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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2 08:22

도댓불과 등댓불

조회 수 3163 추천 수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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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장명등(長明燈)이나 등명대(燈明臺)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흔히 도대라는 말로 통일하여 부릅니다. 포구에 불을 밝혀 뱃길을 안내하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육지에는 없고 제주에만 있습니다.

도대가 등대와 유사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 둘은 엄격히 구분됩니다. 등대가 관에서 설치한 관급등대였다면, 도대는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민간등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도대는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970년대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제주에 등대가 처음 설치된 것은 1906년(우도등대)의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설치된 것은 1916년(제주시 산지등대)이었습니다. 우도 등대는, 일본군 초소가 있었던 곳에 설치된 것으로 그 등대의 설치 목적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주 처음의 등대를 제주 본 섬이 아니라, 제주 동쪽 끝에 위치한 우도에 설치했다는 점도 생각해 볼 여지가 많습니다. 또한 1906년은 일제가 1905년 을사늑약에 의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은 다음 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도등대가 세워졌을 때, 일제는 러일전쟁을 치렀고, 미국과 영국의 자본을 바탕으로 승리를 한 상태였습니다. 이미 대한제국은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제에 의존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제주 처음으로 등대가 들어선 것입니다. 맨 처음의 우도등대는 나무로 만들었으며, 연료로는 석유나 아세틸렌가스를 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관에서 설치한 등대는 원거리를 다니는 배들에게는 유용했을지 모르나, 온 섬이 포구 마을이었던 제주의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포구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이 도대입니다.

현재 제주에는 모두 18기의 도대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도대에 불을 밝힐 때는 호롱불을 밝히기도 하였고, 솔칵(관솔)불을 켜기도 하였습니다. 연료로는 물고기 기름이나 석유나 솔칵이 사용되었습니다.

도대는 기다림과 그리움의 상징입니다. 불보재기(어부)들이 뱃일을 나가면, 육지에 있는 사람들이 도대에 불을 밝히고 기다렸습니다. 대개는 당번을 정해 불을 켜고 껐는데, 갈치 잡이나 한치 잡이를 간 배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온 마을 사람들이 사흘 밤낮을 기다리기도 했답니다.

지금이야 배들도 발전기를 이용하여 전깃불을 환하게 밝히고 다니지만, 그 때에는 겨우 등잔불에 의지하여 운행했을 것입니다. 수평선에서 가물거리는 작은 불빛 하나를 표구에서 흔들리며 바라보고 있었을 호롱불 하나를 생각해 봅니다. 지워질 듯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바다에 간 이들은 자기 마을의 도대에 희미하게 켜져 있는 도댓불을 바라보며, 만선의 꿈을 키웠을 것입니다. 도댓불을 켜 놓고 언 손을 호호 불며 떨고 있을 아내를 떠올리며, 고기잡이에 더욱 열중했을 것입니다.

나는 도대를 밝혔을 가난한 불빛을 생각해 봅니다. 그 애탄 흔들림을 그려 봅니다. 배와 포구 사이에는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고, 하늘도 검고 바다도 검습니다. 온 세상이 칠흑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숲 속의 작은 눈동자처럼 도댓불만 여리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조그마한 불빛이 목숨의 줄이고, 꺼지지 않는 그 불빛이 사랑에 대한 믿음입니다.

도댓불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돛대처럼 높은 곳에 불을 켰기 때문에 돛대 + 불에서 도댓불로 변화했다는 설과 뱃길의 길라잡이 역할을 했기에 도대(道臺)의 의미에서 발전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혹자는 일본어 '도우다이'가 기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등대와 도대를 구분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도대가 있었던 포구에 수많은 등대가 생겼지만, 여전히 등대와 도대는 다릅니다. 지금은 아무도 등대에 불을 밝히지 않습니다. 국가에서 관리자를 두어 불을 밝히거나,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불이 켜집니다. 도대에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면, 등대에는 사람의 마음이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등대가 배들을 통제하였다면, 도대는 배들을 사랑의 여린 불빛으로 기다렸습니다. 도대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중요시 한다면, 등대는 일방적인 신호이고, 따라야 할 표상일 뿐입니다. 도대가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면, 등대는 수직적 관계에 가깝습니다. 도댓불이 온기가 있는 반면 등댓불은 열기 없이 날카롭습니다.

그대와 나와의 만남은 도대와 배의 관계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야윈 불빛으로 그대를 부르면, 저기서 작고 초라한 빛으로 응답을 하는 사이였으면 합니다. 온 세상을 밝히지 않아도 마음으로 자신을 밝히다 보면, 우리는 참 따스해질 것입니다.

이대흠

1967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1994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 현대시동인상, 애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며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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