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래다와 빠르다
그림씨(형용사) 낱말은 본디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라 뜻을 두부모 자르듯이 가려내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런 그림씨 낱말은 뜻 덩이로 이루어진 한자말이 잡아먹을 수가 없어서 푸짐하게 살아남아 있는데, 우리는 지난 세기 백 년 동안 소용돌이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선조들이 물려준 이런 토박이말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 그래서 뒤죽박죽 헷갈려 쓰는 바람에 힘센 낱말이 힘 여린 낱말을 밀어내고 혼자 판을 치게 되고, 그러니 고요히 저만의 뜻과 느낌을 지니고 살아가던 낱말들이 터전을 빼앗기고 적잖이 밀려났다. ‘날래다’와 ‘이르다’도 육이오 즈음부터 ‘빠르다’에 밀려서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낱말들이다. 우리네 정신의 삶터가 그만큼 비좁아지는 것이다.
‘빠르다’는 그냥 시간의 흐름에 쓰는 말이고, ‘날래다’는 움직임에 걸리는 시간의 흐름에 쓰는 말이고, ‘이르다’는 잣대를 그어놓고 시간의 흐름에 쓰는 말이다. ‘빠르다’는 ‘더디다’와 마주 짝을 이루어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가려서 쓰고, ‘날래다’는 ‘굼뜨다’와 마주 짝을 이루어 움직임에 걸리는 시간의 짧기와 길기를 가려서 쓰고, ‘이르다’는 ‘늦다’와 마주 짝을 이루어 잣대로 그어놓은 시간의 흐름에서 먼저인가 다음인가를 가려서 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빠르다’가 움직임에 걸리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날래다’의 터전으로 슬슬 밀고 들어오면서 ‘느리다’를 짝으로 삼아 ‘굼뜨다’까지 밀어내며 들어왔다. 요즘은 이들 짝이 ‘이르다’와 ‘늦다’의 터전으로도 밀고 들어온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 목록 | 바람의종 | 2006.09.16 | 63850 |
공지 |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 바람의종 | 2007.02.18 | 210490 |
공지 |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 風磬 | 2006.09.09 | 225128 |
2402 | 다르다와 틀리다 | 바람의종 | 2007.12.29 | 7372 |
2401 | 어미 ‘-디’ | 바람의종 | 2010.07.20 | 7372 |
2400 | 서낭 | 바람의종 | 2008.02.15 | 7374 |
2399 | ~에 대한 | 바람의종 | 2008.03.11 | 7374 |
2398 | 살처분 | 바람의종 | 2010.10.30 | 7374 |
2397 | 너구리 | 바람의종 | 2008.12.07 | 7375 |
2396 | 그라모 어쩝니껴? | 바람의종 | 2010.02.25 | 7375 |
2395 | 가야와 가라홀 | 바람의종 | 2008.04.01 | 7379 |
2394 | 시남이 댕게라! | 바람의종 | 2009.12.18 | 7379 |
2393 | 사이비 | 바람의종 | 2007.07.18 | 7379 |
2392 | 말소리의 높낮이 | 바람의종 | 2008.01.08 | 7382 |
2391 | 로비 | 바람의종 | 2008.02.10 | 7382 |
2390 | 직통생 | 바람의종 | 2008.03.31 | 7385 |
2389 | 그녀 | 바람의종 | 2009.07.10 | 7386 |
2388 | 엄치미 좋아! | 바람의종 | 2009.09.26 | 7391 |
2387 | 良衣·거리쇠 | 바람의종 | 2008.06.27 | 7392 |
2386 | 토족말 지킴이 챙고츠 | 바람의종 | 2007.12.16 | 7397 |
2385 | 성은, 승은, 사약 | 바람의종 | 2008.11.18 | 7397 |
2384 | 단골 | 바람의종 | 2010.05.18 | 7398 |
2383 | 속수무책 | 바람의종 | 2007.12.13 | 7398 |
2382 | 아비규환 | 바람의종 | 2007.12.14 | 7399 |
2381 | 설거지나 하세요. (게와 께) | 바람의종 | 2008.04.20 | 73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