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시보리
“그러니까 데나우시 안 생기게 시야게 잘해서 오사마리 합시다.” 방송 제작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 바닥 전문가가 아니면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이런 말을 풀어내기 위해 방송 관계자들이 의기투합한 적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쓰고 있는 일본어 잔재를 다듬기 위해서였다. 국어학을 전공한 박사와 아나운서, 방송 세트를 만드는 현장 실무자가 머리를 맞대고 매주 하나씩 다듬어 나가자고 발 벗고 나섰던 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건설 현장, 영화 촬영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움직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 영화 <피에타> 속의 ‘시보리’를 곱씹으며 공구·공작 업계와 의상·봉제 업계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여태 쓰이고 있는 일본 용어 찌꺼기가 다양함을 짚어보았다. ‘빠우’, ‘로구로’, ‘스카시’, ‘헤라시보리’ 따위가 빠질 수 없는 보기이다. ‘헤라시보리’를 인터넷 누리집에 소개한 한 업체의 설명은 이렇다. “‘헤라(へら, 구둣주걱)’처럼 길쭉한 막대기를 지렛대처럼 사용해 선반으로 둥근 기물을 가공하는 작업. 트로피, 종, 밥공기, 화분 등을 만드는 일로 100%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그 분야에서는 전문용어처럼 쓰지만 일반인에게는 낯선 표현이기에 따로 풀어주었을 것이다.
금속이나 돌의 표면을 매끄럽게 마무리하는 기계나 작업인 ‘빠우’는 ‘광내기’, 목기나 가구 다리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기구인 ‘로구로’는 ‘돌림판’, 실톱으로 무늬를 내는 작업을 뜻하는 ‘스카시’는 ‘실톱질’로 이미 다듬은 표현이다.(국어순화용어자료집, 1997) 현장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일본어투 용어를 모두 걷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비계(←아시바), 줄(←야스리), 놋쇠(←신츄)처럼 번듯한 우리말이 있으면 마땅히 제자리 찾아 써야 한다. 글머리에 내보인 말은 그래서 이렇게 다듬어야 한다. “그러니까 뜯어고치는 일 안 생기게 마무리 잘해서 작업 끝냅시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 목록 | 바람의종 | 2006.09.16 | 40718 |
공지 |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 바람의종 | 2007.02.18 | 187133 |
공지 |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 風磬 | 2006.09.09 | 202260 |
3344 | 짧아져도 완벽해, “999 대 1” | 風文 | 2022.08.27 | 876 |
3343 | 고백하는 국가, 말하기의 순서 | 風文 | 2022.08.05 | 879 |
3342 | ‘폭팔’과 ‘망말’ | 風文 | 2024.01.04 | 879 |
3341 | 애정하다, 예쁜 말은 없다 | 風文 | 2022.07.28 | 883 |
3340 | 상석 | 風文 | 2023.12.05 | 884 |
3339 | 주시경, 대칭적 소통 | 風文 | 2022.06.29 | 886 |
3338 | 말과 공감 능력 | 風文 | 2022.01.26 | 888 |
3337 | 역사와 욕망 | 風文 | 2022.02.11 | 888 |
3336 | 순직 | 風文 | 2022.02.01 | 889 |
3335 | 한소끔과 한 움큼 | 風文 | 2023.12.28 | 891 |
3334 | '김'의 예언 | 風文 | 2023.04.13 | 892 |
3333 | 발음의 변화, 망언과 대응 | 風文 | 2022.02.24 | 893 |
3332 | 언어와 인권 | 風文 | 2021.10.28 | 895 |
3331 | ‘파바’와 ‘롯리’ | 風文 | 2023.06.16 | 896 |
3330 | 물타기 어휘, 개념 경쟁 | 風文 | 2022.06.26 | 897 |
3329 | 말과 서열, 세대차와 언어감각 | 風文 | 2022.06.21 | 898 |
3328 | 일고의 가치 | 風文 | 2022.01.07 | 899 |
3327 | 어떤 청탁, ‘공정’의 언어학 | 風文 | 2022.09.21 | 899 |
3326 | 금새 / 금세 | 風文 | 2023.10.08 | 899 |
3325 | 동무 생각, 마실 외교 | 風文 | 2022.06.14 | 900 |
3324 | 국어와 국립국어원 / 왜 | 風文 | 2022.08.29 | 900 |
3323 | 마그나 카르타 | 風文 | 2022.05.10 | 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