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7.04.28 15:37

필요한 사람?/최인호

조회 수 8144 추천 수 2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필요한 사람?/최인호 
  
 
사람은 귀해져 가는데 사람값은 쉬 올라가지 않는다. 사람을 대우하는 사람의 생각이 말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쓸모 없는 사람, 아무짝에도 못 쓸 사람, 빌어먹을 놈, 집안의 기둥감, 나라의 동량 ….’ 욕말도 있고, 빈대·벼룩 따위 사람을 사물로 비유한 말도 있긴 하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을 두고 사물 다루듯 하는 말은 쓰지 않는다.


몇 해 전 ‘교육인적자원부’란 정부 부처 이름을 새로 지었을 때 거부감을 느낀 이들이 많았다. 사람을 두고 ‘자원’이라니 ‘산업자원부’처럼 동식물이나 무슨 광물로 여기는 처사 아니냐며 한 나라의 교육을 주관하는 부처로서 철학·생각이 둘러빠졌음을 참아 볼 수 없었던 까닭이다. 이로써 정떨어진 이들이 적잖다.



‘필요’는 ‘물질·물건’을 두고 쓸 말이다. 예컨대 도움을 주려는 사람에게 화를 낼 때도 “자네 도움은 필요 없네!” “동정 따윈 필요 없어!” 정도였고, ‘자넨 필요 없네!’란 말에도 ‘동정·도움’이 생략된 말로 여긴다.



그런데, 요즘은 그 경계가 무너져 무척 노골적으로 넘나며 쓰인다.


“자넨 나한테 꼭 필요한 사람이야!” “난 네가 필요해” “나라나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 “우리 회사에 전혀 불필요한 사람 ….”


‘쓸모 있는 사람’ ‘소용이 닿는 사람’이 말뜻으로야 ‘필요한 사람’이 되겠지만 정작 사람을 두고 ‘필요’란 말을 쓰기를 삼갔던 연유는 무엇인가? 인격을 그만큼 높이 치는 바탕이 깔렸던 까닭이다.



‘필요하다’와 비슷한 말로 ‘요하다’가 있다. 이는 형용사 아닌 타동사로 쓰이는데, 보통 사전들은 이를 ‘필요로 하다’로 푼다. 외자 한자말 ‘요’(要)에 뒷가지 ‘-하다’가 합친 말로서 드물지만 요즘도 쓰긴 한다. 예컨대 “수리를 요한다, 훈련을 요한다, 보안·점검을 요한다 …” 들이 그것인데, 한문·일본문투 말이다. 이는 “수리가 필요하다, 훈련이 필요하다, 보안·점검이 필요하다 …”로 바꿔 써야 자연스럽다. 영어에서(need, be in need of, stand in need of, necessitate …)도 이런 쓰임이 보이는데, 이 역시 ‘~을 필요로 하다’로 억지로 뒤치는 경향이 있다.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이 집은 수리를 필요로 한다, 이 일에 필요로 하는 물건”이라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 집은 수리를 해야겠다, 이 일에서 필요한 물건” 정도로 자릿수를 줄여 말하는 게 자연스럽다.


어른아이 구분 없이 ‘유’(you)로 쓸 정도로 대우법이 발달되지 않은 서양말에서도 사람·사물과 말은 분별해 쓰는 줄 안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1817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8211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3408
3300 부딪치다와 부딪히다 바람의종 2010.12.19 17150
3299 가오 잡다, 후카시 잡다 바람의종 2009.11.24 17053
3298 모시는 글 바람의종 2008.04.27 17050
3297 웅숭깊다 바람의종 2007.03.03 17040
3296 붙이다, 부치다 바람의종 2012.09.06 17010
3295 좀체로, 의례적 바람의종 2008.12.15 16995
3294 성숙해지다, 주춤해지다, 팽배해지다, 만연해지다 바람의종 2010.11.26 16930
3293 으뜸, 버금, 맞먹다, 필적하다 바람의종 2008.09.19 16901
3292 마다 않고, 아랑곳 않고 바람의종 2012.10.05 16869
3291 망둥어, 망둑어 / 간재미, 간자미 바람의종 2010.05.30 16860
3290 놀라다 / 놀래다 바람의종 2010.07.26 16829
3289 받히다, 받치다, 밭치다 바람의종 2012.07.04 16726
3288 나리 風磬 2006.10.10 16668
3287 알맞는, 알맞은 / 걸맞는, 걸맞은 바람의종 2012.09.11 16647
3286 이골이 나다 바람의종 2008.01.27 16641
3285 옷걸이 / 옷거리 / 옷맵시가 좋다 바람의종 2010.11.10 16633
3284 재다, 메우다, 메기다 바람의종 2010.04.25 16590
3283 ~하는 듯 하다 / ~하는 듯하다 / ~하는듯하다 바람의종 2010.10.14 16575
3282 못지않다, 못지 않다 / 마지않다, 마지 않다 바람의종 2009.03.25 16573
3281 마가 끼다 바람의종 2008.01.05 16549
3280 시건 바람의종 2012.01.19 16542
3279 가랭이 / 가랑이 바람의종 2010.08.05 1650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