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밥풀
오래 전에 이현세 만화〈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를 보았을 때, 그런 이름이 정말 있나 싶어서 찾아봤다. 그리고 빨간 꽃잎 위에 볼록하게 솟아오른 하얀 밥풀무늬를 보고 적이 놀랐다.
풀꽃이름 중에는 누가 죽어서 그 자리에 난 것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많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마음씨 착한 며느리가 제사상에 올릴 메를 짓다가 쌀알 두 톨을 떨어뜨렸다. 흙이 묻은 쌀알로 메를 지으면 불경스러울 것 같고, 그렇다고 쌀을 버리기에는 죄스러워하다 혀에 올려놓는 순간 시어머니가 이를 보고 제사에 올릴 메쌀을 먼저 입에 댔다고 호되게 꾸짖었다. 며느리는 뒷동산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맸는데, 그 혀 위에 쌀알 두 톨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고 한다. 빼어문 혀와 밥풀이 연상되는 꽃을 보고 왜 가장 먼저 며느리를 떠올렸을까?
전통 사회에서 며느리가 과연 어떤 존재였는지를 드러내는 흔히 보이는 보기로 ‘며느리밑씻개’나 ‘며느리배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며느리밑씻개’는 잎과 줄기에 잔가시가 있어 따끔따끔한 들풀인데, 별로 필요는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우니 며느리 밑씻개로나 쓰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며느리배꼽’은 턱잎과 열매가 어우러진 모양이 배꼽처럼 생겼는데, 아들이나 딸 배꼽은 귀엽게 느껴지지만, 며느리 배꼽은 민망하고 하찮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담겼을 터이다.
풀이름 하나에도 옛 어른들의 삶과 얼이 배어 있음을 강조하지만, 사람 차별이 스민 이런 전통은 짚고 넘어가야 할 성싶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 목록 | 바람의종 | 2006.09.16 | 49921 |
공지 |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 바람의종 | 2007.02.18 | 196440 |
공지 |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 風磬 | 2006.09.09 | 211459 |
158 | 왠지/웬일, 어떻게/어떡해 | 風文 | 2023.06.30 | 1210 |
157 | 아줌마들 | 風文 | 2022.01.30 | 1209 |
156 | 개념의 차이, 문화어 | 風文 | 2022.06.13 | 1209 |
155 | 거짓말과 개소리, 혼잣말의 비밀 | 風文 | 2022.11.30 | 1209 |
154 | 외래어의 된소리 | 風文 | 2022.01.28 | 1208 |
153 | 3인칭은 없다, 문자와 일본정신 | 風文 | 2022.07.21 | 1208 |
152 | 울면서 말하기 | 風文 | 2023.03.01 | 1208 |
151 | 영어 열등감, 몸에 닿는 단위 | 風文 | 2022.04.27 | 1206 |
150 | 말의 미혹 | 風文 | 2021.10.30 | 1204 |
149 | 순직 | 風文 | 2022.02.01 | 1204 |
148 | 분단 중독증, 잡것의 가치 | 風文 | 2022.06.09 | 1204 |
147 | 말의 바깥, 말의 아나키즘 | 風文 | 2022.08.28 | 1204 |
146 | 북혐 프레임, 인사시키기 | 風文 | 2022.05.30 | 1201 |
145 | 깨알 글씨, 할 말과 못할 말 | 風文 | 2022.06.22 | 1200 |
144 | 옹알이 | 風文 | 2021.09.03 | 1199 |
143 | 역사와 욕망 | 風文 | 2022.02.11 | 1197 |
142 | '김'의 예언 | 風文 | 2023.04.13 | 1197 |
141 | 새로운 한자어, 이름과 실천 | 風文 | 2022.06.18 | 1193 |
140 | 피동형을 즐기라 | 風文 | 2023.11.11 | 1191 |
139 | 금새 / 금세 | 風文 | 2023.10.08 | 1190 |
138 | 다만, 다만, 다만, 뒷담화 | 風文 | 2022.09.07 | 1185 |
137 | 인종 구분 | 風文 | 2022.05.09 | 11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