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0.03.07 00:50

피랍되다

조회 수 9360 추천 수 1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피랍되다

우리는 매우 많은 한자말을 쓴다. 그러나 한자말이라고 해서 반드시 한자로 적을 필요는 없다.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한자병용을 주장하는 이들일지라도 ‘학교, 비행기, 세탁소, 미장원, 극장’ 같은 낱말까지 꼭 한자로 적어야 한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자말 중에는 한문 어순으로 된 말이 있다. ‘살인’(殺人) 같은 말이다. ‘살’이 동사이고 ‘인’이 목적어다. 우리말과는 어순이 다르다.

“북한 선원들이 탄 선박이 피랍된 사실을 확인했다.” 북한 선원들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사건을 다룬 신문기사의 한 구절이다. 기사에 쓰인 ‘피랍’(被拉)도 한문 어순으로 된 낱말이다. ‘납치되다’라는 뜻의 피동어로서 역시 우리말과는 어순이 다르다. ‘피랍’ 자체가 피동어인데, 거기에 ‘되다’라는 피동접미사를 붙이면 이중피동이 된다. 이중피동을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방사선에 피폭되다”와 같은 말은 이중피동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땐 이중피동을 쓰는 것이 편하다. 이중피동을 피한답시고 ‘피랍된’을 ‘피랍한’으로 하면 우리의 일상 언어생활과 동떨어진다. 그러나 ‘피랍된’도 아니고 ‘피랍한’도 아닌 ‘납치된’이라는 좋은 말이 있다. ‘납치된’이라고 하면 눈에도, 귀에도 훨씬 빨리 들어온다. 다만 제목에 쓸 때는 접미사를 빼버리고 ‘피랍’으로 써야 하는데, 이때 ‘납치’를 쓰면 주객이 바뀌어 버린다. 그러나 이때도 한 글자만 더 붙여 ‘납치돼’로 하면 해결된다.

우재욱/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5940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2479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7528
3238 ‘시끄러워!’, 직연 風文 2022.10.25 1301
3237 ‘시월’ ‘오뉴월’ 風文 2024.01.20 1339
3236 ‘안 되’는 ‘안 돼’ 바람의종 2009.11.24 8947
3235 ‘암(수)캐’가 ‘암(수)개’로 바람의종 2010.01.22 9360
3234 ‘앗다’ 쓰임 바람의종 2008.06.19 6831
3233 ‘앗다’와 ‘호함지다’ 바람의종 2010.04.18 14110
3232 ‘엘씨디로’ / 각출-갹출 風文 2020.05.06 1968
3231 ‘오빠 부대’ 바람의종 2008.01.07 7344
3230 ‘외국어’라는 외부, ‘영어’라는 내부 風文 2022.11.28 1435
3229 ‘요새’와 ‘금세’ 風文 2024.02.18 1265
3228 ‘우거지붙이’ 말 바람의종 2007.10.13 10322
3227 ‘웃기고 있네’와 ‘웃기고 자빠졌네’, ‘-도’와 나머지 風文 2022.12.06 1222
3226 ‘으’의 탈락 바람의종 2010.06.19 11004
3225 ‘이’와 ‘히’ 風文 2023.05.26 1195
3224 ‘이고세’와 ‘푸르지오’ 風文 2023.12.30 1109
3223 ‘이다’‘아니다’와만 결합하는 ‘-에요’ 바람의종 2010.01.09 6835
3222 ‘자꾸’와 ‘지퍼’ 바람의종 2008.12.18 8029
3221 ‘직하다’와 ‘-ㅁ/음직하다’ 바람의종 2010.03.26 13058
3220 ‘짝퉁’ 시인 되기, ‘짝퉁’ 철학자 되기 風文 2022.07.16 1046
3219 ‘쫓다’와 ‘쫒다’ 風文 2023.07.01 1861
3218 ‘첫 참석’ 바람의종 2009.11.09 8894
3217 ‘첫날밤이요’ 바람의종 2010.02.21 958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