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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랑이 위안이라고 말했습니다. 위안을 주지 못하면 사랑이 아니라고. 나는 사랑은 열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나는 당신을 종종 다그쳤고, 당신은 그때마다 알 수 없는 미소로 대답하곤 했지요. 지금 생각하니 내가 바란 것이 당신의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사랑한다는 말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당신이 먼저 이별을 고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별을 말하지 않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당신은 내가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빨리 내 곁을 떠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망설임도 없이 돌아서는 당신이 낯설고 무서워서 차마 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나는 이별을 알지 못했습니다. 멀리 떨어져도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거라 믿었습니다. 사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종종 이별을 꿈꾸곤 했더랬습니다. 영영 이별이 아닌 낮잠과 같은 이별 말입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진다 해도, 우리는 언젠가 극적으로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낯선 고장의 기차역이나 횡단보도 한가운데 같은 곳에서 말입니다. 그런 날에 우리는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서로를 끌어안고 있을 거라 상상했습니다. 내가 이별을 상상했던 것은 어쩌면 그 극적인 포옹의 순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내가 당신을 다시 떠올린 것은 이국의 어느 기차역에서였습니다. 국경 근처의 작은 역 플랫폼. 거기서 나는 그동안 무수히 머릿속으로 그려 오던 장면을 보았습니다. 조각상처럼 꼼짝도 않고 서로의 눈만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와 여자. 나는 그들이 싸움을 하는 것인지, 이별 의식을 치르는 것인지, 아니면 오랜 헤어짐 끝에 재회를 한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이 어떤 제스처라도 해 주길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기만 했습니다. 마음이 급했습니다. 실은 그들이 이별을 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고약한 심보가 생기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듯 여자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 한 줄기. 그리고 여자의 어깨에 무너지듯 얼굴을 파묻은 남자. 그들은 그렇게 또 그 모습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내가 탄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여자와 머리를 파묻은 남자.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직전, 여자의 손이 남자의 등 뒤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기차에 누가 올라타게 됐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이별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남자의 등을 어루만진 여자의 손길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등을 쓰다듬는 그들은 분명 사랑하고 있는 것일 테지요. 그들은 결코 헤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는 당신의 손이 그립습니다.

《러빙유》에 실린 천운영 님의 <당신의 손이 그립습니다>에서

《러빙유》는 대한민국의 걸출한 필자 45인이 들려주는 달콤 쌉쌀한 러브 에세이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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