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9.05.17 04:50

세밑

조회 수 5774 추천 수 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세밑

언어예절

신령을 밝히던 은밀한 촛불이 겨울 거리에서도 꺼지지 않는다. 흥청거림이 잦아든 대신 오가는 말속엔 세밑 인사보다 억지와 원망, 부정과 저주가 일상화한 느낌이다.

“갑이 을에게 심수(深讐)가 있어 이를 갚으려 하면 힘이 부족하고 그만두려 하면 마음이 불허하는지라, 이에 그의 화상을 향하여 눈도 빼어 보며, 그 목도 베어 보고, 혹 을의 이름을 불러 ‘염병에 죽어라, 괴질에 죽어라, 벼락에 죽어라, 급살에 죽어라!’ 하는 등의 저주다. 얼른 생각하면 백 년의 저주가 저의 일발(一髮)을 손(損)하지 못할 듯하지만, 1인 2인 … 100인 1000인의 저주를 받는 자이면 불과 몇 년에 불그을음이 그 지붕 위에 올라가며 …. 거룩하다 저주의 힘이여, 약자의 유일 무기가 아니냐?”

단재 선생(금전·철포·저주)이 일제 초기, 돈과 총칼에 눌려 누구 하나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한 글귀다. 그 약자의 ‘유일 무기’가 요즘엔 힘센자와 집단, 가진자와 못가진자 가리지 않고 휘두른다는 점이 유별나다. 하지만 말이 바로서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떤 말도 헛수고다. 이땅에서 좌·우는 점차 ‘친일·친미·독재’ 우익보수, ‘반일·반미·빨갱이’ 좌익진보로 갈리는 듯하다. 참된 좌·우라면 저런 가름이 못마땅할 터이다. 자주·민주·정통·내림·통일은 어느 편일까?

어려운 세밑에 말이라도 제대로 세워 무작하고 겉도는 짓을 삼감으로써 두루 마음 덜 다치게 했으면 좋겠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63345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10078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4719
2842 그닥 바람의종 2008.03.11 7119
2841 그대 있음에 바람의종 2009.02.20 8175
2840 그라모 어쩝니껴? 바람의종 2010.02.25 7375
2839 그라운드를 누비다, 태클, 세리머니 바람의종 2009.06.01 9465
2838 그러기(그렇기) 때문에 바람의종 2009.11.08 12594
2837 그러모으다, 긁어모으다 바람의종 2008.12.06 7516
2836 그러잖아도는 동작, 그렇잖아도는 상태 바람의종 2010.01.22 10755
2835 그런 식으로 / 그런식으로 바람의종 2012.09.25 13845
2834 그룹사운드 바람의종 2009.02.08 6910
2833 그르이께 어짤랑교? 바람의종 2010.03.02 6193
2832 그리고 나서, 그리고는 바람의종 2008.09.07 6633
2831 그리고 나서와 그러고 나서 바람의종 2010.02.23 8343
2830 그리고는, 그러고는 / 그리고 나서, 그러고 나서 바람의종 2010.07.05 15466
2829 그림과 말, 어이, 택배! 風文 2022.09.16 1494
2828 그림의 떡, 그림에 떡 바람의종 2012.09.13 17439
2827 그만한 / 그만 한, 한걸음 / 한 걸음, 그만해야지 / 그만 해야지 바람의종 2010.01.22 11268
2826 그분이요? / 그분이오? 바람의종 2012.10.17 9278
2825 그슬리다, 그을리다 바람의종 2009.02.18 11096
2824 그을리다와 그슬리다 바람의종 2010.09.04 10015
2823 그저, 거저 바람의종 2010.01.15 7925
2822 그치다와 마치다 바람의종 2008.01.15 7548
2821 극동 언어들 바람의종 2008.02.14 820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