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뭉스러운 이야기 2」(시인 이재무)
「의뭉스러운 이야기 2」(시인 이재무) 2009년 8월 5일 |
보령댁은 일 년 한두 번 서울에 있는 딸네 집에 갈 때마다 버릇처럼 큰 보따리를 이고 간다. 보따리 속에는 고향 산천에서 난 온갖 나물이 들어 있다. 산도라지며 더덕, 고사리, 곰취, 냉이, 달래, 머위, 산미나리, 씀바귀, 엉겅퀴, 느릅치, 두릅, 삿갓나물 등속 그때그때 철 따라 나는 산지 나물을 뜯어 싸가지고 가는 것이다. 딸 내외는 그때마다 몇 푼이나 한다고 그 고생이냐고 질색이지만 어찌 이것을 값으로만 매길 수 있겠는가. 불쑥 고까운 마음이 어나 아니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보령댁은 아직 한 번도 그걸 내색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걸 딸네 집에 가기 전에 지하철 지하도에 좌판으로 깔아 놓고 팔기로 하였다. 외손주 외손녀 주전부리값이나 할 요량이었다.
오후 내내 쭈그려 앉아 있자니 무릎 팔다리가 쑤셔 오고 머리도 지끈지끈 아파 왔다. 그래도 애쓴 보람이 있어 저녁 퇴근 시간 즈음해서는 거의 절반가량이 팔려 나갔다. 이제 좌판을 거둬들여야 하나 기왕 벌인 판인데 더 기다려 마저 팔아야 하나 하고 속으로 셈하고 있을 때 말쑥하게 차려 입은 한 청년이 다가와 흥정을 붙여 왔다.
“저기, 할머니 여기 있는 나물 전부 사 드릴게요. 값이 얼마에요?” 아니 요즘 세상에도 이런 건강한 싸가지가 다 있나? 보령댁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올려다보니 깎아놓은 배처럼 잘생긴 청년이 배시시 웃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총각이 알아서 주셔유.” “아니 그러지 말고 말씀해 보세요. 할머니 보기에 안돼 보여서 사 드리는 거예요. 어려워하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총각이 알아서 달랑게요. 냄새스럽게 워치게 값을 말한댜 떨이를 가지고.” “알았어요. 할머니 오천 원이면 되겠어요? 오천 원 드릴게 여기 있는 거 전부 싸 주세요.”
보령댁은 순간 눈에 불꽃이 튀었다. 아니, 이런 괘씸한 싸가지를 봤나. 이게 오천 원밖에 안 돼 보인단 말여, 아무리 떨이라도 그렇지. 늙은 삭신으로 저걸 캐오고 다듬느라 사흘이나 걸렸구먼. 사흘 품삯이 겨우 오천 원이란 말여. 생긴 것은 기생오래비같이 멀쩡해가지고 말은 똥구녕같이 냄새나게 헌다냐. 보령댁은 자신도 모르게 벌컥 소리를 내질렀다.
“냅둬유, 개나 주게.”
서울 청년은 멀뚱멀뚱 보령댁을 쳐다보며 어안이 벙벙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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