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2.05.11 14:40

간절기

조회 수 12313 추천 수 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간절기

지난 봄날의 하루가 떠오른다. 옷장을 열어 본 아내가 배시시 웃으며 ‘입을 옷이 없다’고 했던 날이다. 딱히 답할 말을 찾지 못해 멋쩍게 웃는 나와 달리 중학생 딸은 그 뜻 알겠다는 듯 까르르 웃었다. 이 얘기를 들은 갓 스물의 여학생들은 ‘여자는 철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없는 게 맞다’며 깔깔 웃는다. 남자들은 모르는 ‘여성 공감’의 힘이다. 한마디로 ‘입을 옷이 없다’는 뜻은 ‘입을만한 옷’이 없다는 뜻이니, 곧 ‘(맘에 드는) 새 옷이 없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봄의 문턱을 넘어서나 싶더니 초여름 날씨가 이어진다. 환절기가 짧아진 것이다. 환절기(換節期)는 뜻 그대로 ‘철이 바뀌는 시기’이다. 철이 바뀔 즈음에는 큰 일교차로 면역력이 떨어지기에 건강상품이 인기를 끈다. 옷장 열어보며 한숨 쉬는 여성들을 위한 패션상품도 쏟아져 나온다. ‘환절기 건강’, ‘간절기 패션’처럼 같은 때를 두고 표현이 달라지기도 한다. 인터넷 검색 결과를 보면 쓰임의 차이가 또렷해진다. ‘환절기 건강’(약 400만건)-‘간절기 건강’(약 70만건), ‘환절기 패션’(약 100만건)-‘간절기 패션’(약 330만건)이다.(구글 검색) ‘간절기 패션’(약 1880건), ‘환절기 패션’(약 880건)처럼 뉴스 검색 결과도 다르지 않다.(네이버 검색)

1990년대에 등장한 ‘간절기’는 2000년 국어원 신어자료집에 오르면서 세력을 얻는다. 뜻풀이는 ‘한 계절이 끝나고 다른 계절이 올 무렵의 그 사이 기간’이니 ‘환절기’와 다르지 않다. ‘간절기’는 일본어 ‘셋키노 아이다’(節氣の間, 절기의 사이)의 ‘간’을 앞에 앉혀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절기(節氣)는 ‘계절 바뀜’과 무관한 것이니 ‘간절기’를 우리말답게 쓴다면 ‘주로 패션업계에서’처럼 쓰임을 명시하고 한자(間節期)도 밝혀야 한다. 수다한 동의어와 유의어는 말글살이를 풍요롭게 하기도 하지만 혼란을 불러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61844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8510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3304
2908 구경꾼의 말 風文 2022.12.19 1520
2907 구구히, 구구이 바람의종 2012.01.07 8779
2906 구년묵이(구닥다리) 風磬 2006.10.10 15296
2905 구랍 바람의종 2008.11.13 6775
2904 구랍 바람의종 2010.11.05 11168
2903 구렛나루, 구레나루, 구렌나루 / 횡경막 / 관자노리 바람의종 2008.11.03 8492
2902 구리무와 포마드 바람의종 2010.03.24 11855
2901 구메구메 바람의종 2010.11.26 10781
2900 구명과 규명 바람의종 2010.10.13 11044
2899 구미와 곶 바람의종 2008.03.25 7441
2898 구별과 구분 바람의종 2010.11.02 9516
2897 구비구비, 메꾸다 바람의종 2008.11.24 9564
2896 구설수 바람의종 2008.10.11 7104
2895 구소련 바람의종 2010.07.20 11853
2894 구슬러, 구슬려 / 거슬러, 거슬려 바람의종 2009.11.15 11083
2893 구저모디 file 바람의종 2009.12.14 8323
2892 구축함 바람의종 2007.06.04 9179
2891 국가 사전 폐기론, 고유한 일반명사 風文 2022.09.03 1689
2890 국가 사전을 다시?(2,3) 주인장 2022.10.21 1481
2889 국가의 목소리 風文 2023.02.06 1707
2888 국면 바람의종 2007.06.04 9323
2887 국물, 멀국 / 건더기, 건데기 바람의종 2009.02.20 1297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