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881 추천 수 1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의뭉스러운 이야기 3」(시인 이재무) 2009년 8월 6일










한내댁은 후닥닥 냉물에 찬밥 말아 텃밭에서 따 온 깻잎과 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고 사립을 나섰다. 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산 날멩이 산밭을 찾아가고 있었다. 오늘 중으로 콩밭을 다 매놓고 내일부터 동서네 버섯 일을 도우러 갈 참이었다. 곡식들은 농사꾼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그것들도 생명이라고 정성 들인 만큼 표를 내는 것들이라 한시도 소홀할 수가 없었다. 소출 때가 되면 허망한 것이 농사일인지라 그 생각만 하면 이까짓 거름값도 못 건지는 밭일 당장 때려치우고 싶지만 어디 그게 맘같이 되는 일이던가. 농사짓는 이에게 땅 놀리는 일처럼 콘 죄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하여 쇠못이 되어 직선으로 내리꽂히는 햇살을, 동여맨 수건으로 간신히 버텨내며 고랑을 타고 앉아 콩밭 매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부릉부릉 하는 차 소리가 들려 왔다. 그냥 지나가는 차려니 하고 별 괘념하지 않고 밭 매는 일에 더욱 열중하고 있는데 어라, 이 차가 밭가에 세워진 채 도통 움직이질 않고 있는 게 아닌가.


 


슬그머니 호기심이 동해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밭고랑을 빠져나와 다가가 보았던 한내댁은 못 볼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가슴이 벌렁벌렁 콩닥콩닥 숫처녀로 돌아간 것처럼 마구 뛰었고 얼굴은 번철처럼 달아올랐다. 차 안에서 새파랗게 젊은것들이 뱀처럼 엉켜 자반뒤집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말로만 듣던 ‘카섹스’란 것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런 숭악한 것들을 봤나, 벌건 대낮에 저게 무슨 벼락맞을 짓이랴, 하면서도 한내댁은 소주 먹은 듯 마음과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도무지 일할 기분이 아니었다.


 


호미를 밭고랑에 팽개치고 급한 일이나 만난 것처럼 발걸음을 재게 놀려 집으로 가고 있었다. 남편은 한갓지게 대청에서 대자로 누워 서까래가 들썩이도록 드렁드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한내댁은 자는 남편의 옆구리를 찔러 깨웠다. “여보, 여보, 저기 우리 밭길서 젊은것들이 차 안에 누워 그 짓을 하고 있슈. 그게 서울것들 유행이라든디 우리도 한번 해 봐유.” “아니, 이 여편네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뭔 개 풀 뜯어먹는 소리여, 뭐이 어째, 카섹스 그걸 해 달라고, 미쳤나.” 하면서도 남편은 저도 모르게 아랫도리가 불쑥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임자, 그게 그렇게 부러워, 까짓것 하지 못할 것 뭐 있어, 하자구 그런디 어디서 혀, 경운기서 할까. 가마니나 두어 장 깔아 봐.”


 


염천의 햇볕이 벌겋게 마을의 지붕을 달구고 있었다.
























■ 필자 소개





이재무(시인)


1958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1983년 《삶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섣달 그믐』『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벌초』『몸에 피는 꽃』『시간의 그물』『위대한 식사』『푸른 고집』『저녁 6시』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생의 변방에서』『우리 시대의 시인 신경림을 찾아서』(공저)『사람들 사이에 꽃이 핀다면-이재무의 시 읽기』 등이 있다. 난고(김삿갓)문학상과 편운문학상을 수상했다.



  1.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Date2023.02.04 By風文 Views13505
    read more
  2. 친구야 너는 아니

    Date2015.08.20 By風文 Views102858
    read more
  3. 가끔은 보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Date2008.10.17 By바람의종 Views6384
    Read More
  4. 가까이 하면서도 물들지 않는 사람 - 도종환 (132)

    Date2009.02.18 By바람의종 Views6661
    Read More
  5.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Date2014.12.24 By風文 Views7230
    Read More
  6. 가까이 있는 것들

    Date2011.03.09 By바람의종 Views2887
    Read More
  7. 가까운 사람

    Date2010.09.24 By바람의종 Views3082
    Read More
  8. 雨中에 더욱 붉게 피는 꽃을 보며

    Date2008.07.01 By바람의종 Views7889
    Read More
  9. Date2011.08.16 By윤영환 Views4201
    Read More
  10. 「화들짝」(시인 김두안)

    Date2009.06.30 By바람의종 Views7135
    Read More
  11. 「호세, 그라시아스!」(소설가 함정임)

    Date2009.06.22 By바람의종 Views6764
    Read More
  12. 「헤이맨, 승리만은 제발!」(소설가 함정임)

    Date2009.06.17 By바람의종 Views7646
    Read More
  13. 「할머니가 다녀가셨다!」(시인 정끝별) 2009년 5월 25일_스무번째

    Date2009.05.25 By바람의종 Views6949
    Read More
  14. 「칠번출구」(시인 정끝별) 2009년 5월 21일_열여덟번째

    Date2009.05.24 By바람의종 Views7792
    Read More
  15. 「친구를 찾습니다」(소설가 한창훈)

    Date2009.06.09 By바람의종 Views8403
    Read More
  16. 「충청도 말에 대하여」(소설가 한창훈)

    Date2009.06.09 By바람의종 Views6499
    Read More
  17. 「출근」(시인 김기택) 2009년 5월 22일_열아홉번째

    Date2009.05.24 By바람의종 Views8162
    Read More
  18. 「추어탕의 맛」(시인 조용미)

    Date2009.07.13 By바람의종 Views9302
    Read More
  19. 「첫날밤인데 우리 손잡고 잡시다」(시인 유안진)

    Date2009.05.17 By바람의종 Views8810
    Read More
  20. 「진한 눈물의 감동 속에도 웃음이 있다 」(시인 신달자)

    Date2009.05.20 By바람의종 Views7934
    Read More
  21. 「진수성찬」(시인 이상섭)

    Date2009.08.11 By바람의종 Views6665
    Read More
  22.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시인 정끝별)

    Date2009.06.09 By바람의종 Views6151
    Read More
  23. 「죽은 연습」(시인 서규정)

    Date2009.07.21 By바람의종 Views7389
    Read More
  24. 「인생재난 방지대책 훈련요강 수칙」(시인 정끝별)

    Date2009.06.01 By바람의종 Views7284
    Read More
  25. 「이런 웃음을 웃고 싶다」(시인 김기택)

    Date2009.05.20 By바람의종 Views8096
    Read More
  26. 「의뭉스러운 이야기 3」(시인 이재무)

    Date2009.08.07 By바람의종 Views6881
    Read More
  27. 「의뭉스러운 이야기 2」(시인 이재무)

    Date2009.08.06 By바람의종 Views7286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