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1.29 15:46

날래다와 빠르다

조회 수 7312 추천 수 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날래다와 빠르다

그림씨(형용사) 낱말은 본디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라 뜻을 두부모 자르듯이 가려내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런 그림씨 낱말은 뜻 덩이로 이루어진 한자말이 잡아먹을 수가 없어서 푸짐하게 살아남아 있는데, 우리는 지난 세기 백 년 동안 소용돌이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선조들이 물려준 이런 토박이말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 그래서 뒤죽박죽 헷갈려 쓰는 바람에 힘센 낱말이 힘 여린 낱말을 밀어내고 혼자 판을 치게 되고, 그러니 고요히 저만의 뜻과 느낌을 지니고 살아가던 낱말들이 터전을 빼앗기고 적잖이 밀려났다. ‘날래다’와 ‘이르다’도 육이오 즈음부터 ‘빠르다’에 밀려서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낱말들이다. 우리네 정신의 삶터가 그만큼 비좁아지는 것이다.

‘빠르다’는 그냥 시간의 흐름에 쓰는 말이고, ‘날래다’는 움직임에 걸리는 시간의 흐름에 쓰는 말이고, ‘이르다’는 잣대를 그어놓고 시간의 흐름에 쓰는 말이다. ‘빠르다’는 ‘더디다’와 마주 짝을 이루어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가려서 쓰고, ‘날래다’는 ‘굼뜨다’와 마주 짝을 이루어 움직임에 걸리는 시간의 짧기와 길기를 가려서 쓰고, ‘이르다’는 ‘늦다’와 마주 짝을 이루어 잣대로 그어놓은 시간의 흐름에서 먼저인가 다음인가를 가려서 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빠르다’가 움직임에 걸리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날래다’의 터전으로 슬슬 밀고 들어오면서 ‘느리다’를 짝으로 삼아 ‘굼뜨다’까지 밀어내며 들어왔다. 요즘은 이들 짝이 ‘이르다’와 ‘늦다’의 터전으로도 밀고 들어온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7107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3664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8647
1038 방조하다 바람의종 2008.03.30 7262
1037 이름 부르기 바람의종 2008.04.06 7261
1036 통틀어 바람의종 2007.03.30 7255
1035 벽과 담 윤영환 2011.11.28 7254
1034 원-달러 바람의종 2009.03.08 7253
1033 닭알 바람의종 2008.07.26 7245
1032 수수방관 바람의종 2007.12.14 7242
1031 사룀 바람의종 2008.07.24 7240
1030 한글과 우리말 바람의종 2008.02.19 7234
1029 바람의종 2008.11.01 7225
1028 사이시옷 적기 바람의종 2010.01.08 7225
1027 발칙과 점잔 바람의종 2008.06.21 7220
1026 번역 투 문장 바람의종 2010.01.10 7219
1025 ~에 대한 바람의종 2008.03.11 7219
1024 안겨오다 바람의종 2008.04.06 7216
1023 제트(Z) 바람의종 2009.09.07 7214
1022 머슴날 바람의종 2009.08.02 7213
1021 개보름 바람의종 2007.12.29 7210
1020 두런·가라치 바람의종 2008.07.06 7207
1019 고무적 바람의종 2007.06.03 7207
1018 소고기, 쇠고기 바람의종 2008.11.19 7207
1017 바캉스, 다이어트 바람의종 2008.08.04 720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