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0.03.22 11:32

시인과 강도

조회 수 3919 추천 수 1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시인과 강도

  15세기에 살았던 프랑스와 비용은 "우리들의 불행하고도 악독한, 쾌활하면서도 미친 형제"라고 불렸다. 그는 파리에서 가장 꾀가 많은 좀도둑이기도 하였으며, 프랑스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기도 했다. 그보다 더 흉악한 죄를 저지른 사람도 드물다. 그리고 그보다 더 완벽한 시를 읊은 사람도 드물다. 야수적인 면과 고상한 기품의 양면성을 지닌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20세에 그는 소매치기의 대가가 되었고 25세에 사제를 죽였으며, 30세에 목을 잘라 죽이는 깡패 조직의 두목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이 시기에 그는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올리는 시를 썼다. 빈민가에서 태어난 프랑스와는 12세가 되자 비용이라는 이름의 점잖은 사제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자기 후견인의 이름을 따서 지은 비용이라는 이름은 위대한 시인의 이름이 되는 영광은 받기도 하였지만 그의 나쁜 행동으로 인해 먹칠을 당하게도 되었다. 이 자비로운 늙은 사제는 그에게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법을 가르치는 데 성공했지만 정직하게 사는 법은 가르칠 수가 없었다. 그의 후견인은 비용을 대학에 보냈다. 그러나 이 젊은 시인은 그의 동료 학생들과 사귀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 대신 도둑놈들과 교제하는 쪽을 택하였다. 그는 도둑놈들의 계관시인이 되었다. 도둑들 중의 한 명이 교수형 선고를 받았을 때 비용은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좋은 여행'이란 시를 지어, 음탕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지옥으로 전송하였다.

  그는 언제나 곤경에 빠져 있는 신세였고 그의 후견인은 항상 그를 구해 주었다. 그의 삶은 한 감옥에서 다른 감옥으로 계속되는 긴 여행이었다. 그는 언제나 그의 후견인에게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자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훔친 돈은 모두 여자와 술을 사는 데 썼다. 그는 굉장한 미남이어서 사창가의 여인이든 궁중의 여인이든 그에게 저항을 하지 못했다. 1456년의 크리스마스 전날 밤, 그는 나바레 대학에 도둑질하러 들어갔다. 파리를 빠져나와 체포된 그는 오랑 감옥에 갇혔다. 그는 두 번이나 사형 선고를 받았었지만 두 번 다 친구들의 알선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그의 몸이 감방에서 썩어갈 때, 그의 마음은 "위대한 약속"이라는 시를 꽃피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시는 진흙탕에서 하늘의 별까지를 망라하여 읊은 아주 훌륭한 시이다. 이 시에서 가장 유명한 "죽은 숙녀의 발라드"라는 구절에서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랑스러운 것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혀지지 않는 후렴과 함께 쓸쓸하게 직시하고 있다.

  "아아, 지나간 해의 눈송이는 모두 다 어디에 있는가?"

  비용의 이 "위대한 약속"은 그의 추한 삶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시이기도 하면서 신의 용서를 솔직하게 간구하는 시이기도 하다. 자신의 묘비명과도 같은 문구로 이 시는 끝을 맺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모한 이 미친놈의 삶은 어디에도 머무를 데가 없다. 죽음이 그를 이 세상 밖으로 쫓아내기 전까지는 결코 안식하지 못하리. 자비로운 신이시여, 그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영원한 평화를 그에게 내리소서."

  그는 결코 평안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리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파리에 안개가 자욱이 낀 어느 오후였다. 사형 선고는 영원한 추방으로 대체되었다. 그리하여 비용은 다 떨어진 배낭을 어깨에 메고 밀려드는 저녁 어스름 속으로 사라져갔다. 강건한 마음과 비틀린 영혼이 뒤섞인, 문학사에 있어 가장 병적이고도 기묘한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

자유글판

『아무거나 쓰세요. 손님도 글쓰기가 가능합니다.^^』

Title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동영상 황석영 - 5.18강의 new 風文 2024.05.22 107
공지 음악 좋아하는 그룹 : 악단광칠(ADG7) - '임을 위한 행진곡' update 風文 2024.05.18 241
공지 음악 부활 - 친구야 너는 아니 (시:이해인) 風文 2023.12.30 20568
공지 사는야그 가기 전 風文 2023.11.03 23074
공지 음악 Elvis Presley - Return To Sender (Remix) 風文 2023.01.01 4011
993 '자유로운 유럽 중세도시'라는 신화 바람의종 2009.08.02 4243
992 유럽 중세도시의 실상 바람의종 2009.08.04 3680
991 유럽의 도시는 특수하다고? 바람의종 2009.08.05 3551
990 르네상스, 무엇이 문제인가? 바람의종 2009.08.06 3534
989 부르크하르트가 보는 르네상스와 그 문제점 바람의종 2009.08.27 4100
988 르네상스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바람의종 2009.08.29 3804
987 아메리카의 발견? 바람의종 2009.08.30 3356
986 유럽은 어떻게 아메리카를 정복했나? 바람의종 2009.09.01 3290
985 유럽은 어떻게 아메리카를 착취했나? 바람의종 2009.09.03 3040
984 인류 최대의 홀로코스트 바람의종 2009.09.04 3701
983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바람의종 2009.09.18 3418
982 유럽 자본주의는 어떻게 발전했나 바람의종 2009.09.21 3335
981 근대 초 아시아경제의 재평가 바람의종 2009.09.22 4726
980 월러스틴 세계체제론과 유럽중심주의 바람의종 2009.09.23 3814
979 근대 자연법의 형성과 식민주의 바람의종 2009.09.24 3646
978 그로티우스와 식민주의적 열망 바람의종 2009.09.25 3379
977 존 로크와 식민주의 바람의종 2009.09.26 3266
976 인종주의, 왜 문제인가? 바람의종 2009.09.29 3274
975 전근대 유럽사회와 인종주의 바람의종 2009.10.01 396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 101 Next
/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