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998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우리처럼 입원하면 되잖아요」(시인 유홍준)   2009년 7월 16일





 





정신병원 보호사 L씨는 시인이다.


 


그러나 제도권 안에서 공부를 많이 못한 까닭에 사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산판일, 바느질, 밀링공, 과일행상, 갖가지 막노동, 이것저것 안해 본 게 없다. 심지어 남의 집 벼논이나 고추밭에 농약을 쳐 주고 얼마를 받는 일까지… 먹고사는 문제는 늘 문학 위에 있어서 그를 짓누르고 깔아뭉개고 너덜너덜 만신창이로 만들곤 했다.


 


이번에 구조조정으로 제지공장에서 잘린 L씨는 또 이리저리 휘둘리다 결국 아는 사람의 소개로 정신병원 보호사 일을 하게 되었다. 환자들의 수발을 들어 주어야 하고 간호사들의 잔심부름을 해야 하는 말단직 중의 말단직이었다.


 


하지만 L씨는 즐거워했다. 고작 백만 원이 조금 넘는 보수에다 일요일도 없는 3교대 근무지만 나름 즐거움도 있었다. 특히나 L씨는 시인이므로 정신병자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 L씨는 어떤 보호사보다도 그들을 잘 이해하고 어울려 놀았다. 정신병자에 가장 가까운 사람 그게 시인이란 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L씨는 한때 모종의 일로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 정작 본인도 정신과를 찾아간 전력이 있었다. 물론 이 사실을 병원 측에 밝히진 않았지만 말이다.


 


L씨는 병원 몰래 정신병동 이야기를 살짝살짝 비틀어 시로 쓰곤 했다. 나름 재미가 있었다. 자신의 삶이 늘 힘들고 고되지만 그래도 견디고 지탱하는 힘, 그것이 바로 문학이었던 것이다.


 


문학의 눈으로 보면 조울증 환자의 조증도, 정신분열증 환자의 앞뒤가 잘 안 맞는 횡설수설도 얼마나 재밌고 신기한 일인가.


 


얼마 전의 일이었다.


A동(棟)으로 라운딩을 갔다가 돌아오는데 정수기 앞쯤에서 경석이란 놈이 불렀다.


 


“보호사님!”


 


“왜 임마!”


 


L씨는 자기보다 키가 한 뼘이나 더 큰 경석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경석이는 고등학교를 다니다 말고 입원한 친구. 더듬더듬 읽기는 하지만 쓰기는 잘 못하는 친구였다. 씨익~ 웃음을 쪼개 문 경석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덜 떨어진 경석이의 눈에도 L씨의 처지가 힘들고 고돼 보였을까.


 


“그런데요, 있잖아요, 보호사 그만두세요.”


 


“왜에?”


 


“있잖아요, 보호사 그만두고요, 우리처럼 입원하면 되잖아요.”


 


“이새끼가 콱!”


 


순간 L씨는 뜨끔했다. 경석이의 말뜻은 딴데 있었지만 한때 우울증을 앓았던 자신의 전력이 떠올라 퍼뜩 심경이 복잡해졌다.


그런데 뒷짐을 지고 지나가던 오인술 씨가 경석이에게 주먹총을 놓으며 한술 더 떴다.


 


“야 이 멍청한 놈아. 보호사가 입원을 하면 딴데를 하지 여기를 하겠냐. 이 멍청한 놈아, 히히히~  히히히히~ ^ ^*”






















■ 필자 소개


 




유홍준(시인)


1962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다. 1998년 《시와반시》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상가에 모인 구두들』『나는, 웃는다』가 있다.


  1.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Date2023.02.04 By風文 Views16766
    read more
  2. 친구야 너는 아니

    Date2015.08.20 By風文 Views106227
    read more
  3. 「의뭉스러운 이야기 1」(시인 이재무)

    Date2009.08.05 By바람의종 Views7079
    Read More
  4. 「웃음꽃이 넝쿨째!」(시인 손정순)

    Date2009.07.31 By바람의종 Views8627
    Read More
  5. 「웃음 배달부가 되어」(시인 천양희)

    Date2009.06.12 By바람의종 Views6120
    Read More
  6. 「웃음 3」(소설가 정영문)

    Date2009.06.25 By바람의종 Views5899
    Read More
  7. 「웃음 2」(소설가 정영문)

    Date2009.06.19 By바람의종 Views5830
    Read More
  8. 「웃음 1」(소설가 정영문)

    Date2009.06.16 By바람의종 Views6719
    Read More
  9. 「웃는 여잔 다 이뻐」(시인 김소연)

    Date2009.06.29 By바람의종 Views9423
    Read More
  10. 「웃는 동물이 오래 산다」(시인 신달자)

    Date2009.05.15 By바람의종 Views7870
    Read More
  11. 「웃는 가난」(시인 천양희)

    Date2009.06.18 By바람의종 Views5990
    Read More
  12. 「우리처럼 입원하면 되잖아요」(시인 유홍준)

    Date2009.07.17 By바람의종 Views6998
    Read More
  13. 「연변 처녀」(소설가 김도연)

    Date2009.06.26 By바람의종 Views7545
    Read More
  14. 「엉뚱스러운 문학교실」(시인 김종태)

    Date2009.07.06 By바람의종 Views7895
    Read More
  15. 「쌍둥이로 사는 일」(시인 길상호)

    Date2009.07.14 By바람의종 Views8394
    Read More
  16. 「신부(神父)님의 뒷담화」(시인 유종인)

    Date2009.08.01 By바람의종 Views6399
    Read More
  17. 「스페인 유모어」(시인 민용태)

    Date2009.06.09 By바람의종 Views8108
    Read More
  18. 「세상에 없는 범죄학 강의」(시인 최치언)

    Date2009.07.08 By바람의종 Views7722
    Read More
  19. 「성인용품점 도둑사건」(시인 신정민)

    Date2009.07.17 By바람의종 Views9306
    Read More
  20. 「사랑은 아무나 하나」(시인 이상섭)

    Date2009.08.11 By바람의종 Views8037
    Read More
  21. 「비명 소리」(시인 길상호)

    Date2009.07.15 By바람의종 Views7678
    Read More
  22. 「부모님께 큰절 하고」(소설가 정미경)

    Date2009.06.10 By바람의종 Views6755
    Read More
  23. 「밥 먹고 바다 보면 되지」(시인 권현형)

    Date2009.06.25 By바람의종 Views8853
    Read More
  24. 「바람에 날리는 남자의 마음」(소설가 성석제)

    Date2009.05.15 By바람의종 Views9550
    Read More
  25. 「미소를 600개나」(시인 천양희)

    Date2009.06.23 By바람의종 Views6288
    Read More
  26. 「만두 이야기_2」(시인 최치언)

    Date2009.07.10 By바람의종 Views6676
    Read More
  27. 「만두 이야기_1」(시인 최치언)

    Date2009.07.09 By바람의종 Views7065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 122 Next
/ 122