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함하다
뭉툭한 몸집에 네 다리는 짧고 주둥이는 거의 돼지처럼 뾰족한 동물. 야생에서는 낮 동안 나무뿌리 밑이나 바위틈에 숨어 있다가 주로 밤에 활동하는 동물. 얼굴과 몸, 배와 꼬리, 네 다리를 제외하고는 날카로운 침 모양의 털 1만6천여개가 촘촘히 박혀 있는 이 동물의 이름은 고슴도치이다. 요즘 이 녀석을 애완동물로 키우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한다’는 속담에 볼멘소리로 대거리하는 이들이 있다. ‘고슴도치보다 못생긴 동물도 많은데, 왜 하필 속담의 주인공으로 삼느냐’는 것이다. 따져 보니 그렇다. 동물의 새끼들은 귀엽고 이파리도 애잎이 곱듯이 어린 생물은 다 예쁘지 않은가.
‘어버이 눈에는 제 자식이 다 잘나고 귀여워 보인다’는 뜻을 담은 속담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이다. ‘함함하다’는 ‘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는 뜻이니 이 속담은 ‘털이 바늘같이 꼿꼿한 고슴도치도 제 새끼의 털이 부드럽다고 옹호한다는 뜻’이다.(표준국어대사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고슴도치-예쁘다’ 조합이 39만건으로, 원형인 ‘고슴도치-함함하다’ 조합보다 훨씬 더 많이 쓰인다.(구글 검색) 여기저기 두루 쓸 수 있는 ‘예쁘다’에 비해 ‘함함하다’의 쓰임이 털이나 머리카락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자설’(字說)에서 낱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문장을 읽어버리는 세태를 두고 ‘단어(字)의 뜻을 제대로 이해해야 글귀(句)가 풀리고, 이를 통해 문장(章)을 파악해야 전체(篇)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글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낱말의 원뜻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속담 풀이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원 속담인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를 널리 써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 목록 | 바람의종 | 2006.09.16 | 38168 |
공지 |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 바람의종 | 2007.02.18 | 184738 |
공지 |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 風磬 | 2006.09.09 | 199615 |
3322 | 왜 벌써 절망합니까 - 8. 미래를 창조하는 미래 | 風文 | 2022.05.17 | 818 |
3321 | 쓰봉 | 風文 | 2023.11.16 | 819 |
3320 | 뒷담화 보도, 교각살우 | 風文 | 2022.06.27 | 820 |
3319 | 3인칭은 없다, 문자와 일본정신 | 風文 | 2022.07.21 | 822 |
3318 | 배뱅잇굿 | 風文 | 2020.05.01 | 823 |
3317 | 외국어 차용 | 風文 | 2022.05.06 | 826 |
3316 | 금수저 흙수저 | 風文 | 2024.02.08 | 827 |
3315 | 내 청춘에게? | 風文 | 2024.02.17 | 827 |
3314 | 사저와 자택 | 風文 | 2022.01.30 | 828 |
3313 | 금새 / 금세 | 風文 | 2023.10.08 | 829 |
3312 | ‘이고세’와 ‘푸르지오’ | 風文 | 2023.12.30 | 830 |
3311 | 말과 절제, 방향과 방위 | 風文 | 2022.07.06 | 832 |
3310 | 언어와 인권 | 風文 | 2021.10.28 | 833 |
3309 | 연말용 상투어 | 風文 | 2022.01.25 | 833 |
3308 | 발음의 변화, 망언과 대응 | 風文 | 2022.02.24 | 833 |
3307 | 국물도 없다, 그림책 읽어 주자 | 風文 | 2022.08.22 | 833 |
3306 | 내연녀와 동거인 | 風文 | 2023.04.19 | 834 |
3305 | 외국어 선택, 다언어 사회 | 風文 | 2022.05.16 | 835 |
3304 | 말과 상거래 | 風文 | 2022.05.20 | 835 |
3303 | 말의 평가절하 | 관리자 | 2022.01.31 | 836 |
3302 | 말의 이중성, 하나 마나 한 말 | 風文 | 2022.07.25 | 836 |
3301 | 피동형을 즐기라 | 風文 | 2023.11.11 | 8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