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9261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성인용품점 도둑사건」(시인 신정민)   2009년 7월 17일





 





아침 일찍 산에 오르는데 검은등뻐꾸기가 웁니다. 꼭 네 음절로 우는데요. 앞의 세 음절은 음 높이가 조금 높고 마지막 한 음의 높이는 조금 낮습니다. 오뉴월 한철 짝을 찾는 검은등뻐꾸기의 소리가 영락없이 홀딱벗고, 홀딱벗고. 그래서 ‘홀딱벗고 새’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네 음절의 많고 많은 말이 있을진대 어찌 모두들 그리 들었는지 재밌는 일입니다.


 


성인용품점을 하는 아무개씨네 가게에 도둑이 들었답니다. 성인용품점을 한다는 것이 굳이 비밀일 것까진 없었지만 또 굳이 누구에게 알릴 일도 아니었다는군요. 그래서 도둑맞았단 얘기를 어디 가까운 사람에게 대고 할 수 없어 며칠 앓다가 분실신고는 해야지 싶어 인근 파출소에 갔답니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도둑 든 시간이 대충 언제쯤인지, 값은 얼마나 나가는지,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누가 주로 물건을 사 가는지…


생각보다 다양한 물건에 가격도 만만치 않다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습니다만, 아무개씨,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는군요. 생소한 품목들 하나하나 받아 적는 경찰관도 씨익-, 잃어버린 물건들 낱낱이 헤야려야 하는 아무개씨도 멋쩍어 씨익-.


전라도 사람도 아닌데 거시기, 거시기가 수차례 설명을 대신하곤 했다는군요.


 


거리에서 성인용품점을 흔히 봅니다. 가게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되어 있지요. 그 앞을 지날 때면 제가 갓 결혼한 새댁이었을 때가 가끔 생각납니다. 네덜란드에 여행 다녀온 친구가 사 온 ‘성인용품 거시기’를 보여준 적이 있었지요. 지금이사 자연스럽게 성인용품점이 여기저기 있지만 그때 당시엔 생각도 못해 봤던 것이었습니다. 생긴 것이 영락없이 남성의 ‘그것’ 같은 데다가 내장된 건전지를 작동시키니까 꿈틀꿈틀, 진동을 시작하는데 기겁 반 부끄러움 반에 한참 뒤에야 터져 나온 웃음으로 배꼽 잡았던 때가 있었지요.


  


홀딱벗고 새는, 아니 검은등뻐꾸기는 산사의 스님들이 공부에 집중하는 새벽녘과 저녁에 주로 우는데요. 공부는 않고 게으름만 피우다 세상 떠난 스님이 환생한 새란 말도 있습니다. 홀딱벗고 마음을 가다듬어라. 망상도 지워 버리고, 욕심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홀딱벗고. 나처럼 되지 말고, 정신차려라. 그렇게 듣는다는군요.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결국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라고. 이 세상 똑바로 살라는 경고의 소리로 듣기도 한다는군요.


다투고, 며칠 말 않고 지내던 아내에게 미안한 맘으로, 처지고 있는 아내의 가슴께는 건드려 보지도 않고, 윗도리 벗지도 않은 채 아내에게 다가가려니, 하려거든 하는 것처럼 하라는 듯, 처음처럼, 마지막일 것처럼, 맨몸의 첫날밤처럼, 그렇게 하라는 듯 홀딱벗고, 홀딱벗고 초록빛깔로 5월 봄밤에 울어 대더라고 복효근 시인이 노래한 <검은등뻐꾸기의 전언>이 생각납니다.


 


검은등뻐꾸기의 홀딱벗고, 소리를 따라해 보면서 씨익, 웃어봅니다. 아무개씨의 잃어버린 물건, 왠지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 필자 소개


 




신정민(시인)


1961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으며, 2003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꽃들이 딸꾹』이 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5131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4587
2460 37조 개의 인간 세포 風文 2022.02.01 923
2459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셨던 말 風文 2023.04.19 923
2458 꽃에 물을 주는 사람 風文 2019.09.02 924
2457 토끼가 달아나니까 사자도 달아났다 風文 2022.02.24 924
2456 '액티브 시니어' 김형석 교수의 충고 風文 2022.05.09 924
2455 적재적소의 질문 風文 2022.12.05 924
2454 최상의 결과를 요청하라 風文 2022.10.15 925
2453 회의 시간은 1시간 안에 風文 2023.01.19 925
2452 80대 백발의 할머니 風文 2023.08.28 925
2451 '사랑의 열 가지 방법'을 요청하라, 어리다고 우습게 보지 말아라 風文 2022.10.11 926
2450 눈이 열린다 風文 2023.05.27 926
2449 차 맛이 좋아요 風文 2022.12.14 927
2448 양치기와 늑대 風文 2023.11.24 928
2447 당신을 위한 기도 風文 2019.08.29 930
2446 인(仁) 風文 2020.05.03 930
2445 희망이란 風文 2021.09.02 930
2444 다시 출발한다 風文 2019.08.17 931
2443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風文 2019.08.19 931
2442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14. 믿음 風文 2020.06.09 931
2441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風文 2021.09.14 932
2440 중심(中心)이 바로 서야 風文 2022.02.13 932
2439 꺾이지 않는 힘 風文 2023.07.26 932
2438 '어른'이 없는 세상 風文 2019.08.24 935
2437 혼자 있는 시간 風文 2019.08.08 936
2436 장애로 인한 외로움 風文 2022.04.28 93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