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와 곶
<표준국어대사전>에, ‘곶’은 ‘바다로 뻗어나온 모양을 한 곳’이라고 풀이돼 있다. 그렇다면 ‘곶’은 해안에만 있는 땅이름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갈곶·갈고지·돌곶·돌고지’ 등은 바닷가가 아닌 곳에서도 흔히 보이는데, 두루 ‘곶’이 들어 있다.
우리말에서 ‘곶’은 ‘구무[굼]’와 마찬가지로 ‘움푹 파인 곳’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이는 바닷가뿐만 아니라 내륙에서 움푹 파여 배를 대기 편한 곳에 ‘곶’을 붙인 데서도 알 수 있다. ‘곶’은 ‘고시’(古尸), ‘고자’(古自), ‘고차’(古次), ‘홀차’(忽次) 등으로 쓰였다. 백제 때 전남 장성군은 ‘고시리’(古尸伊)였으며, 신라 때 경남 고성군은 ‘고자미동국’(古資彌東國), 경기 안산은 ‘고사야홀차’(古斯也忽次)였다. ‘홀차’가 ‘구’(口)로 바뀌기도 하는데, ‘고사야홀차’는 ‘장항구’(獐項口)로, ‘요은홀차’(要隱忽次)는 ‘양구’(楊口)로 바뀌었다.
‘곶’은 다른 꼴로 나타나기도 한다. ‘고지’와 ‘구지’는 ‘곶’에 ‘이’가 붙어 된 말이며, 첫소리를 된소리로 내면 ‘꾸지’가 된다. 여수 지역의 ‘송고지·숫구지·일중구지·문꾸지’ 등은 ‘곶’의 이형태가 붙은 땅이름이다. 여기선 ‘곶’ 대신 ‘구미’가 붙은 곳도 제법 발견된다. ‘망구미·온구미’의 ‘구미’도 ‘곶’의 이형태들이다. <난중일기>에 보이는 ‘군영구미·이진구미’ 등도 마찬가지다. 이 말은 ‘굽다’의 이름꼴인 ‘구비’가 ‘구지’에 이어져 생긴 꼴이다. 이 또한 ‘곶’이 ‘구무’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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