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2.09.21 14:41

헤라시보리

조회 수 17322 추천 수 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헤라시보리

“그러니까 데나우시 안 생기게 시야게 잘해서 오사마리 합시다.” 방송 제작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 바닥 전문가가 아니면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이런 말을 풀어내기 위해 방송 관계자들이 의기투합한 적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쓰고 있는 일본어 잔재를 다듬기 위해서였다. 국어학을 전공한 박사와 아나운서, 방송 세트를 만드는 현장 실무자가 머리를 맞대고 매주 하나씩 다듬어 나가자고 발 벗고 나섰던 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건설 현장, 영화 촬영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움직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 영화 <피에타> 속의 ‘시보리’를 곱씹으며 공구·공작 업계와 의상·봉제 업계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여태 쓰이고 있는 일본 용어 찌꺼기가 다양함을 짚어보았다. ‘빠우’, ‘로구로’, ‘스카시’, ‘헤라시보리’ 따위가 빠질 수 없는 보기이다. ‘헤라시보리’를 인터넷 누리집에 소개한 한 업체의 설명은 이렇다. “‘헤라(へら, 구둣주걱)’처럼 길쭉한 막대기를 지렛대처럼 사용해 선반으로 둥근 기물을 가공하는 작업. 트로피, 종, 밥공기, 화분 등을 만드는 일로 100%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그 분야에서는 전문용어처럼 쓰지만 일반인에게는 낯선 표현이기에 따로 풀어주었을 것이다.

금속이나 돌의 표면을 매끄럽게 마무리하는 기계나 작업인 ‘빠우’는 ‘광내기’, 목기나 가구 다리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기구인 ‘로구로’는 ‘돌림판’, 실톱으로 무늬를 내는 작업을 뜻하는 ‘스카시’는 ‘실톱질’로 이미 다듬은 표현이다.(국어순화용어자료집, 1997) 현장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일본어투 용어를 모두 걷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비계(←아시바), 줄(←야스리), 놋쇠(←신츄)처럼 번듯한 우리말이 있으면 마땅히 제자리 찾아 써야 한다. 글머리에 내보인 말은 그래서 이렇게 다듬어야 한다. “그러니까 뜯어고치는 일 안 생기게 마무리 잘해서 작업 끝냅시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0718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7133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2260
3344 짧아져도 완벽해, “999 대 1” 風文 2022.08.27 876
3343 고백하는 국가, 말하기의 순서 風文 2022.08.05 879
3342 ‘폭팔’과 ‘망말’ 風文 2024.01.04 879
3341 애정하다, 예쁜 말은 없다 風文 2022.07.28 883
3340 상석 風文 2023.12.05 884
3339 주시경, 대칭적 소통 風文 2022.06.29 886
3338 말과 공감 능력 風文 2022.01.26 888
3337 역사와 욕망 風文 2022.02.11 888
3336 순직 風文 2022.02.01 889
3335 한소끔과 한 움큼 風文 2023.12.28 891
3334 '김'의 예언 風文 2023.04.13 892
3333 발음의 변화, 망언과 대응 風文 2022.02.24 893
3332 언어와 인권 風文 2021.10.28 895
3331 ‘파바’와 ‘롯리’ 風文 2023.06.16 896
3330 물타기 어휘, 개념 경쟁 風文 2022.06.26 897
3329 말과 서열, 세대차와 언어감각 風文 2022.06.21 898
3328 일고의 가치 風文 2022.01.07 899
3327 어떤 청탁, ‘공정’의 언어학 風文 2022.09.21 899
3326 금새 / 금세 風文 2023.10.08 899
3325 동무 생각, 마실 외교 風文 2022.06.14 900
3324 국어와 국립국어원 / 왜 風文 2022.08.29 900
3323 마그나 카르타 風文 2022.05.10 90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