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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神父)님의 뒷담화」(시인 유종인)   2009년 7월 31일





 





오래간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러 인천에 갔다 왔다. 동창이라기보다 그냥 친구다. 특별한 공통점이 없는 것이 우리들의 공통점이다.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고등학교 때는 아웃사이더로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엔 비정규직으로 살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차이라면 친구는 좀 말랐고 나는 좀 통통한 편이고, 친구는 좀 까다로운 편이고 나는 좀 무던한 편이다. 속이야 어쩔지 모르지만 겉으로 보이는 인상은 대충 그렇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늘 허점이 있게 마련이어서 하느님이 부처님의 친구였다는 말처럼 믿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는 얘기와 같다.


 


친구와는 토요일 오후에 만나기로 했으므로 아내한테는 당일 늦게 새벽에라도 집에 오겠다고 했다.


 


“괜히 몇 만 원씩 길거리에 뿌리지 말고 정 못하면 자고 아침 일찍 와요.”


 


아내는 오피스텔에서 혼자 사는 친구의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새벽에 와 봐야 식구들 잠만 깨울 게 뻔하다 여긴 듯했다. 그렇게 외박 안하고 달려왔댔자 겨우 몇 시간 후면 아침인데, 그 아침은 일요일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성당에 얼굴 도장 찍어야 하늘나라에 계시는 어머니가 좋아하실 텐데…’


 


차마 그런 돈냄새도 안 나는 얘기는 아내한테 여지없이 지청구를 당할 게 뻔하다. 하기사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와 회포의 술자리가 깊어지다 보면 무주공산(無主空山) 같은 일요일이 한없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20대 시절 자주 다니던 술집까지 두 군데 들러 우리의 술자리는 4차까지 간 후에야 끝이 났다. 아니, 그것도 모자라 친구는 편의점에서 병맥주 몇 병을 사가지고 자신의 오피스텔까지 들어가서야 먹지도 못하고 침대에 고꾸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벽시계를 봤다. 반백의 머리가 인상적인 성당 신부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신부님의 유머러스한 강론이 한창 신자들의 침묵에 만첩조팝꽃 같은 하얀 웃음을 심어 주실 때다. 그런 생각을 하니 머리가 더 지끈거리고 아파서 갈증이 몰려왔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지난 밤 얼마나 취했는지, 냉장 칸에 넣었어야 할 맥주가 냉동 칸에서 꽝꽝 언 채로 동태처럼 누워 있었다. 친구는 그제서야 일어나 눈을 찡그리며 말한다.


 


“…물 거기 냉장고 안쪽에 결명자차 있어.”


 


사람의 눈[眼]에 좋다는 결명자차(茶)지만 깊은 술을 당해낼 재간이 없지 않은가. 속이 꽝꽝 언 맥주를 들어 보이자, 친구는 속이 쓰리고 머리가 아파 인상을 쓰던 중에도 잠시 말없이 웃었다.


 


집에 돌아오자 점심 때가 조금 넘었다. 아이들은 아파트 단지 그늘에서 훌라후프를 하거나 비눗방울을 허공으로 후후 날리느라 정신이 없다. 투명한 비눗방울이 저 어린것의 입바람에 허공으로 흩어져 날아다닌다. 저걸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하면, 하느님의 친구인 부처님도 좋으실 것 같고, 알라이신 마호메트께서도 좋아하실 게 뻔하다. 나는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마치 내 보이지 않는 주변에 그런 성인(聖人)들께서 말없이 숨어 보실 것만 같다. 어디 외출이 깊으신 게지, 나는 한편 그렇게도 생각한다.


 


허기진 속에 해장국처럼 된장국에 밥을 말아먹고 있는데, 아내가 괜히 실실 웃는다.


 


“당신, 성경 중에 ‘돌아온 탕자’ 얘기 알지?”


 


나는 밥을 만 된장국 한 숟갈을 입에 넣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오늘 신부님 강론 중에 그 부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추가됐어.”


 


말도 다 하기 전에 지레 먼저 웃어 버리는 아내를 보자니 신부님의 간명하고 재치 있는 재해석이 짐짓 궁금해졌다.


 


“…항상 집안을 굳건히 지키면서 아버지를 잘 보필하고 집안일을 성실히 수행한 첫째에게는 평소 염소 한 마리 상으로 안 내렸잖아?”


 


“그렇지. 그런데 집안 재물을 가지고 나가 창기와 놀아나고 방탕한 생활로 거지꼴이 돼 돌아온 둘째 아들에게 아버지는 염소를 몇 마리나 잡아 잔치를 벌여 주었다는 성경 내용 말이잖아.”


 


나는 맞장구를 치듯 아내가 들은 신부님의 강론 뒷부분이 궁금해졌다.


 


“그래, 그런 성경 내용이 하느님의 한없는 품을 드러내는 비유로 흔히 해석되곤 했지.”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야?”


 


“어쨌다는 게 아니구, 그렇더라도 인간적으로 봤을 때 첫째 아들은 여전히 그런 아버지와 탕자가 돼 돌아온 동생이 섭섭할 수밖에 없었을 거 아냐?”“그랬겠지. 인간적으로 봤을 때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 바로 거기까지 얘기를 진전시킨 신부님이 갑자기 신자들을 향해 ‘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섭섭한 것이 따로 있는데, 여러분들은 아십니까?’ 하고 물으시는 거야.”아내는, 그런 신부님의 질문에 신자들은 당연히 영문을 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웅성거리더란 것이다. “그때, 신부님이 강단을 손바닥으로 탁 치시면서, ‘아, 염소가 제일 섭섭하지. 첫째 아들이야 마음만 섭섭하지만 염소가 무슨 죄가 있어 죽어? 그냥 말없이 풀 뜯은 죄밖에 더 있어!’ 하시는 거야.”


 


신부님의 성경 속 ‘돌아온 탕자’ 뒷담화에 신자들은, 특히 여자 신자들은 하얀 미사포가 벗겨질 정도로 웃어 젖혔다고 한다.


 


나도 입 안에 든 된장국 속 밥알 몇 개가 기어이 다문 입술을 비집고 허공 중으로 튀어 나가는 걸 어쩌지 못했다. 나는 튀어 나간 밥알을 줍다 말고 문득 지난 밤 친구가 자신과 이혼한 여자에 대한 섭섭함을 말하던 때를 떠올렸다. 나는 속으로 친구에게 그런다. 너무 섭섭해하지 마라, 신부님 뒷담화 말씀에, 항상 너(나) 자신보다 억울하고 섭섭한 이가 숨어 있다. 그러니 굳이 슬픔이나 우울은 우리 몫만은 아닌가 보다. 그러니 친구야, 그냥 한번 웃자.






















■ 필자 소개


 




유종인(시인)


1996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 『아껴 먹는 슬픔』『교우록』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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