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
아무개 아나운서 맞지요?
어느 날 택시 기사가 뜬금없이 내게 건넨 한마디. 방송 잘 듣고 있다, 요즘은 어떤 방송을 하느냐 따위의 말이 이어졌다. 온종일 라디오를 벗하며 사는 택시 기사이니 손님이 누구인지 목소리만으로 알아채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다. 내 이름 석 자까지 아는 기사 아저씨, 왜 ‘강 아나운서’가 아닌 ‘아무개 아나운서’라 했을까.
뉴스를 할 때, 특히 사건 사고 소식을 전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인 ‘모 씨’를 나는 ‘아무개 씨’라 했기에 그랬다. 일테면 ‘고속도로 삼중 추돌 사고로 운전자인 김 모 씨가 숨지고, 함께 타고 있던 박 모 씨 등 두 명이 크게 다쳤습니다’는 ‘… 김 아무개 씨가 … 박 아무개 씨 등 …’으로 말이다. 내가 ‘모 씨’를 ‘아무개 씨’로 전한 이유는 한자말보다 토박이말을 앞세워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특정 성씨의 경우 뜻하지 않게 조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김씨, 이씨에 이어 셋째로 많은 성씨인 박씨가 그렇다. ‘박 모 씨’의 소릿값은 [방모씨]. 기사에서 익명 처리한 ‘박 씨’가 방송 뉴스에서는 ‘방 씨’가 되기도 한다. ‘박 아무개’와 ‘방 아무개’로 하면 헷갈릴 일이 없지 않은가. 이런 까닭에 나는 한동안 ‘아무개’를 고집했다.
말과 글은 하나이면서 그렇지 않기도 하다. 방송말은 뉴스 원고와 구성 대본 같은 글이 바탕이어도 전달은 말로 한다. 소릿값을 제대로 따져 바르게 발음하는 것은 프로그램에 담긴 메시지와 뉴스의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토대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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