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4.03 09:11

선과 청혼

조회 수 6612 추천 수 1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선과 청혼

청혼·혼인은 선택·모험이자 새삶을 여는 일이다. 책임이 따르면서 집안과 사회가 이를 우둔다. 조혼에다 번잡한 ‘육례’(六禮)를 찾던 시절엔 집안끼리 중신아비를 넣고서도 문서로 ‘허혼’한 일을 서로 감사하며 ‘사성’(四星)과 인사장이 오갔다. 허례허식 또는 겉치레가 아름다울 수 있는 법은, 옷과 같아서 통째로 벗어 던지면 남는 게 알몸과 다를바 없는 까닭이다.

전날 ‘선’은 사랑마당이나 울밖 먼발치에서 겉모습만 훔쳐 보는 정도였다. 임자와 어버이들이 얼굴을 맞대어 무게를 달고 허세를 부리기도 하는 게 요즘 맞선에 면접이다. 선이란 늘 보고 보이는 일이어서 설렘과 부끄러움이 함께하는데, ‘첫선’이란 말은 많은 것을 상품화한다.

그 이름이 갖가지인 만큼 중신어미(중매쟁이·중신아비·매파·여쾌·매온·뚜쟁이 …) 일은 예와 지금이 따로 없다. 디노블·앙세·듀오·커플라인 …들 낯간지러운 이름으로 선남선녀를 끌어대 성업을 이룬다니. 휴대전화·인터넷 소통이 별난데도 인연은 제대로 닿지 않는다는 얘기다.

남자가 청혼하는 말인즉 ‘같이 살자’인데, 썩 사사로운 일이어서 굳이 실체까지 들출 것은 없겠다. 하지만 사성(별넷)을 보내어 청혼하던 내림을 따른다면 그럴싸한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 별님이 되어주오. 시키기만 하면 해도 달도 따다 드리리다!” 약간의 허풍은 양념이다.

인지가 높어져선지 사주(해·달·날·때)는 타고난다고 여기는 사람도 드물어졌고, 그 흔하던 ‘팔자 타령’도 듣기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행복’과 가까워 보이지는 않는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2150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8686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3662
290 온나인? 올라인? 風文 2024.03.26 1443
289 일타강사, ‘일’의 의미 風文 2022.09.04 1436
288 노랗다와 달다, 없다 風文 2022.07.29 1435
287 올가을 첫눈 / 김치 風文 2020.05.20 1434
286 벌금 50위안 風文 2020.04.28 1432
285 아카시아 1, 2 風文 2020.05.31 1431
284 '마징가 Z'와 'DMZ' 風文 2023.11.25 1431
283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중소기업 콤플렉스 風文 2022.01.13 1430
282 만인의 ‘씨’(2) / 하퀴벌레, 하퀴벌레…바퀴벌레만도 못한 혐오를 곱씹으며 風文 2022.11.18 1430
281 질문들, 정재환님께 답함 風文 2022.09.14 1428
280 살인 진드기 風文 2020.05.02 1425
279 ‘웃기고 있네’와 ‘웃기고 자빠졌네’, ‘-도’와 나머지 風文 2022.12.06 1425
278 지식생산, 동의함 風文 2022.07.10 1423
277 ‘부끄부끄’ ‘쓰담쓰담’ 風文 2023.06.02 1420
276 외부인과 내부인 風文 2021.10.31 1419
275 지긋이/지그시 風文 2023.09.02 1419
274 보편적 호칭, 번역 정본 風文 2022.05.26 1418
273 주권자의 외침 風文 2022.01.13 1416
272 사투리 쓰는 왕자 / 얽히고설키다 風文 2023.06.27 1414
271 혼성어 風文 2022.05.18 1411
270 오염된 소통 風文 2022.01.12 1408
269 성적이 수치스럽다고? 風文 2023.11.10 140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37 138 139 140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