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2.09.14 15:42

시보리

조회 수 11956 추천 수 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시보리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주검을 안고 비통에 잠긴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 <피에타>이다.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유명하지만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이 피렌체에도 있다. 독일에는 나무로 조각한 피에타가 있고, 프랑스 아비뇽의 피에타,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교회 문의 피에타, 중동 국가인 레바논의 하리사의 피에타도 있다. 이처럼 기독교 예술 주제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는 피에타(Pieta)는 이탈리아어로 원래 ‘슬픔, 비탄’을 뜻하는 보통명사이다.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피에타>를 보았다. 조민수가 이정진을 안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포스터의 장면은 영화에 나오지 않았다. 영화는 청계천 뒷골목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손바닥만한 공장에서 벌어지는 편치 않은 일들을 보라, 감독이 버럭 소리치며 관객의 손목을 잡아끌고 들어가 보여주는 듯했다. 육중한 공작기계 소리는 버거운 삶의 소리, 회색조의 칙칙한 화면은 간난한 살림을 드러내고 있었다. 영화가 끝난 뒤 이무기 승천하듯 올라가는 자막에 뜻 모를 글자들이 꿈틀댔다.

청계천 거리풍경 속 글자인 ‘시보리’는 뭘까, 새삼 궁금해졌다. ‘시보리’는 짐작대로 일본말이었다. 국립국어원 누리집을 찾아보니 쓰임이 여럿인 만큼 순화어도 달랐다. 영화 속의 쇠 깎는 작업, 그러니까 ‘둥근 기물을 가공하는 선반 작업’은 ‘물레질’이었고, ‘소매나 깃 또는 밑단에 사용되는 신축성 있는 편직물’은 ‘(뜨개) 조르개’였다. ‘시보리’는 ‘물수건’과 ‘홀치기(염색)’, ‘조리개’의 뜻으로도 여전히 쓰이고 있었다. 영화관을 나서니 구름 잔뜩 낀 하늘 아래 청계천 세운상가와 잇닿은 건물이 버티고 서 있었다. 청계천을 비롯한 곳곳에 ‘시보리’와 같은 흔적이 여전히 더께로 남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3686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0270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5264
2138 획정, 확정 바람의종 2008.12.10 14996
2137 너댓개 바람의종 2008.12.10 9864
2136 영부인 바람의종 2008.12.08 8255
2135 사사, 사숙 바람의종 2008.12.08 7708
2134 안 / 않 바람의종 2008.12.08 8901
2133 차로, 차선 바람의종 2008.12.07 8214
2132 맨 처음, 맨손 바람의종 2008.12.07 5712
2131 강짜 바람의종 2008.12.07 8289
2130 고바위, 만땅, 후까시, 엥꼬, 빠꾸, 오라이, 기스 바람의종 2008.12.06 16508
2129 이견을 좁히다 바람의종 2008.12.06 8207
2128 그러모으다, 긁어모으다 바람의종 2008.12.06 7476
2127 이같이, 이 같은 바람의종 2008.11.29 8399
2126 물럿거라, 엊저녁, 옜소, 밭사돈 바람의종 2008.11.29 8598
2125 두리뭉실 바람의종 2008.11.29 10470
2124 세일, 리베이트 바람의종 2008.11.27 6782
2123 빨강색, 빨간색, 빨강 바람의종 2008.11.27 8920
2122 아니오, 아니요 바람의종 2008.11.27 6211
2121 띄다, 띠다 바람의종 2008.11.25 11778
2120 모아지다 바람의종 2008.11.25 7533
2119 꿰매다, 시치다 바람의종 2008.11.25 7766
2118 옛부터, 옛스럽다 바람의종 2008.11.24 8767
2117 명란젓, 창란젓, 토하젓, 토화젓 바람의종 2008.11.24 1120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