녀생식이나 돌연변이였을 수도 있다
△미국의 북폭은 남한 정부 등 국제사회와 사전 협의 없이 기습적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 협의 없이 기습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번역어·차용어도 그렇지만 번역투 문장도 우리말 표현에 두드러지게 어긋나지 않고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면 문제될 건 없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42310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188679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203968
    read more
  4. 합하

    Date2007.09.20 By바람의종 Views8214
    Read More
  5. 한약 한 제

    Date2007.09.19 By바람의종 Views10898
    Read More
  6. 한성

    Date2007.09.18 By바람의종 Views11016
    Read More
  7. 한량

    Date2007.09.12 By바람의종 Views8301
    Read More
  8. 푼수

    Date2007.09.10 By바람의종 Views11383
    Read More
  9. 폐하

    Date2007.09.09 By바람의종 Views9830
    Read More
  10. 팔자

    Date2007.09.08 By바람의종 Views8786
    Read More
  11. 파투

    Date2007.09.04 By바람의종 Views9643
    Read More
  12. 파천황

    Date2007.09.04 By바람의종 Views9635
    Read More
  13. 파국

    Date2007.09.01 By바람의종 Views8799
    Read More
  14. 파경

    Date2007.09.01 By바람의종 Views10879
    Read More
  15. 속과 안은 다르다 / 김수업

    Date2007.08.31 By바람의종 Views8317
    Read More
  16. 아사리판 / 한용운

    Date2007.08.31 By바람의종 Views11304
    Read More
  17. 배제하다?/최인호

    Date2007.08.31 By바람의종 Views8842
    Read More
  18. 고맙습니다 / 김지석

    Date2007.05.22 By바람의종 Views12458
    Read More
  19. 가능·가성능/최인호

    Date2007.04.28 By바람의종 Views8441
    Read More
  20. 필요한 사람?/최인호

    Date2007.04.28 By바람의종 Views8146
    Read More
  21. 위하여/최인호

    Date2007.04.28 By바람의종 Views6961
    Read More
  22. 관해/대하여/최인호

    Date2007.04.25 By바람의종 Views5988
    Read More
  23. ‘경우’ 덜쓰기/최인호

    Date2007.04.25 By바람의종 Views6865
    Read More
  24. 불구하고?/최인호

    Date2007.04.25 By바람의종 Views10457
    Read More
  25. 퇴짜

    Date2007.08.31 By바람의종 Views10079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